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우리 10분만 일찍 끝내자.
월요일에 개학했다.
1학년 2반과는 3번째 만남이었다.
눈빛은 살아있으나 부끄러움에 소리 내어 대답하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고개만 주억거리던 아이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려도 아직은 낯선 같은 반 친구들보다야 기존에 알던 친구들을 향해 복도로 흩어지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루 사이 공기가 달랐다.
작은 그룹은 삼삼오오 모였고, 제일 큰 그룹은 열댓 명이 둥글게 모여 제법 시끄러웠다.
새로운 친구 무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금 더 자극적인 대화 소재가 오고 갔고, 듣는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해 더 크게 웃었다.
그들의 과장된 목소리와 제스처가 교실 공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에 속한 아이들은 다소간 안심하고 있을 것이다.
친구를 만들어야 하는 황금 시기를 놓치지 않고, 가장 크고 넓은 무리 안에 안착했음을.
하지만 반대 상황에 놓여 그들의 큰 목소리를 눌린 듯 듣고 있는 아이들은 불안할 거다.
혹시 이대로 친구를 사귀지 못할까 봐 걱정되고, 나아가 공포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두 아이는 짝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 중 채연이 자리는 교탁 앞이었다.
역시나 갈곳을 잃은 시선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연신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민경아~ 요리 와바
부지런한 담임교사가 교탁에 붙여놓은 자리표를 보고 자연스럽게 민경이 이름을 불러 채연이 옆으로 불려들였다.
민경이는 어느 중학교 나왔어?
거기서는 우리 학교 많이 안 오는데, 같이 온 친구가 많지 않겠다.
채연이는 어느 중학교야?
바로 옆에서 왔구나.
이번주 정말 피곤하지?
월요일에 개학하는 건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니깐.
우리 학교 급식 어때? 급식은 진짜 맛있지?
둘이 서로 인사는 했어?
얘는 민경이 얘는 채연이야.
사실 나도 오늘 너희 얼굴 처음 제대로 본다.
난 통사쌤이야 ㅋㅋㅋ
서로 인사해 ㅋ
속사포로 떨어지는 질문에 번갈아 개미 목소리 만큼의 크기로 대답하던 아이들이 수줍게 서로를 본다.
그리고는 쑥스러움을 커버하기 위해 손을 들어 흔들기까지 하며 '안녕'하고 교과서적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렇게 두 아이를 희미하게 이었다.
앞으로 인사하고 지내.
나도 이제 채연이 민경이 이름 잘 기억할게.
근데 분명 까먹어.
내가 기억하고 있나 까먹었나 자꾸 물어보도록 ㅋ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어색함을 풀어놓고 교실 뒤로 향했다.
분탕질을 할 차례.
열댓 명이 모인 그룹에 다가가 두 팔을 휘져으며 연설을 늘어놓는다.
애기들 (난 아이들을 이렇게 부른다)
미션을 내리겠다.
오늘 집에 가기 전에 아직까지 인사 나누지 못한 친구를 찾아서 눈 마주치고 인사하기.
실천한 사람은 다음 시간에 나한테 말하고 마이쮸 받아가.
이 교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야지.
모두 친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 친구가 되면 좋잖아.
이렇게 씩씩하고 목소리 큰 너희들이 먼저 다가와 주길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을 거야.
알아 들었는지 아이들의 눈빛을 살핀다.
순둥이 아이들이 제법 진지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의지를 표명한다.
자, 그럼 흩어져.
이번에는 전체를 행해 말할 차례다.
얘들아, 2반 모두가 교실에서 행복하면 좋겠다.
오늘 3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그 사이 아직 인사 나누지 못한 친구와 눈 마주치고 인사하자.
서로 눈빛 피하지 말고 인사하고 서먹함을 풀어내자.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쉬워.
실천한 사람은 다음 시간에 와서 꼭 말해줘.
'저는 금요일 오후에 처음 누구누구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마이쮸 줄게.
모두 내 마음을 전달받았는지 미소를 머금고 다 같이 긍정의 신호들을 보내주었다.
때마침 울리는 종소리.
믿는다.
마이쮸 많이 챙겨 올게.
안녕.
10분이라는 시간이 제법 크게 쓰였다.
아이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희미한 선을 이을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었다.
교사가 아이들 친구 관계에 관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다 큰 고등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다만 아이들 관계의 희미한 시작은 충분히 도울 수 있다.
그래서 담임교사가 되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첫 일주일 동안에 다양한 친구 맺기 활동이다.
올해는 행정 부서를 지원해서 담임반이 없으니 신경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외로운 섬처럼 고립된 아이들이 보이니 그냥 둘 수 없었다.
얇고 약하지만 소중한 시작이 되어줄 희미한 선을 이어질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본다.
물론 희미한 선을 단단한 밧줄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보면 시작을 열어주면 그다음은 아이들이 알아서 잘 이어나간다.
그 힘을 갖고 있다.
오늘 쿠팡앱을 열고 대용량 마이쮸를 주문했다.
준비한 걸 다 털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