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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Nov 17. 2021

가끔은 불편하게 치는 소리가 더 잘 들리는 법

불편함과 불안함 그 어디쯤에서


 최근 피아노를 치면서 내게 떠오른 화두는 자연스럽게 치는 것이다. 음을 정확하게 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부자연스럽게 들리고, 리듬이 느껴지지 않아 곡의 진행 방향에 따라서 힘을 빼고 치려고 노력한다.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소리에만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놓치는 음들이 생긴다. 나 혼자만 연습할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부분들이 레슨만 가면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 혼자 힘 빼면서 치면서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티가 났는지,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가 어물쩡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불편하게 한 음, 한 음 치며 소리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것, 그것이 연주의 본질인 것을 언제나 연습할 때면 잊게 된다.

 가끔 불편한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마주해야만 했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 예를 들자면 내가 사랑받는 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은 누군가 나에 대해 한 번 더 물어봐주는 순간들이다. 상대방이 그 생각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채, 관계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내 가치관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된다고, 그럴 수 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가치관이 흐려지게 되는 데 어느 순간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순간순간 서운한 게 생기고, 끊임없이 상대의 본심을 의심하게 된다. 그 말인 즉 잠시 이성을 잃어 본질이 흐려진 것뿐, 내 가치관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연주도 같다. 의도적으로 외면하면, 티가 나는 법이다. 소리가 튀거나, 소리가 사라지거나, 소리를 해치거나. 매끄러운 연주가 될 수 없을 뿐이다. 손가락이 불편하더라도 악보를 마주하고, 소리에 집중해서 한 음 한 음 쳐내야 연주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본다.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지나친 것들이 없는지, 연주도 일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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