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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Apr 06. 2022

남에게 절대 피해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속마음

"저희 구역에 침범하지 말아 주세요."



남들에게 조그만 피해라도 갈까 봐, 퍽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걸 '유난'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이따금 '그런 유난'을 좀 떠는 것 같다. 소위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로 불리는 자들이 있는데, 내가 그런 소리를 종종 듣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맛집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유명한 곳답게 입구 앞부터 줄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주차장도 인산인해다. 빙빙 돌아도 자리가 나지 않았다. 결국 지인 한 명이 주차라인 앞 차를 중립기어에 두고 그냥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썩 용납이 되지 않는다. 밥을 먹다가 언제 다시 연락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란 걱정이 든다. 그래서 맘 편히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밥은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딘가 찝찝함을 안고 하는 이런 식사는 결코 즐겁지가 않다. 심지어 여기는 맛집이잖아!


결국 나는 그들과 교대로 밥을 먹었다.




그런가 하면 내 친구 성민이는 암만 봐도 놀랍다. 이놈은 우리 무리 중 유일한 흡연자다. 때문에 술자리에서든, 어디 놀러 가서든, 녀석은 늘 혼자 담배를 피우곤 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흡연자들과는 조금 다른 것이 있다. 성민이는 늘 우리로부터 50 ~ 100m 밖, 멀리까지 떨어져서 담배를 태웠다. 한 번은 버스정류장에서 친구들이 "야!! 너는 담배를 피우러 가는 거냐? 조깅을 하러 가는 거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성민이는 "너네 담배냄새 싫어하잖아. 너희 쪽으로 바람 많이 불어."라고 말했다. 우리는 잠시 벙 쪘다. 지독하게 서로 티격태격하던 사이였는데, 별 걸 다 걱정한다. 참~나.


그러다 동기들과 담배 피우는 녀석을 쫓아다녀 본 적이 있다. 성민이는 혼자 담배를 태울 때 늘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귀에 갖다 댄 전화기가 들려있는 모습을 자주 봤다. 당시 20대의 우리에게 호기심이란 단 하나였다. 혹여 녀석에게 여자 친구라도 생긴 건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후 몇 차례 쫓아갈 때마다 녀석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기 하나가 성민이를 다그치는 말을 했다. "야! 넌 뭐 비밀이라도 있는 것처럼 담배 태우러 멀리 나가냐?"라고 물었더니 성민이는 약간 짜증을 냈다.


"내가 담배 좀 피우겠다는데 방해하지 마. 나는 니들에게 최대한 피해 안 주려고 하는데, 니들은 왜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인상을 썼다. 그렇게까지 성질을 부릴 일이냐며 동기 몇 명이 나섰다. 그러자 성민이는 "가는 동안 담배 냄새 좀 털고 들어갈라 그런다."라고 말하며 절반도 못 태운 꽁초의 불을 껐다. 실내로 들어온 우리는 그의 전화들에 대해 간략하게 들을 수 있었다. 담배를 태울 때마다 그는 오랜 선후배 사이나 스승, 다른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성민이는 그 시간이 자기의 하루 중 가장 편안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과거 우리 회사 옆 팀이었던 정 과장도 비슷했다. 그녀에게는 학교 수업을 마친 딸에게 꼭 한 번씩 전화가 왔다. 그러면 그녀는 어김없이 회의실이나 계단으로 나간다. 간혹 사적인 전화가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따금 그냥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니었다. 그뿐이랴. 직원들이 본인들의 택배를 사무실로 시키는 일은 빈번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시나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그 흔한 개인 서류의 프린트를 하는 일도 전혀 없었고...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그런 그녀의 발언 하나하나는 사무실에서 가장 권위 있었다. 한 번은 우리 파트 전체 휴가철을 조율하던 찰나다. 중간관리자들이 7~8월 가장 인기있는 휴가 자리를 먼저 차지하려고 했다. 모두 속으로 불만을 갖고 있을 때 그녀가 나섰다. "이럴 거면 조율은 왜 하나요? 우선순위는 희망하는 분들이 많으니 차라리 뽑기로 해주세요. 저희라고 이때 안 가고 싶은 게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있었다. 윗사람들도 그녀의 말에 태클을 걸 수 없었다.


또 한 번은, 거래처 소속사 대표의 자녀 결혼식이 주말로 예정되어 있는 주간이었다. 파트에서 회의가 소집됐다. 우리들에게 행사 안내라거나, 방명록 관리 등 지원을 나가라는 지시였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녀가 나섰다. "거래처니까, 상황도 이해되고, 그래 뭐, 다 좋은데요. 결혼식은 오래전부터 알려준 건데, 이렇게 갑자기 이번 주말에 인원 배치해서 일하고 오라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미리 말씀 주셨으면 시간이라도 빼놓았을 텐데요. 일단 이번엔 제가 갈게요." 또박또박 발언하며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계단이 아닌 사무실 문 앞에서였다. 남편에게 이번 주말 아이들과 놀러 가기로 한 건 차주로 미뤄보자는 연락이었다. 그러더니 쿨내 넘치는 말로 우리에게 말했다. "이번 건 제가 갈 테니까 나중에 저 급할 때 꼭 한 번만 도와주세요."라 말하던 그녀는 다음 주 연차를 냈다. 비로소 방해꾼들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녀의 갑작스런 휴가기간.

남은 일을 소화하던 우리 파트 내의 직원 그 누구도, 결코 작은 불만 하나 제기하지 않았다.




일전에 성민이가 얘기했던 "방해하지 마"란 말이, 난 참 와닿았다. 그렇구나! 이 친구에게는 그 짧은 시간이 정말 방해받고 싶지 않은 본인만을 위한 시간이구나! 그래서 그토록 우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했었나 보다. 그런가 하면 정 과장은 어떤가. 결단코 회사에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녀는 늘 완벽했다. 회사(혹은 회사의 구성원)에서 그녀를 방해할만한 명분 자체가 없었다.


나의 경우도 비슷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간, 내가 좋아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모든 것들이 외부로부터 방해받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들의 그것'은 무엇인지 잘 살펴보려 한다. 나 역시 그들의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남들에게 결코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속마음….

그 안에는 '우리의 그 모든 소중한 것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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