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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Mar 30. 2022

남산 한옥 마을


2022년 3월 9일 수요일.

남편의 항암 치료가 끝난 후,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했다.

사전 투표를 해서 마음이 홀가분했고,

내가 찍은 후보가 될거라는 믿음도 있고,


따스한 봄 햇볕은, 노랑나비 날개 팔랑이듯

몸과 마음을 바깥으로 불러내었다.

명동역에 내려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명동의 대표음식, 칼국수를 배불리 먹고,

남산 한옥마을을 산책하기로 했다.


남편의 수술이 끝난지 8개월,

그동안 지리하고 힘들었던 항암 기간동안엔

이러한 날이 다시 올까,

오지 않으면 어쩌지 했었다.


청소년기 부터 살았던 서울,

그리고 대학 생활, 직장 생활의 주무대였던

명동을 걸으니 비록 그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어도 고향에 온 듯 신이 났다.






한옥 마을은 한옥 5개 동을 옮겨 복원한 곳이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관훈동 민씨 가옥,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이 그것이다.


순정효 황후는 순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순종이 황태자였을 때, 황태자비였던 민씨가

사망하자 1906년 두 번째 황태자비로 간택되어

이듬해에 황후가 되었다.


1910년, 친일파 대신들이 한일병합조약을

순종에게 강요할 때, 순정효황후는 국새를

자신의 치마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백부인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겨

대한제국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해풍부원군 윤택영은 순정효황후의

친정아버지로 대표적 친일파이다.

1910년 일본 정부로 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으나 낭비벽이 심하여 파산하고

부채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었다. 그는 빚쟁이들의 독촉에

시달리다가 1920년 베이징으로 달아났다.

1926년 5월 사위인 순종의 장례식 때

비밀리에 귀국하였으나,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빚쟁이들이 몰려들자

다시 중국으로 망명했다가 베이징에서

1935년 객사했다고 한다.



조선의 풍전등화 같은 운명 속에서 자신만의

부귀영화만 탐하다가 간 사람이 남긴 껍데기 같은

집이지만, 한 때 떵떵거리던 위세를 짐작케한다.




어두운 역사를 잠시 잊고, 툇마루에 앉았다.

따사로운 햇볕을 머금은 마당에는

담벼락 막새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자국이

남아있고, 꽃이 만개하는 화려한 봄을 기다리는

앙상한 가지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윽한 한옥의 나무 재질에서 풍겨오는 냄새

때문일까, 어린 시절 마당에서 놀던 기억들이

물밀 듯 떠올랐다. 창호지를 바를 때, 마른 꽃잎을

끼워 바르던 언니, 오빠들이 생각났다.

나이가 들면 회귀본능이 생긴다던데

그래서 인가, 한옥은 늘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한다.





이날 밤,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믿고 싶지 않은 대선 결과가 남긴 후유증은,

가슴 속에 바윗덩이 얹힌 것 처럼 자리잡고

쉬 해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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