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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 Oct 11. 2021

빈 공간 없이 소리 채우기

빈 틈 없이 채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

 피아노 레슨 중 선생님이 던진 한 마디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서 연주가 딱딱하게 들리는 것보다 내 연주의 더 큰 문제는 음 사이사이가, 부자연스럽게 뚝, 뚝 끊어진다는 것이었다.


"피아노를 칠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

무슨 생각을 하냐는 말에, 그저 틀리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고 했다. 그제야 선생님은 문제를 깨달았다는 듯 잠시 레슨을 종료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악보에만 집중을 하다 보니 단지 한 음에만 집중해서 칠 뿐 음 사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보에 쓰인 계이름을 실수 없이 쳐야 한다는 것에만 매몰되어 치다 보니, 연주 자체가 밋밋하고 부자연스러웠던 것이다. 비단 피아노뿐만 아니라, 예술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자신의 감정을 잘 해석해서 표현하는 사람의 창작물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남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대한 몰입, 감정적인 동화는 굉장히 빠른 편인데 그와 정반대로 나는 내 감정을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비단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좋고 싫음의 경계선이 생각보다 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밀고 당기는 그 미묘한 감정들이 주는 순간의 짜릿함을 오랜 시간 즐기지 못한다. 이런 나의 성격은 고스란히 연주에 나타나게 된다. 악보를 틀리지 않고 치는 것에만 몰두하여 음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레가토를 전혀 실행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성진 초 리사이틀은 당연 최고, 연주란 무엇인가의 정석.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올 때마다 그 큰 공간을 오직 피아니스트의 손 끝에서 나오는 피아노 소리로만 가득 채워 관중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줄 수 있음에 감탄하고, 존경한다. 쇼팽 에뛰드 혁명을 치고 나서 건반에서 조성진이 손을 떼자마자 터져 나온 관중들의 박수갈채와 함성소리를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감히 내가 그런 감동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나, 리사이틀을 통해 느낀 건 연주자의 감정이 연주에 얼마나, 어떻게 담기느냐에 따라 연주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건반 위에서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아직은 너무나 미숙한 단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표현하는 것이 아직 너무 어렵다. 직설적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굉장히 자기 방어적일지도 모르겠다. 직설적이라는 단어가 솔직해 보이지만, 사실은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극히 내 관점에서 내 감정을 필터 없이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몇몇 상황에선 좋지 않은 표현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연주를 할 때 조금 더 1차원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이 멜로디를 칠 때 그려지는 풍경이라던지, 분위기를 먼저 상상하며 표현하고자 한다. 이 음이 주는 순간의 풍경들, 예를 들면 풀 밭을 거니는 모습, 갑자기 비가 몰아치는 듯한 광경을 멜로디마다 부여하며 노래하듯 연주하고자 한다. 최대한 내가 치는 음 사이사이가 비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방안으로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쯤 모든 공백이 채워질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최대한 연주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때쯤이면 내 감정도 조금 더 유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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