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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왕고래 Apr 22. 2022

늦은 밤 천장에 쏘아 올리던 '레이저 포인터'

25년 전. 너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던.



사람과 사람. 그 사이에서 서로가 간직하고 있는 장면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 이건 참 놀랍다. 내가 스치듯 내뱉은 말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깊이 박혀 있다. 혹은 별생각 없이 취한 행동도 어떤 이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되어 고스란히 남는다. 그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식을 앞두고 온 가족이 매우 분주하다. 그런 와중에도 녀석은 가족들에게 손편지를 썼다.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의 방으로 흩어져 봉투를 뜯었다. 두 번째 장으로 넘겨보니, 새까맣게 잊고 있던 '레이저 포인터' 이야기가 등장했다. 


형이 수학여행을 가면,
없는 용돈을 모아서 사다 주던 레이저가 너무너무 좋았어.
형이 사다준 레이저를 밤마다 누워 천장에 마구 쏘아대면서
신나는 시간을 보냈던 게 선명하게 생각이 나.

그건 몹시 어렸을 때. 그러니까 한 25년 전쯤의 일들이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 혹은 수련회를 갈 때마다, 내가 늘 하던 일이 있다. 바로 가족들을 위한 열쇠고리를 사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출발하는 날 일찍이 쥐어주던 용돈으로 말이다. 수학여행 내내 신나게 먹고 노느라 다 써버린 그 돈. 돌아오는 날에는 오천 원짜리는커녕 천 원짜리와 동전들만 가득 남은 상태였다. 이걸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곤 으레 그렇듯 결국 열쇠고리 따위뿐이다.


왜였을까. 돌아가는 날만 되면 너무 신나게 논 것이 조금 미안했다. 가족들에게는 불국사에서 기념 카드나 열쇠고리들을 사는 걸로 그런 내 마음을 전했다. 그런데 동생의 선물은 조금 달랐다. 항상 형을 졸졸 쫒아 다니는 귀염둥이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조그만 레이저 포인터. 동생에게는 그걸 주었다. 심지어 수학여행지였던 경주나 수련회 장소였던 강원도 어드메에서 산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레이저를 돌아오는 길 어느 휴게소에서 샀다. 혹은 학교에 도착해서 집으로 가는 길목, 문방구에 들러 잽싸게 구매한 적도 있다. 그걸 들고 집으로 가 현관문을 열면 신나게 뛰어나오는 팬티 바람의 동생이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그 작디작은 포인터를 들고, 녀석은 참 좋아했다. 그리고 밤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매우 설레는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동생과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잤다. 내가 이불을 넓게 펴 깔면, 녀석은 얼른 배게 옆으로 레이저를 가져와 누웠다. 천장에 쏘아대며 신나하던 그 모습이 이제야 다시 기억났다. 하나하나 기억이 날수록 주책맞게 눈물이 조금(?) 나는 건 왜일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를 할 때에도 눈 뜨자마자 레이저를 찾고선 곳곳에 쏘아대며 방방 뛰던 너. 그때만 해도 작디작았던 네 모습이, 그리고 당시 네 손의 크기가 점점 또렷해진다. 한 손을 높~이 들어 내 손을 잡던 너의 모습. 다른 한 손으로는 아침이라 선명하게 보이지도 않던 레이저를 꼭 쥐고 등굣길 내내 눌러대던 너.


우리가 그 섬 마을에 살 때. 매일 40분 가까이 걸어서 학교를 갈 때에도, 내 옆에서 단 한 번도 힘들단 말 안 하던 조그만 너의 모습. 그 장면을 내가 너무 몽땅 잊고 살았다. 수업이 먼저 끝나면, 너는 오후 1시부터 우리 반 앞으로 와있었지. 복도에 한 시간을 넘게 쭈그리고 앉아 형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너. 그 시절이 갑자기 너무 뚜렷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100원짜리 떡꼬치를 하나 사서 절반씩 나눠먹던 기억도 나. 항상 내가 맨 위에 떡을 하나 먹은 뒤에야 그다음 것들을 베어 물던 아주 작았던 너.


다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매일의 40분. 그 시간 동안 나는 너무 많은 약속을 했다. '내가 대학생이 되면 알바를 해서 무엇을 해주겠다'고, 또 '군대를 다녀오면 형이 정말 멋진 걸 해주겠다'고. 너에게 정말 많은 기대를 하게 했을 것이다. 그중 몇 개나 지켜졌을까. 하도 많이 내뱉어서 알 길이 없다. 


그런데도 너는 「레이저 포인터」 같은 또렷한 기억을 안고 있다. 엄청 '소중하고, 또 행복했다' 이야기하면서 말이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정말 선물 같은 나의 동생. 네가 나의 동생인 게 나에겐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의 행복에 내가 무언가를 기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게 뭐라도 할 것 같아. 


항상 지금처럼 꾸준히 행복을 쌓아나갈 수 있기를. 

나는 기도한다. 너의 결혼식을 목전에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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