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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May 25. 2022

전진희를 반복해 듣던 새벽

대책 없는 사랑노래에 진저리치던 적이 있었다. 그리 길지 않던 연애가 끝난 뒤엔 견딜 수 없어서 더 듣고 싶지 않았고. 전진희의 노래는 그럼에도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좋다. 잃었음에도 잃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게, 또 그걸 지켜내려 마음 먹기까지의 시간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면 '그럼에도' 라는 수식어가 빠진 말 그대로의 대책 없는 감정을 비웃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진다. 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제 겪을 만큼 겪은 사람들이 만나 힘을 보태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바라는 것 같다. 영혼을 갈아가며 열렬한 관계는 다 지나갔다(지나갔기를 바란다).


그래도 노래를 들을 때 이런저런 망상을 더하는 건 평생에 걸친 버릇이라 어느 좋은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 동생 결혼식에서 축가 부르는 상상도 하고 지나간 시절 속 이와 우연히 만나 다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을 때 선물처럼 건네고 싶은 곡도 있다. 전진희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런 상상을 했다. 마음의 대상이 부재한데 굳이 이런 노래를 들어서 뭐하냐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 자초해 아플 게 두렵기도 했고 이제는 나와 무관한 이를 여전히 그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예정 없던 대화를 나누었던 어젯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 말이 계속 떠오른다. 이제 그날의 사랑은 지나갔지만 미안함과 부끄러움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야. 식은 마음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때맞춰 나를 떠나는 용기를 내기까지 많이 두려웠겠다. 그럼에도 해낸 네가 자랑스러워.


영원히 그대를 사랑하겠소.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오는 이 가사를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이해할 수 있어. 언제나 고마움으로 남아 있을 이 마음을 잘 지켜서 내가 계속, 계속 살아가면 좋겠다. 그럴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분명 너의 덕일 거야.


전부 지나가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무엇도 기적이 아니라는 걸 알아. 남김없이 누리겠다는 말이 체념과 닮아 있다는 것도. 다정과 단호함을 번갈아 쥐면서 기적의 범주를 늘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려면 삶으로 걸어 들어가야겠지. 달리 방도가 없어서라고 하지 않을래. 나는 선택을 한 거야.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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