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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시온 Jun 20. 2023

딸들에게 5

렘브란트의 자화상





2차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하기 전, 

콘디션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을 즈음인 6월 7일.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어. 

이 특별한 그림을 만나기 위해서.


20년 전, 너희 둘을 데리고 배낭 여행을

떠났었지. 그 때 나의 여행 주제는 갤러리와

박물관이었단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들어가서 그림을 감상하고 나오려고 할 때,

내 뒤통수에 강한 인력이 느껴져서 뒤돌아

보았는데 63세의 렘브란트가 이렇게 나를

보고있는 눈과 마주쳤지.


언어로 전해지는 것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저 눈빛에 매료되어 이 그림은 나에게

최고의 그림이며, 살아있는 그림이 되었었어.

그런데 내가 이 그림 속의 렘브란트와 같은

나이가 된 지금, 이 그림을 또 볼 수가 있다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그림을 다시 본 순간,

"오셨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단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의 부유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어. 대학에 입학했으나 화가가

되기 위해 대학공부를 포기 했지.

그는 곧 초상화가로서 눈부신 성공을 하고

부유한 집 딸과 결혼했어. 부와 명예를

누린 젊은 시절이었지.

그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30대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 그 얼굴에

자부심과 도도함이 드러난단다.

그러나 가족의 잇따른 죽음, 

파산으로 인한 불운이 닥치면서 노년에는 

헌옷 몇 벌과 화구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해.


이 작품은 바로 그 시절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야.

이 그림의 눈을 보고 있으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홀로 남은 외로운

노인이 진실되게, 간절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살아있는 렘브란트를 

만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훌륭한 작품은 그러한 힘을 가졌다는 

깨달음을 준 그림이야.


시련은 사람을 겸손하게 해.

가지고 있을 땐 몰랐던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니까.

꼿꼿하던 내가 왜 이렇게 쓰러졌는지

생각해 보았어. 내 병의 원인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부끄러운 것은

나의 자만심이 아닐까 싶어.


나는 부와 명예를 가진 적은 없었으니까,

있다면 건강에 대한 자만심이 아니었을까.

음식을 절제하고, 명상을 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는, 그래서 나는

암에 걸릴리가 없다고 장담했던 내가

너무 미숙한 인간이었던 것 같아 부끄럽구나. 

그리고 남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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