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덕질이 트렌드라는 거
에어비앤비 트립 팀에서 꼬박 2년을 근무하며 꾸준한 덕질로 성공한다는 말을 피부로 느꼈다. 물론 성공의 의미는 각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월세를 내주는 본업과, 자아실현과 더불어 소소한 부수익까지 가져다주는 덕질(취미) 사이에서 적당히 밸런스를 찾은 사람들이야말로 성공한 이들이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 내가 정의하는 덕질이란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으로 깊이 있는 연구와 경험을 쌓는 행위이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 직장인으로서의 수명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요즘, 어쩌면 퇴직 후의 삶은 퇴근 후 소소한 덕질을 하며 미리 준비하는 것이 이상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물론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나는 에어비앤비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트립 호스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에어비앤비 플랫폼에 올리는 데 일조했다. 본업과는 상관없이 본인의 취미가 확실하고 또 그것이 무엇이던 꾸준히 한 덕에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고 만났다.
오랜 기간 채식을 하다 비건 요리법을 스스로 개발한 사람, 플라멩코 춤에 빠져 직접 스페인에 가서 배우고 온 사람, 우리 전통술이 좋아 직접 양조장에서 술을 빚는 사람 등등 이들이 꽂히는 대상도 꽂히게 되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꾸준한 열정만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덕질은 이제 단순히 취미에 그치지 않고 부가 수익을 창출하거나 직장 생활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에 기여하고 있다. (심지어 본업을 그만두고 덕질로 창업해서 성공하신 분들도 더러 만났다.)
에어비앤비 트립은 덕질을 수익화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서비스이다. 간단히 설명해서 에어비앤비 트립이란 로컬 호스트가 기획한 (보통) 2~3시간짜리의 현지 경험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워크숍이나 클래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떤 분야의 반(半)전문가인 로컬 호스트가 스스로 기획하고 제공하는 현지 경험이면 된다. 안전에 관련된 기준 몇 가지만 지키면 특별한 제약 없이 누구든지 트립 호스팅이 가능하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반(半)전문가이다.
예를 들어, 요리에 관한 한 전문 셰프 못지않은 열정, 경험, 그리고 손맛을 가진 호스트가 외국인 게스트와 함께 한국의 재래시장에서 장 봐온 재료로 본인의 집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클래스가 될 수도 있고, 한 동네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호스트가 로컬만 아는 그 동네의 숨은 명소와 맛집들을 내레이션을 넣어 구경시켜주는 워킹 투어가 될 수도 있다. 호스트 자격이라는 게 별다른 게 아니라 딱히 어떤 분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관련 자격증을 갖춘 것도 아니지만(학위나 자격증은 열정을 증명할 레퍼런스 정도의 의미가 되겠다) 오랜 시간 꾸준히 쌓아온 지식과 경험 덕에 그 주제에 관한 한 덕후의 반열에 오른 정도일 것이다.
트립 호스팅에 앞서 호스트들은 다양한 트립 아이디어를 에어비앤비에 제출하게 되고 이들 중 에어비앤비 트립의 기준에 부합하는 아이디어들만 약간의 수정을 거쳐 비로소 플랫폼에 상품으로 등록이 된다. 여행자들이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장소나 활동은 에어비앤비 트립에 부합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수정이 요구되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액티비티 자체보다 로컬 호스트들의 삶과 관점을 공유하는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호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조향사인 호스트로부터 향수 만드는 법을 두 시간에 걸쳐 배우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호스트가 향수를 만들게 된 배경이나 그가 향수 만들기를 통해서 나누고 싶은 메시지에 더 무게를 둔다. 단순 클래스에 그치는 여타 플랫폼 서비스와 경쟁하는 와중에 에어비앤비는 그들의 중심 가치(Core Value)인 스토리텔링, 따듯함, 소통, 소속감을 간과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에어비앤비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이다.
작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직장인들의 주중 퇴근 후의 삶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2030 세대의 'YOLO(You Only Live Once)' 정신과 '어차피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은 무리'라는 생각은 결과적으로 '아끼지만 말고 돈도 적당히 쓰면서 살자'는 의식에 닿게 되었다. 그 덕에 오늘의 행복에 투자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과 퇴근 후 여가 생활이 키워드로 떠오른 게 아닐까 싶다.
예전이라면 야근에 허덕이다 집에 와서 겨우 씻고 저녁을 먹고 잠들었을 날들은 이제는 나만의 소소한 취미를 찾고 취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으로 자연스럽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어 온 것이다. 이렇듯 변화하는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맞춰 최근 몇 년간 취미 갖기를 권장하는 플랫폼 사업이 활성화되었다.
이는 또한 작년과 올해 한국 에어비앤비 트립의 타깃 시장에서 국내 게스트의 비중이 커진 이유이기도 하다.
에어비앤비 트립은 여가 생활에 대한 Demand와 Supply가 만나는 곳이며 트립의 대상이 외국인 게스트이건 내국인 게스트이건 내가 호스트로서 갖고 있는 콘텐츠만 확실하다면 이제 수요는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는 얘기다.
내가 좋아하는 일 = 내가 잘하는 일 = 만족스러운 수익이 나는 일인 덕업일치를 꿈꾸는 직장인들이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기에 앞서 활용해 보았으면 하는 서비스이다. 내가 호스팅이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달력에 열어 둘 수 있어 부담이 없고 큰 자본과 리스크 없이 현존하는 시장에서 내가 가진 콘텐츠를 충분히 시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에어비앤비 리뷰 시스템을 통해서 국내외 게스트로부터 정직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호스팅을 하다가 잘 안되면 달력을 닫으면 그만이니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거다.
나아가 덕질의 수익화를 떠나서 여러모로 취미를 갖고 덕질을 하는 것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믿는다. 순수하게 나를 위해서, 내가 좋아서, 잡생각 안 하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혹자는 취미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것도 먹고살만하니까 하는 거라고 한다. 혹자는 삶에 별 다른 의미를 찾지 않아도 직장 생활만 열심히 하며 사는 것이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꽤 괜찮은 직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만족스러웠고 마음은 헛헛했다. 만일 그때 퇴근 후에 적극적으로 취미 활동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여담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 = 내가 잘하는 일 = 만족스러운 수익이 나는 일의 덕업일치 공식이 성립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정녕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있다. 나의 덕질이 내 밥줄이 된다면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 했던 행위가 과연 생계라는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저 셋 중 무엇을 가장 먼저 포기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슴이 뛰고 행복한가
-나는 그 일을 잘하는 편인가
-그 일로 먹고살 수 있는가
나 역시 에어비앤비 퇴사 후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모르긴 몰라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덕업일치는 고사하고 생일을 삼십 번 넘게 맞고도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깝지만 내게도 생소한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그 길이 결코 당신 혼자 걷는 길이 아니니 많이 시도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계속 나아가라고 응원해주고 싶다(스스로를 토닥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