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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욕하는 여자 Aug 25. 2018

취미에 관하여

1. 

몇년 전부터, 정확히는 직업을 가지고 난 뒤부터 이렇다 할 취미가 없었다.

소개팅의 고정질문인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라는 질문엔 항상 영화감상이요. 라고 대답했다.

가장 최근 본 영화부터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몇 분 말하다보면 대화가 완성됨과 동시에 끝난다. 타인으로부터 유별난 관심을 끌지 않으면서도 무난하게 대화할 수 있는 취미로 영화감상만한 것이 없다. 문득 난 어느 순간부터 없는 취미를 만들어 이야기할 때 조차 그저 무난무난한, 튀지않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버린거다.


2.

취미는 사실 돈과 시간을 버는 자들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누리는 이들의 특혜라 어릴 때 짐작했었고 나이들수록 확신하고 있다. 

중학교 때 학교문집에 실릴 Q&A로 어른이 되면 뭘하고 싶나요? 라는 질문에 우리 학년이 답한 걸 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한 친구의 답변은 이렇다.

[운동을 열심히 한 다음 시원한 생맥주를 먹어보고싶다. 부모님이 주말마다 테니스를 친 뒤 마시는 맥주가 꿀맛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집이 가난하단걸 깨닫고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기 급급했던 사춘기에 난 저 답변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 내는 삶의 질 차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은 평일도 주말도 일하는데, 그래서 테니스처럼 보기 좋고 건강한 취미는 만들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는데 말이다.


3. 

자신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고 취미를 만들기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대체로 팍팍하다.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에도 주머니 사정이 좋지않은 취준생들이나, 퇴근해서 저녁밥 차리고 집안일 하면 벌써 저녁 아홉시인 맞벌이 부부들이 취미를 만든다는 건 어쩌면 기적이자 처절함이다. 취미를 가진 사람에게 인생을 부지런히 산다고 할 순 있다. 그렇지만 취미가 없는 사람이 인생을 덜 부지런히 산다곤 못한다. 어쩌면 더 열심히 빠듯하게 사느라 취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4.

<도둑질도 해 본 놈이 한다>는 말이 있듯, 취미도 마찬가지다. 취미도 가져본 사람이 가지고 즐겨본 사람이 즐기는 것.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요즘의 나처럼 사는게 괜찮을까? 관심사를 찾을 의지조차 없고 딱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지 않은 삶. 취미를 만들 순 있겠지만 굳이 만들어야 하나 싶은, 권태로운 삶. 예전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들이 소위 말하는 힐링이자 휴식이라 생각했지만 글쎄, 요즘 들어 취미가 없는 내 삶에 많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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