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를위한 올바른 길은?
일상이었다가 업이 되었다. 제로 웨이스트 샵을 열어버린 것이다.
샵을 차리면서 공간 구성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선반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건은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남편과 오랜 기간 이야기했다. 그렇게 정해진 콘셉트는 미술관의 기념품샵이었다. 작품의 의미, 작가의 삶 등을 곱씹고 너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념품샵에서 구매하듯이, 손님분들이 샵에 들르면, 제품의 필요성이나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구매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 생활이 보기에 아름다우며, 그런 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의도한 대로 일단 방문한 분들은 예쁘다, 혹은 깔끔하다, 고 말씀하셨다.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들인 물품이 많이 없기 때문에 설명서가 구구절절할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이건 이렇대 저건 저렇대, 하며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도 볼 수 있었다. 뿌듯한 일이었다. 다만 그만큼 물건 앞에서 "어머! 이거 예뻐! 살까?"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일회용 대신 잘 사용되길 바라며 비치한 물품이 기능보다도 외관으로 평가되고 카운터에 놓이는 경우가 흔했다.
나는 꽤 주관이 뚜렷한 샵지기로서 마냥 물건을 판매하지는 않는다. 제로 웨이스트 샵이 먹고사는 업이 되었으니 판매량과 금액이 중요하지만, 카운터에서 물건을 덜어내도록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제로 웨이스트에 호의적이라고 느껴지는 분들에게 혹은 초보 제로 웨이스터에게 바빠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질문을 건네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말이다. 이 물건을 써보았는지, 사용하고 있는 대체품이 지금 집에 있는지, 바꾸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 나름 다양하게 과거의 이력을(?) 훑는다. 물건 구매의 이유가, 필요할 것 '같아서' 혹은 '예뻐서' 라면 나는 불편한 점을 여러 가지 이야기하고 그래도 사용하시겠냐고 다시 되묻는다. 정말 잘, 오래 사용할 물건인 것 같으냐고도.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섣불리 구매했다가 불편함에 후회했던 물건들이 우리 부부에게도 다양하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샵지기의 역할이 제로 웨이스트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여러 갈래의 길을 소개하는 것 또한 포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만 손님들의 구매에 참견한다. 다소 건방진 참견일 수도 있는데 아직 불만이 접수되지는 않은 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기존에 목표로 정한 내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오픈한 지 고작 한 달이지만 우리 매장에서 초반에 잘 나가는 물품 중 하나는 네트백이었다. 정말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이유는?! 역시나 "예뻐서"였다. 처음엔 저렴한 가격이 아니니 필요에 의해서 구매하시겠구나 생각했고, 별 다른 참견 없이 판매했다. 사실 비치된 물건이 잘 나가서 기분이 좋다, 고 느낀 적이 더 많았던 것도 같다. 내 안목이 나쁘지 않았나 보다고 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으니까. 그러다가 그 앞에서 나누는 반복적인 이야기를 듣고 이게 맞는 건가 싶어 졌다. 에코백을 남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내가, 에코백 같은 네트백을 판매하고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비슷한 며칠을 보내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지금 샵지기로써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에코백이 에코 하려면 최소 131번은 사용해야 한다는데, 그래서 우리는 에코백을 더 이상 사지도 버리지도 않는데, 예쁘다는 이유로 네트백을 팔고 있으며 내가 소비를 조장하는 것 같다고. 그래서 네트백이 다 팔리면 추가 입고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남편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역할은 네가 네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겠다며 말을 시작했다. 만약 예뻐서라도 자주 꺼내서 그 네트백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필요한데 예쁘기까지 해서 기꺼이 구매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그 사람들이 잘못된 제로 웨이스트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비록 예뻐서 구매한 게 있더라도, 샵에 방문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물건이나 내용들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깨닫거나 이런 문화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역시 중요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 말문이 턱 막혔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던 것일까, 자만심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내게 큰 역할을 부여한 것은 아닐까,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나는 손님들의 '물건을 선택한 이유'를 많이 듣고 싶고, 손님들이 담아낸 물건들을 덜어내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다만 요즘엔 내 경험은 내 경험일 뿐이라는 걸 의식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나 가려고 하는 길이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다는 걸 되뇌려 한다. 그러니까 제로 웨이스트는 단지 그러한 물건을 쓴다고 시작하거나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샵을 차렸기 때문에 내가 더 제로 웨이스트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은 결코 아니란 것을 명심하려 한다.
네트백의 재입고 여부는 아직 답보 상태지만,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보다 현명하게 결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