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도 신앙과 우익

by M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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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90년대 냉전체제의 해소 과정 속에서 발생한 경제 침체를 타개할 방법 중 하나로 우경화 정책을 현재까지 취해오고 있다. 21세기로 들어오면서부터 우익 세력의 장기 집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교과서 역사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혐한 시위 등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한일 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일본의 우경화가 지향하는 목표 분석과 대한(對韓) 외교정책 예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연구는 우익 세력들의 천황중심주의 같은 지배원리에 대한 파악과 이 원리 기저에 깔려 있는 일본 고유 종교의 신도 관련 사상에 대한 이해이다. 우선 신도 신앙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신도 신앙


1880년대 쓰인 우에다 분사이(上田文斎)의 저서『일본명소』에 등장하는 신사 삽화



신도(神道) 는 일본의 전통종교이다. 신도의 정의는 연구자에 따라 다르고 대체로 애매해서 포괄적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흔하다. 일본 문화청에서 출판한 종교연감(1997)에서는 신도를 이렇게 정의했다.






“일본 민족에 고유한 신령에 관련된 신념을 기반으로 발생한 종교를 총칭하는 말이자 신과 관련된 신념이 생활 속에 널리 전승되어 온 사고방식까지 포함한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파된 당시(528년)에 신도 신앙은 본격적인 종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불교의 전래로 일본인들은 일본 고유의 신령을 숭배하는 자신의 종교를 부를 단어를 찾아야 했고 이때 최초로 신도라고 불렀다. 또한 유교나 다른 외래 종교들이 일본에 퍼진 이후에, 일본 신도는 일체의 외래사상을 배제하는 순수한 신도를 주장하고 신도를 일본만의 고유한 종교로 내세우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 속 신도적 정신


원시종교의 경우 짐승, 초목, 바다 등과 같이 인간으로 체화되지 않은 대상을 숭배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본 신도 신앙이 재밌는 것은 비일상적인 것과 초월적이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모든 것을 신령으로 모신다. 일본 신도에서는 여전히 원시종교의 흔적들을 볼 수 있고 이런 신앙적 행동방식이 일본인의 삶과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숲의 묘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숲은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인간은 숲 속에서 다른 생명들과 공존하는 삶을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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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가미' 가 존재하는 태초의 숲, 영화 <모노노케 히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대표적 작품 <모노노케 히메>에서 묘사된 숲은 일본 신도(神道) 사상과 연결된다. 실제의 숲을 정교하게 본떠 묘사된 숲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원초적 자연의 모습이며 신화적 공간이다. 많은 일본인들은 어릴 때부터 특별히 신도를 종교로서 신앙하지 않는다 해도 신사와 신도의 숲에 대해 매우 자연스럽고 친숙한 감정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신도의 숲에 대해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기억을 건드림으로써 이 영화는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예전에 일본 국토는 8백만 신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현대 일본인들은 신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숲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를 다분히 보여준다. 또한 숲의 사상이 인류를 구한다는 발상, 즉 신도 사상이 세상을 구한다 는 너무나 일본주의적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다.




메이지 유신과 국가신도의 탄생


메이지 유신은 천황과 신도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정체성 정립에 성공을 거둔 역사적 사건이다. 메이지 정부는 외부적으로는 서구의 근대문명을 흡수하여 근대화를 추구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왕권강화를 위해 제정일치라는 고대국가에서나 사용했던 이데올로기를 채택했다. 제정일치의 결과 일본은 국가신도를 국교로 지정한다. 국가신도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곤 한다.


“민족종교에 기원을 가진 집단 종교 인 신사신도를 국가의 규모로 확대한 종교로 일본 국토와 일본 민족에 한정된 국교"



스크린샷 2020-07-10 오후 10.31.38.png 우에다 분사이(上田文斎)의 저서『일본명소』에 등장하는 신사 삽화, 천황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는 신사


말하자면, 국가신도는 일본에 존재하는 종교들 가운데 불교와 기독교 이외의 거의 대부분의 민간 종교를 통합하여 그것들을 총괄하는 형태로, 천황이 지배하는 국가체제에서 국민을 교화하고 통치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가의 제사를 담당하는 국교로서의 신도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신(神, 신도 신앙), 불(佛, 불교), 기(基, 기독교)”라는 세 개의 종교 위에 천황숭배와 신사 숭경을 전 국민의 의무로 삼는 최상위 종교로서의 특징을 국가신도에 부여했다. 그러한 특성을 더욱더 구체화하기 위해 국가신도는 천황을 태양신의 후손인 동시에 하늘로부터 합법적인 통치권을 부여받은 인물이자 일본인들에게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는 상징으로 내세우게 되었다.




국가 신도의 발전과 이용


이러한 주장은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자는 ‘진무창업(神武創業)’의 운동으로 이어져 당시 상당한 효과를 나타냈다. 실제로 메이지 정부의 ‘진무창업’ 운동은 밀려드는 서구 강대국들의 강력한 군사력과 과학기술에 위축되어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 정신적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근대화 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천황 중심 국가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처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던 신도는 이후 사상의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세계에 널리 알림으로써 일본인들의 우월한 정신성을 강조하고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에 활용하고자 했다.


일본 국내에서의 철저한 사상교육의 결과로 청일전쟁(1984), 러일전쟁 (1904) 당시에 국가신도의 영향 아래 전국의 신사들은 전승기원을 기원하는 군사적 성격을 지닌 종교 기능까지도 수행하기도 하였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신도 계열에 배치되어 국가신도의 군사적 성격을 대표하는 신사로 발전하였고 신민으로서 천황의 이름을 걸고 싸운 전몰자를 '영령(英靈)'으로 모시는 곳으로써 그 위상이 부상 되기도 하였다.




우익세력과 국가신도


도쿄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는 '신도 및 신앙을 왜곡해서 일본 국민을 침략전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의도된 군국주의적 내지는 과격한 국가주의적 선전에 이용되는 것의 방지'를 위해 '신도지령(神道指令)'을 통해 신도 폐지를 명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정한 정교분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우경화 현상이 일본 수상의 정기적인 이세 신궁 참배,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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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치 게이조 수상(좌), 모리 요시로 수상-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 (우)



이러한 입장은 현재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현재 보수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1999년 오부치 게이조 수상 주도하의 '국기국가법 (國旗國歌法)'을 제정함으로써 천황주의의 상징물인 '기미가요'를 국가주의 교육의 기반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습, 2000년 모리 수상의 발언 등을 통해서도 일본 우익의 천황중심주의적 입장은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


21세기 국제화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천황중심적 역사관의 부흥을 토대로 한 국가신도 사상으로 일본 국민의 내면적 통합과 정체성을 확정하려는 태도 지속되어왔고 코로나 19 사태로 각 나라들의 국경선이 좁아지고 있는 요즘에는 더욱 심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볼 때 일본인의 천황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보편적이며 이것을 빼놓고는 일본 사상을 논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의 현 헌법에서 천황이 일본의 상징이며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언급되어 있는 한 일본인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세상 역시 황국사관주의적 사고와 이와 관련된 신도적 행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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