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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Mar 07. 2024

자살을 권유하는 고객

"너도 물에 빠져 죽어라. 거기 왜 앉아 있냐."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이때 나는 N년차 콜센터 상담사였다.
나름의 진상 고객 상대하면서 멘탈이 튼튼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죽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결국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팀장님이 전화를 이어받았다.

기나긴 불만 전화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쌍욕은 많이 들어봤지만, 자살을 권유하는 말은 처음 들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이 전화를 받고 상처받은 시기에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다.
절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당시 근무 중에도 뉴스를 주시하고 있을 정도로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왜 퇴근 전 받는 전화는 진상 고객일까?


실시간 뉴스를 확인하며 받은 마지막 전화는 취객이었다.
나의 상담 태도가 아닌 회사 정책에 대한 불만을 지속 제기했다.
예외적 처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콜센터 13년 차인 지금.
그 시절로 회귀한다면?


"고객님.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지금 계속 같은 건으로 불만 제기하시는 데 예외적인 처리가 가능하면 벌써 처리해 드렸죠.
분명 상품 구매하실 때 계약 철회 안 된다고 설명드렸고
동의한다고 고객님이 직접 사인도 하셨어요.
그런데.
고객님이 사용하기 어렵다고 돈 내놓으라고 하시면 제가 도와드릴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물에 빠져 죽으라뇨.
이건 저뿐만 아니라 사건 관계자분들에게도 욕하시는 거예요.
내일 술 깨고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고객님이 선 제대로 넘으신 거예요.
통화 내용 기억 안 나시면 전화주세요.
녹취 들려드리려니까."



그리고 시원하게 전화를 팍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시원하게 옷을 벗겠지.

시말서를 쓰게 되더라도 이런 상상은 마음이 후련해진다.






9주년이 지난 지금도 출퇴근 지하철에서 무사 귀환을 바라는 뜻의 노란 리본이 가끔 보인다.


엄숙해지는 기분과 함께 자살을 권유했던 고객이 떠오른다.
더 이상 사람 목숨으로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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