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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술북스 Feb 21. 2022

응모하기도 전에 불만부터 쌓이는 공모전

유저 인터페이스, 〈소설독서대전〉의 부족한 디테일


http://reading.k-novel.kr


한국소설가협회 주관으로 〈제3회 대한민국 소설독서대전〉이 열렸다고 한다. 일반인,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에게 독후감을 받아, 최대 500만 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행사다. 나름 군침이 싹 도는 이벤트다 싶어서 응모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당연하겠지만 아무 책이나 읽어서는 안 되며 협회에서 선정한 국내 작가의 소설 200권 가운데 하나를 읽고서 독후감을 제출하면 된다. 그런데 「K-소설 독후감 대상 도서 목록」을 살펴보니, 뭔가 좀 이상했다.



공모전 웹사이트에는 목록이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로 올라와 있었다. 다시 말해 검색을 할 수 없었다. 내가 기존에 읽은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목록에 들어 있는지를 보려면 200개 항목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굳이 이런 불편을 감수해야 할까? 한국소설가협회에 전화를 걸어, 도서 목록을 텍스트로 (검색할 수 있게) 볼 수 있는지 문의했다.


담당자는 내 연락처와 이름을 묻고는(왜 이름을 물어보지?), 텍스트 파일을 업로드하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담당자는 한국소설가협회 사이트 공지사항에 한글 파일을 올렸다고 일러주었다. 왜 소설독서대전 공식 사이트가 아니라 협회에 올렸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귀찮음을 무릅쓰고 협회 사이트를 구글링해 들어가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새로 작성된 글에서 첨부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그런데 파일이 좀 이상했다.



알 수 없는 형식의 파일이었다. 문제는 아주 간단했다. 이름에는 그저 ‘hwp’라고만 적혀 있는데, 확장자가 등록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게 무슨 파일인지 알지 못했던 컴퓨터는 내가 파일을 실행하자 어떤 앱을 사용해 열 건지를 물었다. 또다시 귀찮음을 견디고 파일명을 ‘독후감 선정소설.hwp’로 바꾸니 제대로 열렸다. 드디어 목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군. 원하는 책을 검색해보았다.


요즈음 읽고 있는 『다섯 번째 감각』이 목록에 있을까? 음, 없군. 이 책을 쓴 김보영 작가는? 역시 없네. 그렇다면 예전에 재밌게 본 『비행운』은 있을까? 없다. 김애란 작가는? 이분도 없잖아…. 아무래도 내가 읽었던 소설은 없는 것 같았다. 공모전에 참가한다면 목록에서 한 권을 정해 새로 읽어야 했다. 그런데 도대체 뭘 골라야 하지? 조금 난감해졌다.



목록에는 소설 제목, 저자, 장르가 적혀 있으며, 장르는 ‘장편소설, 중편소설, 청소년소설, 소설집’으로 나뉘었다. 사실 나는 K-문학에 문외한이라서 우리나라 소설가들을 잘 모른다. 그나마 조금 익숙한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천선란 작가의 『나인』. 음, 이분의 다른 책 『천 개의 파랑』을 재밌게 봤었지. 구병모 작가의 『상아의 문으로』. 음, 이분의 전작 『파과』를 즐겁게 읽었었지. 채사장 작가의 『소마』. 엥? 〈지대넓얕〉 아저씨가 소설도 쓰셨네? (살짝 불안쓰….)


200개 중에서 새로 하나를 고르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슨 책이 재밌을까, 독후감을 쓰기 좋을까 등등 제목과 저자만 봐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좀더 참고할 수 있도록 출판사 정도는 써주는 게 좋지 않을까? 나처럼 소설가를 잘 모르는 사람은 뭘 읽을지 출판사를 보고 결정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문학동네’는 이름부터 문학적(?)이군. ‘새움’은 한때 너무 어그로를 끌어서 좀 별로). 장르 구분도 더 구체적이면 좋았겠다. 추리, 과학, 로맨스, 역사, 판타지 등등 더 상세하게 나누었다면 한 권을 고르기가 훨씬 수월했을 텐데 말이다. 아, 이런 식의 구분은 ‘장르문학’에서나 쓰이지 ‘순문학’에서는 쓰이지 않는 걸까?


〈제3회 대한민국 소설독서대전〉은 정말 좋은 행사다. 나도 참여할까 고민 중이고,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선전하고 다녔다. 하지만 공모전 사이트의 유저 인터페이스가 아쉬웠다. 문제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① 독후감 대상 도서 목록을 이미지로 올려서 200개 항목을 일일이 확인하게끔 했다(작가나 작품 이름을 검색할 수 없다).
② 문의를 넣자 검색해서 볼 수 있는 한글 파일을 업로드했는데, 정작 공모전 공식 사이트가 아닌 협회 사이트에 올렸다(협회 사이트에서 파일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 같은 것도 없다).
③ 한글 파일은 이름도 대충 지어져 있고 확장자도 지정되어 있지 않다(담당자가 정말 귀찮았나 보다).
④ 제목과 저자 외에 더 자세하고 유용한 정보가 없어서 새롭게 뭘 골라서 읽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이 공모전을 준비한 사람이라면 이미지니 텍스트니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게임계에서 뜨거운 감자이자 고구마인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이슈가 떠오른다. 게임에는 뽑기 형식으로 랜덤하게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마치 복권처럼 도박성이 강한) 확률형 아이템이 있으며,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커지면서 그 뽑기의 확률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져왔다.


그런데 엔씨소프트를 포함한 몇몇 게임사에서는 그러한 확률 정보가 공개된 표를 이미지로 올려 공분을 샀다. 이미지로 올리면 특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검색해 찾아볼 수 없으며, 표에 나온 수천 개 아이템을 하나하나 살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확률 정보 표시 의무를 강화하고 검색이 되도록 하는 ‘확률 정보 검색법’ 발의를 예고하며, “확률을 이미지 파일로 올려 이용자가 찾기 어렵게 만드는 악질적 행위를 막기 위해, 문자열/숫자열 등 기계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화하게끔 규정”하였다고 밝혔다.


https://www.inven.co.kr/webzine/news/?news=265620


물론 수천 개에 달하는 아이템 목록에 비하면, 〈소설독서대전〉의 독후감 대상 소설 목록은 200개뿐이니 양호한 편이다. 더욱이 참 다행히도 제목이 가나다순으로 정렬되어서, 알아보고자 하는 책의 이름을 정확히 안다면 별 무리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저자 이름은 뒤죽박죽이어서, 좋아하는 작가를 찾는다면 애를 좀 먹겠지만 말이다.


K-소설 독후감 대상 도서 목록 전체


한글 파일이 한국소설가협회 공지사항에 올라온 문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표현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공모전 사이트에 파일을 업로드하거나 혹은 협회 공지사항에서 파일을 받을 수 있다는 안내 문구를 넣길 바란다.


한글 파일의 확장자 문제도 담당자의 사소한 실수려니 하고 귀엽게 봐줄 수 있다. 파일 이름쯤이야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야 쉽지,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이를테면 나의 부모님은 컴퓨터를 쓸 줄은 알지만 파일 ‘확장자’라는 개념이라든지 한글 파일의 확장자가 hwp라는 사실은 잘 모르신다.


더욱이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부모님이 쓰시는 컴퓨터에는 한글 소프트웨어 혹은 뷰어가 없다. 애초에 ‘한글’ 파일을 ‘다운로드’해야 한다는 것도 살짝 구시대적이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나 노션 따위를 활용하여 링크에 접속해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바람일까?


도서 목록의 정보 부족 문제는 공모전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경중이 다르다. 만약 평소에 K-소설을 많이 읽어온 사람을 염두에 두었다면, 소설 제목과 저자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정보일 것이다. 하지만 평소 국내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 같은 사람들의 독서를 진흥하기 위한 행사라면, 부실한 정보다.


대상 상금 500만 원이 탐스럽다는 점 외에 목록에 적힌 책을 읽고 싶게끔 만드는 정보가 추가되면 좋겠다. 이를테면 각 도서가 어떻게 선정됐는지 기준을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상상력을 자극’한다거나 ‘아름다운 우리말의 맛’을 살렸다거나. 아마 중고등학교에서라면 독서 지도사나 사서, 국어 선생님이 그러한 정보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할까? 200개 소설을 하나하나 인터넷 서점에서 살펴봐야 할까?


이래저래 불평만 늘어놓은 것 같아 죄송스럽다. 유저 인터페이스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이 행사의 내용 자체는 훌륭하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책 좀 읽자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한번 응모해보는 건 어떨까? 2022년 3월 16일부터 4월 30일까지 독후감을 받으며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매(4000자) 내외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글의 분량이 딱 4169자(공백 포함)이므로, 그리 길게 쓸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제3회 대한민국 소설독서대전〉이 더욱 흥하기를,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응모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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