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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롱 Nov 08. 2022

 나뭇잎과 하늘의 색이 진하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바로 며칠 전이었는데 어느새 온 산과 들녘이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하다 

 올해를 추수해 본다. 4월부터 9개월 과정의 직업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전기기능사와 태양광발전설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책은 거의 매일 읽었고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학 참고서를 다 풀었다. 브런치에 3편의 글을 등록했고 10월에는 한국폴리텍대학의 스마트전기과에 합격했다. 헌혈을 두 번 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오래된 친구와는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고 어머니를 비롯한 여러 식구들 모두 평안하다.  

 얼마 전 집 근처 팔계평야에서 들녘축제가 열렸다. 허수아비 공모전, 백일장, 노래자랑, 단편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있었다. 그중에 제일 큰 볼거리는 연날리기였다. 추수가 끝난 넓은 들녘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양한 모양의 연을 날렸다. 아주 높이 먼 곳까지 연을 띄우는 사람도 있었고, 바람 방향을 못 맞추거나 얼레질이 서툴러서 제대로 날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을 높이 멀리 날리려면 바람 방향과 연줄의 힘을 잘 조절해야 한다. 연줄이 너무 팽팽하면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해 줄이 끊어지고, 너무 느슨하면 연이 바람을 제대로 받지 못해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퇴직한 지 11개월째다. 그동안 재취업을 위해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따고 여러 가지 공부를 하

였으며 게을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년에는 대학에도 다닐 예정이지만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침울하다. 그럴 때마다 마야의 ‘나를 외치다’ 노래를 들으며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북돋워보지만 꺾인 마음은 좀체 펴지지 않는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자의든 타의든 정해진 목표가 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퇴직 이후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을 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은 오래 유지하기가 힘든다. 연과 연줄 사이에 알맞은 팽팽함이 있어야 연이 높이 잘 날 수 있듯이 하는 일에도 적절한 긴장감이 있어야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 수 있는데 지금의 생활은 그런 긴장감이 없다. 

 연을 만들어야겠다. 목표를 정해야겠다. 화려하고 거창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그것으로 인해 나와 그 사람 모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도 아주 잘하고 싶다.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깊은 이 가을에 나만의 연 만들기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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