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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Nov 13. 2024

콩콩팥팥이로구나

아빠의 쓸모




큰아이 임신 때 입덧을 제법 했다.

성과 없이 궥궥거리다 기진맥진해서 침대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

신혼 때라 거실겸방 하나, 통로 같은 부엌, 옷만 겨우 정리한 작은 방이 전부인 작은  보금자리.

덕분에 침대에 누워있으면 컴퓨터 책상에 앉아 게임하는 남편의 뒤통수가 보였다.


넌 편하구나.
게임이 그렇게 재밌냐, 난 힘든데



연애가 길었으니 게임 좋아하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내게는 없는 취미라 관은 드물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한집에 사니 안 볼 도리가 없다.

신난 뒤통수가 얼마나 얄밉던지.

그것도 임신이라는 낯선 상황에서 몸 둘 바를 모르던 때라 더 언짢은 마음으로.

보기 싫어서 높은 쿠션 위에 책을 올려 시야를 가리곤 했다.

 

 

아빠의 게임하는 신난 뒤통수를 보며 태교한 아이가 태어났다.

콩 심은 데서 콩이 났다.

남편의 아들은 모든 것이 아빠와 닮았다.

남편의 오래된 다이어리에서 떨어진 사진을 보고 '내가 모르는 내 아들 사진이 있네' 한 적이 있다.

남편 어릴 때 사진이었다.

소름 돋게 닮았다.

B형 아빠, B형 아들.

오리궁둥이까지 똑 닮은 부자.



전자기기를 최대한 제한하며 키웠다.

특히 게임과 스마트폰을 경계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최대 난관은 아들의 호기심이 아니라 아빠의 과도한 측은지심이었다.

아들은 생각이 없는데 아빠는 아이가 게임을 하고 싶을 거라고 주장했다.

친구들이 게임하는데 아들만 못하면 나중에 어울리기 힘들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게임할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게 굳이 노력해야 할 부분인가.

코로나가 창궐해서 다들 극히 조심하던 초기, 집에만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다며 굳이 줄 서서 닌텐도를 들였다.

아들이 모르는 게임을 재밌다고 알려주는 것도 아빠몫이다.

아들과 남편은 게임 이야기할 때 유독 죽이 잘 맞아서는 같은 게임을 서로 경쟁하듯 즐겁게 나눈다.

(모험게임이라) 어디까지 갔느냐, 어떤 아이템을 획득했으냐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는 모습이 쓸데없이 진지한 둘이다.



초등학교 6년이 된 아들은 종종 밤늦게, 또는 새벽까지 게임하다가 들키곤 한다.

관리한다고 하는데 작은 틈새만 생겨도 귀신같이 알고 일탈을 즐긴다.

잘 키워보려고 아등바등 집공부 시키는데, 저신장증이 걱정돼서 성장주사까지 맞히는데 밤에 안 자고 게임한 걸 아는 날에는 혈압이 역주행해버린다.

그런데, 이럴 땐 아빠가 쓸모가 있다.

급발진하는 엄마를 뒤켠에 두고 전면에 나서서 일을 수습한다.

어떤 게임을 했는지, 어디까지 했는지, 뭐가 재밌었는지 물어보면서 맞장구를 쳐주면 아들은 평소 아빠랑 대화하듯 술술술 정보를 풀어놓는다.

엄마가 통제불능으로 화를 내도 게임하고픈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주는 아빠 뒤에 숨어서 위기를 모면한다.

새끼 콩은 큰 콩에게 의지한다.  




딸은 콩이려나 팥인가?

팥이면 좋겠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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