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한 줄기 빛조차 허용되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평생을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둠은 공포 그 자체였다. 여기가 어딘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살았던 곳, 그러니까 이승은 절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작은 빛이 그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똑바로 바라보기 힘들만큼 점점 커졌다.
- 김장수씨 되십니까?
조명이 꺼지듯 일순간 빛이 사라졌다. 다시 어두워진 공간, 누군가 나타났다.
저, 저승사자인가..잔뜩 얼어붙은 채 실눈을 뜨고 바라본 그의 앞에 누가 봐도 '사람'의 모습을 한 남자가 서있었다. 오랫동안 이발을 하지 않은 듯 귀를 훨씬 넘긴 길이의 덥수룩한 머리는 이마를 반쯤 덮고 있었다. 아래로 쳐진 눈매와 움푹 패인 자글자글한 주름을 가진 남자의 모습은 평소 상상해왔던 무섭고 괴이한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검정색 정장을 갖춰입은 남자의 손에는 장부 같은 것이 들려 있었다. 그 장부에는 가까이 가서 보지 않고서는 절대 볼 수 없을만큼 아주 작은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 제가 김장수입니다.. 헌데.. 누구시길래 제 이름을..
- 저는 망자들을 저승 입구까지 모셔다 드리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그는 죽은 게 맞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저승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였다.
- 그, 그럼 혹시 저희 아내와 아이들은..
-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남자의 대답을 들은 그는 더이상 아무말도 묻지 못한 채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남자의 걸음이 얼마나 빨랐던지, 숨이 찰만큼 보폭을 넓히고 재빠르게 걸어봐도 남자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가던 남자의 모습이 콩알만치 작아졌을즈음 주위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안개가 마치 갈고리를 채우듯 발을 휘이 감싼 채 사방으로 퍼져 있었다. 자욱한 안개 위로는 음침하고 거뭇한 나뭇가지들이 그들을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때보다 더 오싹함을 느끼며 그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쉴새없이 흘렀다. 그는 남자가 발걸음을 멈출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멈춘 남자는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앞에는 검정도 아닌 것이 붉은 색도 아닌, 묘하게 기분 나쁜 택시 한 대가 있었다. 불꺼진 택시는 안이 보이지 않았고 '예약중' 이라는 표시등만 가느랗게 비추고 있었다.
- 타시죠.
남자가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남자는 조수석 아래 놓인 작은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열자 매케한 연기와 동시에 음침한 향이 삽시간에 택시 안에 퍼졌다. 처음 맡아보는 향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입을 틀어막은 그를 보며 남자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 사자입도천신문!
남자의 외침이 끝나자 가방에서 검은 뱀이 기어나왔다. 마치 물 속에라도 있었던 것 마냥 축축하게 젖어 있는 뱀은 검붉고 긴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사시나무처럼 떨며 앉아 있는 그의 몸을 천천히, 그리고 세게 옥죄였다.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목을 조아버릴테다!'
- 어허! 어서 읊기나 하거라!
뱀의 속내를 읽은 남자는 꾸짖듯 외쳤다.
'쳇, 맘에 안든다니까.'
- 김장수. 6월 3일 9시 9분에 사망. 사인은 일가족 자살.
- 어디로 인도하면 되는 것이냐.
- 고민할 것도, 볼 것도 없다! '적인문' 으로 데려가라!
- 수고했다.
남자가 다시 예를 갖춰 합장하자 뱀은 어느새 가방 속으로 다시 들어가 있었다.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을 겪은 그는 너무 놀라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남자는 동백꽃자수가 놓인 붉은 천을 그에게 건네 주었다. 신기하게도 바지에 천이 닿자 자국이 사라지고 뽀송한 느낌마저 들었다.
남자는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으로 온 알림을 다시 확인했다.
- 지금쯤이면 아내분이 깨어났겠군요. 김장수씨 가족들은 각자 다른 위치에서 시간차를 두고 사망했습니다. 김장수씨가 제일 먼저 사망했기 때문에 저를 처음 만났고 이제 아내분을 태우러 갈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