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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Apr 25. 2024

애써 무뎌진 마음


쌤이 외롭겠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새 학기 준비로 분주하던 어느 해 2월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뽀얀 피부를 지닌 그녀와 그해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면서 편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어김 없이 분주하던 3월의 어느 날.

점심시간, 급식실.

그녀와 나,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또래 A 선생님까지 고만고만한 나이의 여자 셋이 한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

이날 대화의 주제는 어느 동네가 아이 기르기 좋은가? 였다.

그해가 지나면 학교를 옮겨야 했던 A 선생님은 그 시기에 맞춰 아이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의 동네로 이사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다양한 지역 정보가 궁금했던 A 선생님은 우리 집, 그리고 그녀의 집 사정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이들의 나이, 내가 사는 곳, 공부 환경 등에 대해 말해주고 나니 자연스레 시선은 그녀에게 옮겨졌다.


쌤도 결혼하셨죠? 아이 있어요? 몇 학년이에요?

여러 정보가 궁금했던 A 선생님이 속사포 질문을 던져냈다.


저희 아이 6학년이에요. ★★학교 다녀요.

★★학교는 지역에 있는 공립특수학교다.

질문을 던진 이와 듣고 있는 나는 티 나도록 부자연스럽게 멈칫했다.

그녀만이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 학교 스쿨버스가 지나는 노선에 살아야 해서 저는 이 동네는 벗어나기는 힘들어요.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건지 알지 못한다.

센스 있는 말로 을 모면해야 하는 건지, 먹히지도 않을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모두 아니다.

아이가 특수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피하거나 위로를 건네야 하는 상황 아니다.

그 어떤 것도 판단할 수 없고, 행동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해야 하는 상황을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순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나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난감했던 그날의 급식 이후에도 나는 불편하고 말하는 그녀는 덤덤하게 아이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 몇 번 이어졌다.

언제나 감정의 변화가 없이 덤덤하게 말하던 그녀.

아이 상황을 숨기려는 의도가 없고 오히려 빨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비밀이 아니지만 숨기고 있으면 부채감이 있어서 불편한 듯 어서 털어내 버리는 듯 보였다.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자기 궁금증을 해결해 보겠다고 생각 없이 던지는 질문들.

이유가 없음에도 괜스레 아이의 상황의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시선들.

어줍지 않은 충고, 자기 연민에서 나오는 위로, 겪어보지도 않았으면 다 아는 듯한 참견들이 그간 그녀를 괴롭혔을 거다.

그러니 이 같은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묻기 전에 말하고, 별일 아닌 듯(별일 아니긴 하다) 대화에 묻혀서  말해버리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잠재웠으리라.

그 후로는 얼마동안은 그렇게 그녀가 들려주는 일방적인 이야기들만 잇었을 뿐 질문은 없이, 반응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갔다.




아이가 자폐거든요.


둘이서만 급식을 먹게 된 그날.

4월 말이 다 되어가는데 제법 차가운 바람에 아침에는 비까지 내렸다.

상황 파악 못하고 겉옷 없이 얇은 봄옷을 입고 있는 날 걱정해 주던 그녀는 그날 아침 이야기를 꺼냈다.

아침에 스쿨버스를 기다리는데 비바람을 맞으며 20분을 서있었단다.

너무 추워서 '우리 안고 있을까?'하고 아이에게 물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다는 그녀.

아이가 자폐거든요.

그때까지는 아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몰랐다.

직접 이야기해 줄 때까지는 묻지 않았기 때문.


쌤이 외롭겠다.
엄마가 외롭겠어.

그녀 아이에 대한 내 첫 반응이었다.

아이가 꼭 자폐라서가 아니라 아침에 겪은 상황에 대한 내 느낌이었다.

초등 6학년 남자가 아이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을 거다.

자폐라는 상황에 대한 선입견 없이 같은 아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무심히 툭 내뱉은 말에 그녀는 뚝 눈물을 떨궜다.

단단하고 다부져 보였는데 사실 속에는 상처가 있었을 거다.

왜 아니겠는가.

애써 무뎌지려 했을 거고, 무뎌진 줄 알았겠지만, 무뎌지기 어려운 것이 부모 마음인 것을.


괜스레 하늘을 봤다.

언제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냐는 듯 맑게 개인 하늘.

공기마저 깨끗해서 봄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특별 대우를 할 것도 없고,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도 없다.

조금 특별하다는 아이라는 표현도 일면 차별적이다.

인생 어차피 각자의 노선대로 걷는 것이다.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자.

참견 말고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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