나답게 사는 이야기
전일본공수의 한국인 승무원으로 약 1년 반 가량 비행을 하고 내린 결단이었다. 이십 대 후반에 직장은 안정적이었고 만족스러운 연봉을 받고 있었으며 약 1년간 꽤나 진지하게 만나온 남자 친구도 있는데 갑자기 스페인에 살러가겠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왠지 Settling down(정착)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지금껏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사는 애'라는 수식어구를 달고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터라 이번에 스페인에서 1년 살기를 하는 것도 그 맥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가 꽤 '나다운'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이 폭탄 발언은 '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나?' 하는 진짜 폭탄이 아니라 '쟤 또 병 도졌다.' 하는 가벼운 타박상 정도의 충격이었으리라.
먼저 내가 결심을 내린 후 퇴사와 스페인행을 선언하자 내 주변 사람들은 (예상할 수 있는 선에서) 다양하게 반응했고, 나는 그들을 나와의 친밀함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반응을 살폈다.
The people that matter to me the most(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의견은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긍정적이었다. 역시 가장 먼저 설득해야 했던 분들은 나의 부모님이었다.
'좋은 직장을 관두고 스페인에는 왜 가니?'라는 질문에 솔직하게 '저는 스페인이 좋아요. 그곳 사람들도 문화도요. 그래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요. 덤으로 스페인어도 배우면서요.'라고 말하는 대신 '저는 승무원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요즘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조금 더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뭘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배워두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언어는 현지에서 배워야 하잖아요.'라는 좀 더 듣기 수월한 답을 드렸고 부모님은 몇 번의 통화를 더 주고받은 끝에 승낙을 해주셨다.
이십 대 후반의 딸(잔인하게 솔직하자면 빨리 시집보내서 손 털고 싶은 숙제)이 단순히 "그냥" 원해서 잘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또 외국에서 산다면 뒷목을 잡으실게 뻔했다. 그렇게 일부 사실이기는 하나 듣기 좋게 포장된 답변을 드리며 불효는 면할 수 있었다. 일찍이 정의 내린 '나의 행복'에는 '부모님의 행복'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그렇기에 나의 결정에 영향을 받게 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필수였다. 그것이 가족으로서 딸로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페인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미혼에 딸린 자식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스페인에서 1년 살기라는 다소 무모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에 최적기라는 생각이었다. 먼 훗날 80대 노인이 된 내가 '아...이십 대에 스페인에서 살아봤어야 했는데... 그때 포기한 게 너무 후회돼. 너네는 나처럼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거라.' 라며 손주들에게 한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끔찍했다. 이번만큼은 부모님으로부터의 승낙이 스페인에 기분 좋게 가느냐 대책 없는 애물단지 같은 딸년으로 가느냐의 차이였다고나 할까.
무슨 말을 듣더라도 결국에는 갔을 테니까 말이다.
애초에 왜 스페인에 가고 싶었냐라는 질문은 사실 지금도 답하기가 힘들다. 어떤 것들은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이 그냥 좋기 마련이니까. 이십 대 초반 막 KLM 네덜란드 항공사의 승무원으로 비행을 시작했고 그때 첫 휴가로 혼자 2주간의 배낭여행을 가게 된 나라였다. 스페인 남부의 도시 그라나다에 머물던 중이었다. 여행객들 무리에 섞여 알바이신 지구의 산니콜라스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알함브라 뒤로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태양을 바라본 적이 있다. 때마침 집시들이 들려주는 기타 선율에 온 몸에 닭살이 돋고 가슴이 떨리는 경험을 했는데 그걸 왜 좋냐니. 그 왜라는 질문이 오면 꾸역꾸역 그때의 느낌을 언어화해서 대답을 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본래 한번 여행한 곳을 다시 찾기보다는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편인데도 첫 방문 후에 세 번을 더 찾은 나라가 스페인이었다. 나도 모르겠는데 자꾸 물으니 상대를 봐가며 이런저런 그럴듯한 말들로 그 왜에 대한 답변을 만들고 있었다. 사실 그건 내가 우리 엄마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류의 그냥이었는데.
고맙게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테두리 안에 포함된 이들은 각자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염려와 잔소리보다는 응원을 해주었다. 그래, 지금껏 잘 해왔으니까. 우리는 너를 아니까.
그렇게 스페인 출국 날짜를 받아 놓고 지내던 중,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가 사회생활하면서 친해졌다는 절친을 처음으로 소개받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간 서로의 스케줄 조율이 어려워 만나지 못했으나 나랑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재밌는 녀석이라는 말에 은근히 기대해왔던 만남이었다.
그는 9글에서 꽤나 잘 나간다는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커리어가 잘 풀려 승진도 빨랐고 직책상 소위 말하는 어딜 가나 갑의 입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랬다. 그는 이미 우리와 만나기 전부터 거래처 사람들과 거나하게 한잔을 하고 와서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술자리 초반에 그와 남자 친구는 서로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업데이트했으며 다소 캐주얼한 대화들이 오갔다. 술자리가 길어지자-무례하려고 마음먹고 그랬을 리 없겠지만-이미 알코올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진 그 친구는 별다른 필터를 거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한나씨는 스페인에 왜 가요?
아, 저 원래 스페인을 좋아해요. 스위스에서 호텔 대학 다닐 때 6개월 인턴쉽도 일부러 스페인에 있는 호텔에서 했고요. 이번에 가서 스페인어도 배우고 1년 정도 살아보고 싶어서요.
가서 살아본 다음에는? 이후 계획이 따로 있나? 목표는?
그건 아니고 일단 지금 당장 하고 싶은걸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에요. 어떤 목표가 있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가는 게 아니고요. 스페인어도 열심히 해서 나중에 그걸 써먹을 수 있는 일을 찾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스페인어가 또 전 세계 사람들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쓰는 언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래저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스페인어? 나중에 써먹을 거 생각하면 중국어를 해야지. 앞으로 대세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이야. 그런 논리라면
전 세계 인구가 가장 많이 쓰는 중국어를 배우는 게 맞지. 근데 그전에 영어는? 영어 공부부터 해, 한나 씨.
슬슬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남자 친구의 만취한 절친에게 끝까지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이성과 당신이 뭔데 내 인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야 너나 잘하세요라고 개념을 선물해 주고 싶은 감정이 내 안에서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르고 있었다. 울그락 불그락 내 이마에 부풀어 오르는 혈관을 보며 진땀을 빼고 있는 남자 친구의 얼굴을 봐서 최대한 불편한 마음을 티 내지 않고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날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택시 안에서 남자 친구는 거듭 사과를 했다. 원래는 참 괜찮은 녀석인데 술이 웬수라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쳤고 나는 눈물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절친이라는 인간이 꼰대 중에서도 가장 피해야 한다는 젊은 꼰대였고(실망),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그 꼰대 짓을 나에게 하도록 허용하였으며(후회), 나의 스페인행이 대단히 잘못된 선택인 양 말하는 것에 시원하게 반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분통함).
무엇보다도 People that doesn't matter to me not even a bit(나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차도 납득할만한 답변을 주려고 고군분투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의 눈물이었다. “시원찮은” 내 대답에 반응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숨이 막혔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콘텍스트는 철저히 간과한 채- 나를 마치 대책 없고 생각 없는, 그래서 인생 선배의 조언이 필요한, 저보다 어린 여자 정도로 취급을 한 것에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다음 날 술이 깨고 난 그 친구는 내 남자 친구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듣고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제정신일 때에는 수위를 넘을랑 말랑 했을 그의 오만이 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날은 넘쳐흘렀고 아마 술이 깬 다음날 본인도 아차 싶었으리라.
내 친한 친구가 여자 친구를 스페인에 보내고 혼자 1년 동안 한국에서 기다리며 마음고생 할거 생각하니 딱해서 한나 씨가 안 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랬나 봐요, 정말 미안해요. 건강히 잘 다녀와서 또 봐요, 우리.
1년 동안 여자 친구를 기다릴 절친의 인생이 딱해서 그랬다고? 그럼 내 인생은? 내가 스페인 못살아보고 죽은 원혼이 되어 이승을 떠돌게 되면? 나는 우리가 항상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장거리 연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데? 랜선으로 연애를 이어가고 말고는 온전히 그와 나의 선택인 거고.
뭐,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나는 그의 사과가 진심이었고 본인도 스스로의 오만함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며 지난 행동을 반성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그의 사과를 받았다. 누구든 실수는 하게 마련이고 나도 물론 남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못난 모습이 있을 테니까.
그 일이 있고 몇 달 후 나는 예정대로 스페인에 살러 갔고 그날 일을 되돌아보며 내 분노에 대한 원인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단 한 문장이었으면 됐는데. 그날 이 말을 못 했던 게 그리 분했을 줄이야.
‘익.스.큐.즈.미?(옛다, 영어) 나는 댁한테 어떠한 설명도 빚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내 인생의 Priority(우선순위)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How에 대해 무슨 자격으로 당신이 가타부타하냐고.
다음 글은, 내가 스페인에 산지 1년 가까이 되는 시점에서 쓴 짧은 일기이다. 스페인 살이 후 나는 내 인생과 관련해 내리는 결정들에 대해 굳이 엮이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 피곤하게 Justify(정당화)하는 것을 관뒀다. '그냥, 나는 내가 그러고 싶어서' 면 충분하니까.
세상을 사는데 정답은 없다.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지켜야 할 예절과 도리를 갖추고 각자의 개성대로 멋지게 살면 그만이다.
서로의 다름을 쉽게 평가 내리고 판단하지 않으며 각자의 가치관이 다름을 인정받고 살 수 있는 곳에 살아보고 싶었을 뿐.
대단한 명분도 목표도 애초부터 없었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이냐 한다면 처음부터 그런 질문에 대답할 이유도 그 무언가를 입증할 대상도 없다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냥, 나는 내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본인들의 방식으로 evaluate(평가) - categorize(분류) - label(꼬리표 붙이기)하고 싶어 한다. 마치 그리 하지 못하면 멘붕이 오는 듯하다.
현실 도피래. 금수저인가 봐. 철없다. 부럽다.
어떻게 해서든지 평가를 하고 분류를 해야 마음이 편한걸 수도 있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나침반이 되어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내 기준대로 열심히 살아왔을 뿐. 많이 웃고 울고 화내고 좌절하고 꿈꾸고 사랑하며 열심히 내 몫을 하고 있을 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주어진 이 단 한 번의 삶이라는 기회를 충분히 누리고 싶다. 내가 행복했고 세비야와 뜨겁게 사랑했고 스페인의 태양에 나를 온전히 맡겼고 좋아하는 리오하의 띤또를 양껏 마실 수 있었으면 정말 그뿐-
만일 지금 나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그룹에 속하는 누군가가 내가 내 인생에서 내리는 어떤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어쭙잖은 훈수를 두려 한다면 말해주고 싶다. 짧고 간략하게.
"그냥, 난 내가 그러고 싶어서^^" (웃는 얼굴로 별 다른 부가 설명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