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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 Dec 04. 2021

물건의 나이

제로웨이스트 샵지기의 어떤 하루

12월 3일 매장 문을 일찍 닫았다. 김포의 어느 작은 도서관에서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설렜으나 한편으론 금요일이고 춥고 골목 구석구석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어서 '사람들이 올까? 난 셀럽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기 시급 보다 세다며(ㅋ) 운전기사가 되어 주겠다고 반차를 내고 온 남편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와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니 단 한 사람이 되어도 열과 성의를 다하라고 조급해 하는 나를 혼냈다. 나는 나를 썩은 마인드의 소유자로 취급하지 말라고 그에게 가자미눈을 한 번 치켜떠주었고, 도서관에 들어가기 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들고 간 다섯 권의 증정본을 내려놓고, 소개하기 위해 들고 간 제로웨이스트 아이템들을 정리하면서 긴장된 마음과 호흡도 가다듬었다.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한 것치곤 너무 떨어서 말이 와다다 튀어나왔다. 너무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중간에 목도 한 번 메어줬더니 담당자님이 물을 가득 따라주셨다. 하지만 우리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내내 이런 일상이 재미있거나 의미 있게 전달될까 걱정되어 의아함을 조금은 떨치지 못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우려와 달리 엄마와 같이 온 아이들도 열심히 들었는지 중간에 낸 퀴즈에 모두가 한목소리로 정답을 맞혔다. 맞춘 정답에 맞는 아이템을 나눌 때는 모두가 '우와, 우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들을 보며, 아 그래 이런 기쁨을 위해서 내가 온 거였지, 하고 혼자 마음이 뭉클해져선 갑자기 신이났다.


이야기를 간결히 끝내고 정리를 하는데 장장 네 페이지를 노트 가득 필기한 어르신이 보였다. 제일 질문도 많으셨던 분이었다. 진열한 아이템을 보기 위해 테이블로 와선 종이 립밤이 제일 궁금했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같이 사진 찍고 싶어요, 하며 다들 떠난 자리에서 휴대폰을 내밀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너희에겐 이런 일상이 불편하거나 유난이 아니기를, 더 아름다운 미래를 누리기를 바랐고, 나와 같은 어른들이 더 노력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다양한 제로 웨이스트 일상과 아이템을 소개했지만 내가 꼭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말미에 과제로 드렸다. 비록 내가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건 내 주변에 있는 물건 중 가장 오래된 물건을 찾는 것인데, 미니멀 라이프와 제로 웨이스트를 시작하곤 물건에 나이를 매기는 게 우리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됐고 그걸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예를 들기 위해서 서른여섯 살이 된,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이불의 이야기를 잠시 했다. 외할머니의 선택으로 엄마의 혼수였고 다시 내게 온 솜이불 이야기를.


세대를 거쳐 온 물건엔 추억과 기억이 가득할 수밖에 없고 그런 스토리가 깃들면 물건을 더 잘 사용하고 싶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다른 내 물건도 더 소중하게 오래 쓰고 싶어지고, '오래된 물건'이 고루하고 남루한 게 아니라 멋스럽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도. 제로 웨이스트란 게 그렇게 불리는 아이템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있는 걸 잘 사용할 때 의미 있을 것 같다고. 그러니 내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는 해보셨으면 좋겠다고. 곱씹고 기록하셨으면 좋겠다고.


아아-

이게 제로웨이스트 샵을 운영하는 사장이 할 말인가! 

너의 입엔 풀칠을 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 모순된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남편에게 메시지 전달이 잘 된 것 같냐고 끝없이 확인하면서. 만족할 만한 답을 얻고 나서 나는 어느 때보다 푹 잤고, 일어났고, 출근을 했고, 먹고 살 걱정을 하며 또 이렇게 글을 쓴다.


매장에선 무엇이 가장 오래 내 인생에서 남게될까.

주변을 다시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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