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로롱 May 31. 2021

오월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눈물이 맺혔다. 짧은 통화였지만 작은아들의 ‘사랑해요.’라는 마지막 인사말이 가슴을 울렸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의 떨림은 자동차 바퀴의 진동에 숨겼다. 고속도로 위로 산 그림자가 길게 얼굴을 드리우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듯 작은아들에 대한 기억도 하나 둘 머릿속을 채웠다.

 

 작은아들은 2019년 3월 12일에 제대했다. 3월 말쯤 제대할 예정이었지만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줄면서 보름 정도 일찍 나왔다. 군대 가기 전 아들은 제대하면 큰아들과 같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당겨진 제대 일자에 맞추어 복학 신청을 하고 집으로 오지도 않고 군복을 입은 채 바로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 생활이 벌써 3년째다. 아들을 논산훈련소에 데려다준 일, 돌아오는 길에 해 질 녘 금강휴게소 강물을 내려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일, 훈련소 수료식 때 까맣게 그을린 아들을 꼭 안았던 기억이 그때의 감정과 함께 오롯이 어제 일처럼 뚜렷하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도 살 곳이 못 된다.’라는 레바논 속담이 있다. 작은아들의 부재는 한동안 견디기가 참 힘들었다. 아들이 없는 빈 방을 볼 때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너무 답답하여 차가운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기도 했지만 넘어가는 물조차도 목을 막는 듯한 느낌에 뱉어버렸다. 아들의 부재를 견딜 수 있게 해 준 것은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들을 위한다고 썼는데 자꾸 쓰다 보니 위로받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글을 쓰면 마치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아들이 훈련소에 있을 때는 매일 인터넷으로 편지를 보냈고 자대 생활을 할 때는 매주 한 번씩 편지를 보냈다. 토요일 오전이면 수성못이 보이는 카페에서, 읽은 책에 대한 느낌과 나와 아내의 일상, 그리고 큰아들의 학교 생활 등 자잘한 소식을 전했다. 월요일 아침이면 사무실 옆 우체국에 가서  우표를 붙여서 아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한 주를 시작하였고 토요일에 전할 소식을 생각하면서 한 주를 견뎌냈다.

 

어, 아들. 잘 지냈어?”

예, 아버지. 아버지는 잘 지내셨어요?”

그래. 아빠는 잘 지내고 있지. 너는?

예,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어, 아버지 운전 중이시네요.”

그래. 아빠 지금 고속도로 운전 중인데 집에 가서 전화할게. 사랑해, 아들.”

예, 아버지. 저도 사랑해요.”

 

 5월 연녹색의 산들이 석양빛을 받아서 천천히 붉은색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차들이 모두 자신의 차선을 지키듯이 가족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내는 집에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큰아들은 직장동료들과 함께 야근을 할 것이다. 작은아들은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나는 이 길이 끝날 때쯤이면 집에 도착해 작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끊어진 대화를 이어갈 것이다. 오월의 참 좋은 해 질 녘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