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은 비우고 버려서 덜어낼 것이 없는 모든 물건들이 그 자리에 있는 상태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느낌이 좋다.
나를 안심시킨다.
쓰레기통을 비운다.
버려야 할 것들이 잠시 거쳐가는 공간.
가끔 잘못 들어간 것들이 다시 기회를 가지는 공간.
그렇기에 완전히 비우는 것에 일종의 책임감도 느낀다.
마음도 비운다.
마음에 쌓인 먼지를 멀리서 바라보면 퍽 운치는 있겠지만
타인과의 비교에서 안도감을 얻는 내 비겁함은 코끝을 비릿하게 찌른다.
나의 삶을 살자는 머릿속 공허한 다짐을 내 몸이 있는 힘껏 거부하거나
정신적 면역력이 뚝 떨어져 스스로 찾아가는 자기혐오에 짓눌릴 것 같을 때 마음을 비운다.
인생에 있어 조금은 버거웠던 굴곡 뒤에 남은 마음의 얼룩들.
얼룩을 지우고자 생긴 나의 강박들.
마음의 미니멀리즘이 간절해진 이유다.
매 순간,
인생의 책임감을 시험하는 얼룩과 강박과 반작용에
별 것 아닌 것에 집착하거나 별 것인 것을 모른 척하거나
당장 결정하고 싶다거나 결정을 되도록 미루고 싶다거나
무언가 비워지면 무언가 차오르며 마음이 지쳐갈 때.
내가 짊어진 이런 사실을 마음 한켠에 정리한다.
극복했던 과거의 후회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