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대화 듣기 평가
[문제] 다음 대화를 잘 듣고 이 말을 한 사람이 남편과 아내 중 각각 누구일지 맞추세요.
(상황, 퇴근 후 식탁에 놓여있는 케이크)
A : "웬 케이크?"
B : "설마 오늘 무슨 날인지 모르는 거야?"
보통은 남편이 어리둥절 A 담담이고 아내는 B 뾰로통 일터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어리둥절 A 담당이고 남편이 뾰로통 B 담당이었다.
분명 별날이 아닌데 케이크를 사 온 남편.
교사 부부이니 종종 졸업생들이 찾아올 때 아이들 주라며 케이크를 선물로 가져올 때가 있다.
그래서 졸업생이 다녀간 것인가 되물으니 아주 의기양양하게 아니란다.
부인이 모르는 기념일을 챙길 줄 아는 남편이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내뿜으며.
그런데 저 거드름 익숙하다.
정확히 1년 전 본 것과 같은 모양새다.
너와 함께한 8000일 모두 눈부셨다
정신없이 바쁘던 작년 여느 가을날
교무실 내 책상에 상당한 크기의 정체 모를 꽃바구니가 배달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와보니 꽃바구니의 정체가 궁금한 선생님들이 편지를 열어보라고 성화였다.
알고 보니 연애 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 모두 헤아리면 그날이 딱 우리 만난 지 8000일 되는 날이었고 남편이 미리 알고 학교로 꽃바구니를 보낸 것이다.
만난 날을 헤아리고 있었다니 심쿵.
그걸 잊지 안 하고 챙겼다니 감동.
8000일이라는 긴 시간을 우리는 큰 다툼 한 번 없이 여전히 오순도순 살고 있다니 기적 같았다.
모든 게 새삼스럽게 행복했던 날.
그날 저녁 남편의 센스에 감복한 동료 선생님들의 칭찬 마디마디를 고스란히 전달했더니 어깨가 한껏 펴지며 슬쩍 거드름을 피웠더랬다.
바로 그것과 닮았던 것이다.
1년 전 받았던 꽃바구니
내가 그날을 떠올리고 있는 건 눈치채지 못하고 아직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것 같은 나를 위해 친절하게 스마트폰 달력을 보여주는 남편.
2024년 10월 18일 날짜에 '8000일'이라고 손수 메모한 달력을 보여준다.
뭔가 잘못 됐다.
합리적 의심을 해보자면 지금으로부터1년 전보다 좀 더 앞선 어느 날, 디데이 어플에서 곧 8000일이 다가온다 알려줬을 것이다.
그것을 2023년 10월 18일에 저장을 할 때 매년 반복으로 잘못 설정해 둔 모양이다.
그래서 2024년 10월 18일에도 또다시 '8000일'이 뜬 것이다.
정확히 1년 전 정성스레 꽃바구니에 글귀까지 넣어서 보내놓고, 그 정성이 무색하고 까맣게 잊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뇌에 새로고침을 시전하고 다시금 8000일을 기념하는 정성이라니.
아니다, 정성은 좀 빠졌다.
같은 기념일(?)인데 작년에는 그렇게 큰 꽃바구니를 챙겼으면서 올해는 고작 퇴근길에 집 앞 빠바에 들러 달랑 케이크하나 챙겨 왔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제부터 우리 집 10월 18일은 기념일이다
케이크 먹는 날
남매만 신났다.
아빠의 귀여운 실수도 재밌고, 공짜로 케이크 먹으니 좋을 수밖에
'엄마, 앞으로 우리 10월 18일은 케이크 먹는 날 하자. 어차피 아빠 달력이 늘 알려줄 거야. '
딸아이가 '함께한 8000일'을 재빨리 '함께한 8365일'로 고쳐주고 나서 빠른 속도로 케이크를 해치웠다.
남편의 신박한 실수 덕분에 우리 가족 기념일이 하나 더 추가 됐다.
행복이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