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 멤버들의 흉상 피규어 제작 이야기
2019년 5월,한 걸그룹에 소위 말해 '입덕'을 하게 되었다.
당시 내 나이 41살(1979년생)이었다.
'다섯번째 계절'이란 노래에 흠뻑 빠져 팬이 되었고 그 이전에는 안하던 짓을 조금씩 하게 된다.
인터넷 공식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유튜브에서 직캠이랑 오마이걸 관련 동영상도 찾아보고,
생일 카페라는 곳에도 난생 처음 가보고,
매해 연말에 '시즌그리팅(기본적으로 내년도 책상 달력,포토카드,포토다이어리,브로마이드 및 플러스 알파로 구성된다)'이라는 굿즈도 예약하여 구입해 보았다.
무미건조한 내 삶 속에서 그들을 보고 떠올릴때마다 그저 좋았다.
왜 좋냐고?
뭐...예쁘고,노래도 잘하고,춤도 잘추고,인성도 좋으니까...
내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어느날 오마이걸 멤버들을 피규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걸그룹 멤버들을 피규어로 표현한다는것은 크나큰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잘못 손댔다간 평생 들어먹을 욕을 다 먹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 조형을 더 연습할 필요도 있었고,
일단 닮고 안닮고를 떠나서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보이도록 그리고 예쁘게만 나오도록
목표를 세우고 2020년 가을 무렵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얼굴 묘사에 중점을 두었기때문에 전신이 아닌 흉상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당시 오마이걸 멤버들은 모두 7명이었는데 작업 순서는 멤버들의 생년월일 순서를 따랐다.
첫번째 대상자는 리더이자 맏언니인 효정이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며칠을 끙끙대다 포기하고 작업물을 몇달간 방치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몇달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작업물과 참고용 사진들을 들여다 보았는데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길의 앞이 안보일 때는 잠시 그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도 답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이목구비가 드러났을 때 바로 오븐에 굽지 않고(조형 작업에 쓰이는 '스컬피'라는 점토는 오븐에 넣어 강한 열을 가해야 경화되는 성질을 가졌다) 며칠을 두고 천천히 살펴보며 수정할 부분을 찾았다.
급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2021년 봄부터 효정을 필두로 완성작이 하나씩 탄생했다.
늘 활짝 웃는 모습이 상징적이기에 해당 표정으로 정했다.
효정은 그냥 보고만 있어도 근심이 사라진다.
받침대 색상은 오마이걸의 상징색으로 정한 뒤 칠했다.
효정은 긴 생머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것 같다.
리더로서 늘 수고하는 효정.
너무나 오랜 시간 애를 먹였던 효정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이를 오븐에 구운 뒤 실리콘으로 몰드를 제작하고 그 몰드에서 레진 복제물을 뽑아
채색하면 완성된다.
그러니까 동일한 크기,동일한 형태의 피규어를 계속 만들 수 있다.
다음은 미미.
팀의 래퍼이자 메인 댄서.
그런데 역시 가수들이라 기본적으로 노래는 다 잘하더군.
미미 피규어도 만드는데 꽤나 고생 많이 했다.
머리카락은 금발로 할까도 고민하다가 위와 같은 색상으로 정했다.
미미는 이렇게 웃는 모습이 가장 미미다워 보인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표정을 정했다.
점토로 만든 미미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다음은 유아.
미미와 더불어 메인 댄서.
유아는 꽤 수월하게 나온 편.
모든 멤버들의 피규어가 그렇듯 멤버들의 미모를 모두 담지 못했는데
유아의 경우 내가 사진을 워낙 못찍어서 피규어의 제대로 된 모습조차 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그런데 내가 사진 찍는 역량을 안 키우려는 나름의 변명을 하자면...ㅋㅋ
'사진보다 실물이 못하네'라는 말이 고객들에게서 나오는 순간 내 밥줄이 위태로워지기때문...
머리카락 조형이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유아를 보면 구체관절 인형같은 느낌이 든다.
유아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모습.
다음은 승희.
효정과 더불어 팀의 메인 보컬.
머리카락 색상을 금발로 할까 고민하다가 위와 같은 색상으로 정했다.
유아와 더불어 승희도 꽤 수월하게 진행한 편.
승희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모습.
다음은 지호.
2022년 5월에 연기자의 길을 걷기 위해 팀을 탈퇴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선택과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고양이상으로 유명했던 미모 담당 멤버.
참고용 사진들을 보니 유난히 뽀뽀하는듯한 표정이 많아
해당 표정으로 정했다.
지호 피규어 작업도 무척 힘들었다.
머리카락 색상을 금발로 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흑발로 정했다.
금발도 하나쯤 있으면 괜찮았을텐데 고민만 하다가 끝났다.
지호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다음은 유빈.
처음에는 활동명이 '비니'였다가 작년에 본명인 '유빈'으로 바뀌었다.
유빈 피규어도 만드는데 무척 고생했다.
개인적으로 채색이 다소 아쉬웠다... ㅠ_ㅠ
역시 유빈은 단발이 찰떡.
유빈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마지막으로 막내 아린.
앞니가 살짝 드러난 무표정한 모습이 가장 예쁘고 아린다워보인다고 생각해서
위와 같은 표정으로 정했다.
사실 아린은 콧날이 날렵하다는것 외엔 얼굴에 큰 특징이 없어(정말 그냥 예쁜 얼굴)
묘사하기 가장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수월하게 작업한 편이었다.
처음에 아린의 의상은 한복이 아니었다가 중간에 바뀌었는데 덩달아 헤어스타일도 바뀌었다.
예전에 모 잡지에 실린,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예뻐 그 모습을 토대로 작업했는데
당시 머리카락 뒷부분이 보이질 않아 부득이하게 인터넷에서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한 여성분의 뒷모습을 참고했다.
아린도...뭔가 조금 아쉽다...
내 능력이 여기까인가보다... ㅠ_ㅠ
아린 피규어의 중간 결과물 모습.
의상이 대충 조형된 상태였는데 이 사진 촬영 직후 의상과 머리 모양을 변경했다.
멤버 전원의 흉상 피규어 완성 후 함께 모아놓고 한컷!
작년(2022년) 4월 30일,서울 마포구의 '꽃뜨루'라는 카페에서 열린 미미의 생일 카페에 들렀을 때
찍은 사진.
멤버들의 피규어가 함께 자리잡았다.
오마이걸 멤버들의 흉상 피규어는 모두 3개 세트가 탄생했다.
한 세트는 이곳 '꽃뜨루' 카페에 기증했고,
또다른 한 세트는 멤버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세트는 내 작업실에 전시되어 있다.
오전에 미미의 생일 카페에 들렀다가 곧바로 오마이걸 팬미팅 현장으로 달려갔었다.
미리 준비했던 응원봉까지 흔들며 공연을 관람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였던 관계로 1부만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티켓팅 당시 정말 전쟁이 따로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빈자리가 그야말로 순삭되는 모습을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
다행이 나쁘지 않은 자리 하나를 예약할 수 있었다.
팬미팅 현장에서 나같은 중년 남자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중학생 시절부터 참으로 오랫동안 좋아했던 김동률 가수님의 콘서트도 아직 가 본 적이 없은데
오마이걸 팬미팅에 갔다.
예전에 안하던 짓을 나는 어디까지 더 하게 될까?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