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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29. 2024

'내' 아들(이던), 너의 속마음은 뭐니?


17년 전, 처음 차를 샀니다.

차종을 한글 자만 떼어낸 단순한 네이밍이지만 '쎄라'라고 이름도 붙여주고 나름 애지중지 아끼며 마이카 라이프를 즐겼죠.

택시 드라이버 수준으로 1년 만에 주행거리 2만 km를 찍을 만큼 신나게 쏘댕겼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들기도 무거운 도로지도를 보면서 여행하던 시기였네요.

그 정도로 쏘댕 겼으면 응당 차주인으로서 차에 대해서는 제법 알아야 하는데 그건 별게였네요. 

16년을 타고 작별인사를 하는 그 순간까지 워셔액 한번 내 손으로 넣어본 적 없고, 와이퍼가 소모품이라는 것도 꾀 오랜 기간 몰랐습니다.

그건 (당시는 남친이던) 남편이 알아서 대신 관리해 준 탓입니다.

나쁜 버릇이 여든 갑니다.

오늘 계기판에 '워셔액 부족'이라는 메시지를 보았습니다.

17년 자가운전을 하고도 스스로 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남편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고작 워셔액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니 다른 건 오죽하겠어요.

얼마 전 신호 대기에 멈춰서 있을 때 느닷없이 차 궁둥이를 들이 받히는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운전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올바른 행동은 엇이었을까요.

정답은 모르겠고 저는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보험회사 아니고 남편에게 말이죠.

사고가 났는데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은 탓입니다. 

지금껏 운전하면서 사고를 낸 적도, 당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했노라고 핑계를 둘러대봅니다.

하지만 17년이나 운전해 놓고 이런 행동 밖에 못하니 참으로 물색없는 상황입니다.

'' 차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운전만 했을 뿐 제대로 관리도 못하고 사고 처리도 할 줄 모르니 내차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싶습니다.



아이는 십여 년 전 태어났습니다.

이 작은 생명체가 움직이지 않고 잠들어 있으면 숨은 쉬는 건가 싶어서 코밑에 손을 대보느라 잠을 못 자던 겁 많은 초보 엄마는 이제는 '엄마'는 하루에 50번만 부를 수 있는 쿼터제 도입이 시급하다 주장하는 경력직이 되었지요.

그 시절은,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것은 봉선화 아닌 '' 아들이었습니다.

오매불망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답니다.

그 덕인지 6학년을 목전에 두고도 자기 전에는 엄마에게 꼭 굿 나이트 인사를 날려주는 귀염둥이로 자랐습니다.

코밑 거뭇한 수염이 보이지만 엄마가 무심히 볼뽀뽀를 하면 고개 돌려 반대편도 내어주는 센스도 겸비했지요.

엄마랑 주거니 받거니 책을 읽고 도란도란 책이야기 나누는 성도 갖췄답니다.

직업 탓인지 성격인 건지 허구한 날 속사포로 날아오는 마 잔소리를 한쪽으로 듣고 가볍게 반대쪽으로 증발시켜 버리는 극강의 회복 탄력성까지 지녔으니 참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내'아들의 속을 모르겠단 말이죠.


저희 집에는 전자기기와 게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규칙은 있습니다.  

집공부를 하고 있으니 하루 정해진 본인의 공부를 모두 마치면 유튜브 30분, 게임 1시간을 허락해 줍니다.

다만, 시간제한이 있어서 모든 것이 9시 반 이전에 끝나야 합니다.

가령 8시 30분에 공부가 끝나면 9시 30분까지 1시간만 자유 시간이 주어집니다.

모든 전자기기는 다양한 방법으로 잠그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있는 줄 알았습니다. )

여러 번의 규칙 수정 보완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이 같은 규칙을 잘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2023년까지는 말이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된 시점부터 한 달째 아들과 숨바꼭질 중입니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습니다.

한 달여 전 몰래 게임을 하다가 틀켰고, 일주일 간 게임과 유튜브 금지 명령을 받았답니다.

제법 평화롭게 제재 기간을 지나고 마지막 날, 뒤늦게 딸아이 핸드폰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들과 3살 터울의 딸아이는 스마트폰이 있으나 폰에 관심이 1도 없습니다.

통화 수단의 의미만 있고, 그마저도 수신은 거의 안 하시고 발신 전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니 딸아이의 폰을 잠가둘 필요가 없었기에 관리가 소홀했는데 아들이 그 빈틈을 노린 겁니다.

아들의 제재 기간 일주일 내내 딸아이 폰이 안보였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 찾기 시작했으나 꽁꽁 숨겨놓은 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딸아이 폰의 사용을 점검하는 앱은 설치되어 있어서 그 즉시 확인하니 새벽 시간에 하루 평균 4-5시간씩 사용을 한 상태였고요.

증거를 내놓으니 아들은 순순히 꼬리를 내리고 잘못을 인정했고, 단단히 혼을 냈고 추가 한 달 동안 게임과 유튜브 금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대신 성실히 공부하면 조금씩 제재를 풀어주겠노라 당근도 함께 쥐어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말씀드린 대로 한 달 내내 숨바꼭질 중입니다.

2-3일 주기로 늦은 밤마다 몰래 기기를 사용하다가 걸리고 있답니다.

어떤 날은 잠시 엄마폰을 빌리는 척하고 본인 폰의 시간제한을 풀고, 어떤 날은 ebs 강의 듣겠다고 패드 비번을 풀어달라고 한 후 잠기지 않게 관리했다가 새벽까지 하고, 또 다른 날은 여전히 폰에 관심 없는 동생 폰을 가지고 갑니다.

어쩜 이리 수법이 단순하고 수가 얕을까 싶어서 헛웃음이 났는데 오늘은 새롭게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셨답니다.

잠겨있던 패드를 몰래 가져가서 사용하다가 걸렸답니다.

분명 낮에 공부하겠다고 패드 비번을 풀어달라고 했었고, 잠김 걸 확인했는데 어떻게 풀어낸 걸까 의심스러워 물었더니 사실 비번은 진즉 알고 있었답니다.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거짓말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을 축하해야 할지, 사기 수법이 교묘해짐에 더 격하게 분노해야 할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는 혼란스러운 형국입니다.

 

전 태생이 느슨합니다.

꼼꼼한 성격이 못됩니다.

허술하다는 게 가장 잘 어울립니다.

그러니 전자기기 관리가 느슨하고, 빈틈없이 비번을 숨기지 못하고, 자기 전에 모든 전자기기가 제 방에 와있는지 확인하는 걸 자주 놓치고 있는 거죠.

규칙을 적용함에도 단호하지 못해서 벌 받는 동안에도 상황에 따라 유튜브도 보여주고 보너스 게임 시간도 주곤 했습니다.  

제 딴에는 숨 쉴 구멍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걸까요?



가장 비슷한 표정의 가면을 ㅇ아들 아이 표정과 같은 닮은 가면을 착용해 봤습니다.  정말 저리 뚱하고 있었네요.


한번 더 몰래 게임이나 유튜브 하면 로블 계정 삭제


너무 늦은 시간이라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고 하고 아이를 재웠고, 저는 잠이 오지 않네요.

아들의 지금 상황을 침소봉대 해석해서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며칠 전부터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답답하던 차에 상황이 겹쳐져서 이래저래 싱숭생숭할 뿐이죠.

더불어 아이가 약속을 경시하는 태도가 걱정이 됩니다.


미치도록 궁금합니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잠들었을까요?

매번 들켜도 가타부타 말이 없고 그저 입만 뚱하고 내밀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더 치밀하게 숨지 못한 것이 아쉬울까요?

자꾸 보완이 강화되는 것이 못내 걱정일까요?

혹시나 믿음을 깨서 미안하지는 않을까요?

밤에는 잠을 푹 자고 초롱초롱 생활했으면 하는 엄마 마음을 헤아리고는 있을까요?

자주 엄마폰으로 제 브런치글을 읽어주는 아들이 이 글을 보면 제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줄까요?

저는 언제 잠을 잘 수 있을까요?

두리둥실 허공에 떠버린 헛헛한 마음으로 마무리 못한 일이나 해야겠습니다.

오늘밤은 속을 알 수 없는 아들이 간만에 단잠을 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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