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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Dec 09. 2020

적당한 책값은 얼마일까

편집자가 말해주는 출판 이슈

내가 다니는 출판사에서 최근에 5만 5000원짜리 묵직한 책을 만들어냈다(내가 담당편집한 책은 아니다). 누군가는 책값이 좀 비싼 거 아니냐고 하소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00쪽이 넘는 분량, 번역 기간 1년, 편집 기간 3개월(월화수목금금금 풀 근무) 등등 얼마나 힘겹게 이 책을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게 비싸다고? 초판 1쇄가 다 팔려야 겨우겨우 손익분기를 맞출 수 있는 책이다. ‘제발 많이많이 사주세요!!’라고 애걸복걸하고 싶지만서도, 단순한 소비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역시나 비싸게 느껴지긴 한다. 5만 5000원이면 든든-한 국밥 열 그릇이라구….


도서정가제의 표면상 논쟁의 한 축은 책값이 비싸다는 소비자와 책 하나 만드는 데에 품이 너무 많이 든다는(그래서 책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생산자 간의 갈등이다.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현재 책값이 비정상적으로 싸며 (사회적 구매가 존재한다면) 신간의 1차 판매 가격이 지금보다 50퍼센트는 올라야 출판사가 안정적으로 다양한 책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대희, 2018.1.26.). 헉, 그럼 방금 언급한 책은 8만 2500원은 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안 그래도 비싼데(?) 이 정도 가격을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용인하긴 어려울 거다.


2019년에 출간된 『에크리』는 정가가 무려 13만 원. 어떤 소비자는 이 가격이 ‘비윤리적’이라며 지탄했다.

 

비싸다 vs 비싸지 않다. 서로 타협할 만한 적당한 책값은 얼마일까?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편집자 한 명이 인문교양서 한 권을 만드는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이 책을 만드는 데 얼마가 들어가며, 그에 따라 몇 원에 파는 게 합리적인가? 내가 생각하는 아주아주 일반적인 책의 꼴은 대략이렇다. 분량 300쪽(200자 원고지 기준 1000매); 판형 152×225mm(신국판), 무선제본; 가격 1만 6000원.


가장 먼저 제작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제작 사양은 이렇다.

발행 부수: 1500부

본문: 그린라이트 80g

표지: 랑데부 울트라 화이트 210g

면지: 매직칼라 110g

기타: 무광코팅, 후가공 에폭시

총 제작 비용: 200만 원     


초판 1쇄로 몇 부를 찍을까? 『2019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초판 1쇄 발행 부수는 평균 1217.6부다. 여기서 좀더 잡아서 1500부를 인쇄하자. 사실 이 정도는 매우 적게 찍는 편이다. 잘나가는 책들은 최소 3000부에서 보통 5000부까지도 찍는다. 한번에 많이 찍을수록 권당 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본문 종이는 대체로 모조지가 쓰이는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좀더 저렴한 라이트지를 사용했다(더 두껍고 거칠다는 단점이 있다). 표지에 반짝거리는 은박 같은 후가공을 곁들이면 책이 더 예뻐지지만 그만큼 비싸진다. 안타깝지만 에폭시(볼록볼록한 느낌) 정도만 주자.


그다음으로 계산할 건 편집 비용이다.

편집 기간: 2개월

본문·표지: 디자인 외주(조판은 편집자가 함)

홍보: 언론사 릴리스, 저자 강연회, 카드뉴스 제작, 서점 매대 구입

기타: 유통 및 관리

총 편집 비용: 800만 원     


편집자의 연봉은 연차에 따라 다르다. 출판계 사람들이 구인구직을 위해 주로 찾는 사이트인 북에디터(http://bookeditor.org/)에는 2019년 9월~2020년 8월 동안 ‘출판계 연봉 공개(익명의 설문지)’라는 설문이 올라와 다양한 출판노동자들의 연봉(및 근무 환경) 데이터를 수집한 적이 있다. 여기서 3년차의 평균 연봉은 약 2700만 원, 월급이 225만원이라는 소리다(이옥란, 2020.). 편집 기간이 2개월 이므로 편집 노동에 들어가는 비용은 400만 원으로 계산했다(그동안 이 책 작업만 하는 건 아니다).


2018년 기준 매출액 실적이 있는 출판사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체가 거의 70퍼센트(1~2인이 50퍼센트)에 달할 만큼 출판사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다. 그만큼 편집 외에 작업은 외주를 맡기는 경우가 많으며 홍보에 전념할 여력이 별로 없다. 디자인 외주와 홍보에는 각각 150만을 책정했다(외주 비용과, 특히 홍보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큰 출판사에서는 홍보에 몇천만 원을 지르기도 한다. 물론 작은 데서는 꿈도 못 꾸지만). 그리고 1500부나 되는 책을 관리하는 데에도 돈이 든다. 이는 100만 원으로 잡았다.


그리하여 제작과 편집 비용으로 총 1000만 원이 나온다. 이제는 계산 방향을 바꿔서 1만 6000원짜리 책으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그걸 저자·서점·출판사가 어떻게 나누는지를 생각해보자. 1500부를 찍었으므로 이게 다 팔렸을 때의 매출액은 2400만 원이다. 저자 인세는 10퍼센트(240만 원)이고, 서점은 35퍼센트(840만 원), 출판사는 나머지 55퍼센트(1320만 원)를 가져간다. 출판사의 몫에서 방금 계산한 비용을 빼면 320만 원이 남는다. 그런데 이 초판 1쇄가 전부 팔리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7.3개월이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 책 한 권으로 1년 5개월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320만 원!!


여담이지만, 1억 원짜리 책도 있다(있었다).


320만 원도 온전한 수익이 아니다. 이제 이걸 가지고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사무실 임대료, 난방·전기·수도 세, 포토샵이나 인디자인 등 편집 소프트웨어 사용 비용, 커피(편집자의 연료), 대출 이자 등등. 남는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마이너스다. 이래서야 원…. 출판사는 과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익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는 걸까?


첫번째 방법, 다품종 소량 생산. 출판사는 일단 여러 종의 책을 꾸준히 만들어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은 한번 만들어두면 조금씩 팔리긴 한다. 최근에는 나의 출판사는 5년 전에 초판 1쇄 1500부를 찍었던 책의 2쇄를 찍었다(1500부 터는 데 5년이나 걸리다니 미치겠네). 일단 한번 만들어두면 그 뒤로는 관리 비용만 조금 들어갈 뿐이니까, 과거부터 차곡차곡 만들어둔 책으로 조금씩 돈을 번다(다만 번역서는 사정이 다르다. 대략 5년마다 원저작권사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계약금+관리비가 판매 수익보다 크면 계약을 종료하고 책을 절판해버린다. 가끔 몇몇 독자가 절판된 책을 꼭 구하고 싶다며 출판사에 문의를 하곤 하는데…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가끔은 ‘그렇게 절실할 거였으면 진작에 사서 수익에 보탬에 되주지!’ 하는 원망도 든다).


둘째, 베스트셀러 도박. 지금까지 통계에 따른 ‘평균’을 바탕으로 계산해서 이렇게 암울해 보이는 거지, 세상에는 평균을 뛰어넘어 훨씬 잘 팔리는 책도 많다. 이를테면 2020년 5월 기사를 보면 베스트셀러 『코로나 경제 전쟁』(매일경제신문사, 2020)은 한 달만에 약 3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김슬기, 2020.5.26.). 그 책 정가가 1만 5000원이므로 한 달 매출이 무려 4억 5000만 원!! (홍보에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이 정도면 다른 책들의 판매 부진으로 인한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을 것이다. 꾸준히 불황인 출판계는 지금 ‘이 책 하나만 잘 되면 빌딩 산다!’라는 한탕주의에 빠져 있다(아니, 빠질 수밖에 없을 만큼 너무 책이 안 팔린다).


편집자들 사이에선 ‘유시민급 저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내는 저자를 일컫는 말이다. 언젠가 인쇄소에 방문했을 때 유시민 아저씨의 책이 이제 막 제본되어 나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보고선 넋을 잃은 적이 있다. 초판 1쇄로 5만 부를 찍었다나 뭐라나. 한탕주의가 만연한 출판계 편집자들은 이 정도 급의 저자를 붙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방법은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계약금)을 손에 쥐어주는 것. 한때 일본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계약금이 20억 원에 달할 거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정상혁, 2017.3.2.). 초대형 출판사들의 피 터지는 계약금 경쟁에 약소 출판사들의 등은 터지고 있다. 아니, 그 고래들조차도 자기들이 쓸데없이 올려놓은 계약금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고 있다(돈을 너무 많이 준 탓에 책이 웬만큼 잘 팔려도 손해가 난다).


셋째, (더럽고 치사하고 비열하게) 노동 비용 후려치기. 즉, 돈을 덜 주고 일을 더 시키는 것이다. 2개월에 한 권씩 책을 만드는 편집자에게 무리하게 야근을 시킨다면(당연히 야근수당은 없다) 1개월에 한 권도 만들 수 있다. 아니면 편집을 외주로 돌릴 수도 있는데, 편집 외주 일을 하는 프리랜서들은 이 비용이 몇년 째 오르질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알기로 편집 외주 비용은 200자 원고지 1매당 최저 1500원이다(어후 시발). 1000매 분량의 원고로는 15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디자인 외주로 150만 원을 줬지만, 오늘날 프리랜서 북디자이너들의 걱정은 디자이너가 너무 많아져서(경쟁이 과열되어) 단가가 극심하게 낮아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 외주 비용은 50만 원까지 떨어지며 출판사는 홍보 포스터나 카드뉴스 디자인까지 그 돈으로 맡기기도 한다(이름이 안 알려진 디자이너로서는 돈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해도 그러면 일감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를 먹게 된다). 심지어 그 와중에 몇몇 출판사는 대금을 제때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도 하는 등 현재 외주 출판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김세나 2020).


저자에게 돌아가는 인세 10퍼센트(240만 원)도 한번 생각해보자. 책 하나를 집필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 책의 성격에 따라 다를 테니 인문교양서로만 한정해보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다작을 하는 저자라면 2~3개월만에 원고를 다 써낼 수도 있겠지만, 짧게는 6개월~1년, 보통은 1~2년 정도를 집필 기간으로 잡는다. 이 정도의 기간 염두에 둘 때 저자가 받는 240만 원은 정말이지 푼돈이다. 그러니 (유시민급이 아닌 이상) 책쓰기를 ‘전업’으로 삼을 수 있는 저자는 매우매우 드물며, 대부분의 저자가 부업조차도 안 되는 자원봉사 수준으로 책을 짓고 있다(명예와 보람… 열정페이). 매달 2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편집자로서 정말 죄송스럽다. 심지어 이러한 인세 10퍼센트 또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저자의 인세율이 7~8퍼센트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계약금을 자랑하는 초대형 작가. 하루키가 출판계에 독을 풀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1만 6000원짜리 책 1500부가 전부 팔렸을 때 매출이 2400만 원, 이 중에서 저자가 240만 원, 서점이 840만 원, 출판사가 1320만 원. 출판사의 수익에서 책 제작+편집 비용인 1000만 원을 제거하면 남는 돈은 320만 원. 자, 이것은 온전히 정가대로 전부 팔렸을 때의 계산이다. 만약에 여기서 10퍼센트를 할인한다면 240만원의 마이너스가 발생한다. 15퍼센를 할인하면 –360만 원, 30퍼센트를 할인하면 –720만 원이다. 저자도, 서점도, 출판사도, 아무도 이 손해를 감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에게 손해를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가 시작되고, 결국 이해당사자 사이의 철저한 을의 위치에 있는 약자의 손에서 손해는 폭발하고 만다. 베스트셀러 한 방을 노리며 근근이 버티는 약소 출판사, 열악한 환경에 놓인 출판노동자, 유시민급이 되지 못한 저자, 책을 원활히 공급받지 못하는 소규모 동네책방 등등이 터져나간다.


출판사가 살아남는 마지막 방법, 책값을 올린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서 성인의 독서 장애 요인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퍼센트),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7.7퍼센트)가 큰 요인이었으며 ‘책 구입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라는 응답 비율은은 가장 낮은 1퍼센트에 불과했다(한국출판인회의, 백원근 2020). 유튜브나 넷플릭스 보지 말고 책 읽으세요~ 하고 종용할 수도 없고, 하루하루가 바쁜 사람에게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힘드니, 출판사는 부담이 적은 방법으로 가격을 올릴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책값이 비싸다고 느끼는 소비심리를 의식하느라 한번에 50퍼센트 인상은 어렵지만 말이다.


적당한 책값은 얼마일지를 논의하고 싶지만, 현재 ‘평균적인’(대부분의) 출판사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조차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그러니 책값은 아마도, 도서정가제가 있건 말건, 앞으로 더욱 비싸질 것이다. 비싸지는 책값에 발끈하며 누군가는 “출판사의 노고? 왜 그 노고를 우리가 돈으로 보상해줘야 하죠?”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일견 맞는 말이다. 냉혹한 시장에서 도태되는 사업체는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베스트셀러 저자와 그 저자에게 억대 계약금을 꽂을 수 있는 대형 출판사만 살아남고, 다른 곳에서 만든 수많은 책들은 이내 절판될 것이다. 그러니 그때 가서 절판된 걸 꼭 구하고 싶다며 엄한 곳에 문의하지 말고, 지금 미리미리 책을 많이 사두자.



 

참고자료

김세나, 2020. 「외주 출판노동 현실과 정책 지원 방향」, 『출판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열린 포럼 자료집』.

김슬기, 2020.5.26. 「서점가 달구는 `코로나 경제전쟁`」, <MK증권>.
http://vip.mk.co.kr/news/view/21/20/1798128.html

이대희, 2018.1.26. 「'도서정가제 폐지하고 책값 낮추자' 과연 맞을까요?」,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184033#0DKU

이옥란, 2020. 「우리에게도 ‘출판의 언어’가 필요하다」, 『출판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열린 포럼 자료집』.

정상혁, 2017.3.2. 「先인세가 20억? 하루키가 돌아온다」,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2/2017030200060.html

출판계 연봉 공개(익명의 설문지).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0B-pZzjxevsYo9K6sBpsaAani1924VG5LzA01b2IX7y-x_Q/viewform

출판계 연봉 공개 (익명의 설문지)(응답).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TZlS7RrTteo0nZdR0ZfEtcICQQ5RK1TZcXsC-TxdQSs/edit#gid=770305815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19. 『2019 출판산업 실태조사』.

한국출판인회의(엮음), 백원근(지음), 2020.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한국출판인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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