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사물에도 기억이 있다.
사물이 기억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사물에 깃든 기억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사물에도 지나간 시간이, 흘러간 기억이, 그러니까 역사(history)가 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친 사물은 특히나 ‘경험’이 풍부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을 때면, 유난히 너덜 해진 페이지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사람들은 여기서 어떤 생각을 깊이 했던 걸까, 궁금해진다. 형형색색으로 밑줄이 쳐진 부분을 보면서는 왜 이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얼굴도 모르는 나 이전에 이 책을 접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 부분이 가슴에 와 닿았을까, 또 괜한 상상에 빠진다. 귀퉁이에서 간혹 보이는 메모를 볼 때면, 직접 보고 대화하는 것이 아닌데도 누군가도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했구나 얼굴도 모르는 그 누군가와 생각을 공유한다. 이쯤 되면, 사물은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손 때 묻은 사물이 좋다 (그렇다고 정말 말 그대로 때 묻은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중고거래에 빠져 있는데, 거래 과정에서 자기 물건에 애정을 갖고 설명해주는 판매자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구매 전에도 벌써 그 물건이 내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러니까 중고품을, 혹은 누군가가 먼저 소유했던 물건을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 그 자체를 사는 행위가 아닌 그 사물에 누군가가 쏟았던 애정과 관심을 사는 것이며 그 사물에 깃든 시간과 기억까지도 사게 되는 것이다. 중고품을 거래하면서 이렇게 마음을 주고받게 되는 것은 내게 커뮤니케이션의 하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고거래를 하면서 실제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이 채워졌던 것 같다. 그래서 중고 거래를 하면 할수록 꽉 찬 기분이 들었고, 거기에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이니 환경을 보호한다는 만족감은 덤이었다.
인터넷을 플랫폼으로 활발해진 중고거래/공유경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타인과 그리고 사물과 관계를 맺어주고 있다. 정보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소외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만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 맺기가 가능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관계 맺기는 기존과는 또 다른 맥락으로 사람들의 외로움을 채워준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공유경제는 사람과 사물 간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사람들은 사물을 매개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한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 이는 사람과 시간과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이제 과거를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고, 현재를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잡아 두고 소유할 수 있다. 이제 전화번호를 잊어버려도 연락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다 – 이는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과거의 시공간과 현실적 제약 때문에 인연이 맺어지기도 끊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고 있어갈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관계를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확실한 건 관계 생성/유지의 자유도가 높아졌다.
예전과는 달라진 세상이지만 사람들이 여기에 온전히 적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새로운 기술을 더 능숙하게 다루면서 서로가 이전보다 더 고차원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연결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런 세상이 아마 백남준 선생이 예견했던 세상이겠지.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