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아왔건만 대책없이 살아온 인생의 결과는 이리도 비참하다. 사십 중반이 넘어 가도록 변변한 기술 하나 없었던 장수는 명예퇴직 권고를 받고 퇴사를 했지만 다시 입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구인광고를 마르고 닳도록 훑어보아도 갈만한 곳이 없었다. 퇴직금은 점점 생활비로 충당되어 줄어들었고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낸 것이 치킨집이었다. 남들처럼 거창하게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생각외로 장사가 잘되어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열심히 하니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도 생기기 시작했고 이렇게만 계속 유지 된다면 가게를 시작하며 낸 빚도 갚고 모든 게 다 잘 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장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새로 이사왔다며 인사를 건네던 상냥한 목소리의 아이 엄마는 치킨을 한 마리 주문했다. 단골을 만들고픈 욕심에 감자튀김을 하나 서비스로 넣어준 것 외에는 평소와 모든 게 똑같았던 하루였다.
「배달완료」
주문이 밀려 쉴 틈없이 바빴던 주말 저녁, 장수는 배달완료를 확인하고서야잠시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요즘 장사가 잘되다보니 평생 이렇게 피곤해본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쉴 시간이 없었지만 행복한 투정이었다. 퇴사를 선택한 자신이 대견하고, 치킨집을 열고 여기까지 이뤄 낸 자신이 이렇게 이뻐보일 수 없었다.
띠리리리-
- 네. 장수치킨입니다!
- 아니, 사장님! 이런걸 주면 어떡해요?
잔뜩 날선 건너편 목소리의 주인공은 새로 이사왔다던 아이 엄마였다. 장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예상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려 애썼다.
- 고객님, 진정하시고 무슨일이신지 말씀을..
- 치킨에 벌레가 들어있다구요!
- 네? 그럴리가..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다시 해드리겠습니다.
- 다시 해줄 필요없어요! 당장 환불해주세요!
- 네. 고객님 원하시는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장수는 전화를 끊고 여자가 알려준 계좌로 돈을 이체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동안 이런 클레임을 겪은 적이 없었기에 미숙하게 대처한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당황해 고객의 요구대로만 응한 자신이 한심했다.'최소한 사진이라도 받았어야 했는데.. 왜 아깐 그 말이 안나왔지? 다시 연락해봐야겠다.'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님, 장수치킨입니다.
- 네.
-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알려주신 계좌로 이체는 해드렸습니다.
- 네.
격앙되었던 좀전과 달리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 저..고객님. 치킨에서 나온 벌레 사진을 보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 아니, 지금 절 의심하시는거에요?
다시 고조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장수는 의아했다. '사진 보내는 게 이렇게 힘들일인가? 환불까지 받았으면 당연히 업주의 요청대로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닌가?'
- 고객님, 의심하는게 아니라..
- 내가 누군지 알아요? 두고봅시다! 가만있나봐라!
- 고객님! 고객님!
뚜우, 뚜....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장수는 몇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불안함이 자꾸 뇌리를 스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역시 장수의 우려대로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 엄마는 유명한 인플루언서였다. 그녀는마치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가게 하나를 박살 내고야 말겠다는 사람처럼 맘카페, SNS 등에 글을 올렸다. 카더라식의 발없는 가십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뒤늦게 해명글을 통해 겨우 진정되긴 했지만 누명을 채 벗기도 전에 맘이 떠나버린 고객들을 다시 잡기 어려웠고, 장수의 가게는 타격을 크게 입었다. 예전과 달리 바쁜 주말에도 겨우 몇 건 찔끔찔끔 들어오는 주문에 장수의 속은 타들어가고, 평일은 더욱 상황이 좋지 않았다. 힘든 일을 겪었지만 나만 열심히 하면 다시 상황이 나아질거라 믿었던 장수는 점점 무너졌다. 안타깝게도 한번 무너진 탑은 다시 쌓기 힘들었다. 가게월세는 커녕관리비조차 감당이 힘들어진 장수는 고군분투 끝에 결국 치킨집 문을 닫았다. 치킨집을 운영하느라 생긴 빚과 당장 필요한 가족들의생활비는 장수의 목을 옥죄었다. 어떻게든 다시 힘을 내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지만 장수에겐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제 정신으로 버틸 수 없어 점점 술에 의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