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차장님 잘 지내고 계세요? 점심 식사 한 번 하시죠.'
준영씨와 헤어진 지 벌써 3개월째.
새로운 사람을 대체 다들 어떻게 만나나 싶었는데 그 사이에 신기하게도 참 다양한 썸을 겪었다.
헤어짐에 우울해하던 어느 날. 언니가 넌지시 소개팅 어플을 추천했다.
그렇게 해서까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나와, 주변에 자기 친구들도 다 이용한다며 분명 괜찮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강하게 밀어붙이던 우리 언니.
나는 몇 차례 거절에 또 거절을 계속 반복하다가 언니의 등살에 소개팅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프로필 사진을 몇 개 골라 올리고 오글거리는 자기소개 멘트를 기입해 저장한다.
이렇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을 한가득 품은 채 말이다.
내가 가입한 어플은 하루에 약 열명 정도의 이성을 소개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이성의 프로필 카드가 열렸고 마음에 들면 호감을 눌러서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서로 맞호감을 교환했을 때 데이트 신청 같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물론 맞호감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마음에 들면 데이트 신청을 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몹시 회의적이었지만 또 며칠 있다 보니 소개팅 어플에서 소개해주는 프로필 카드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요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적당한 위치에서 지한이와 함께할 서울 아파트를 매수하는 것과 다시 천천히 좋은 사람을 찾아보는 것. 이 둘 뿐이다.
평일 퇴근 후에는 부동산 임장을 엄청나게 다니기 시작했다. 옆동 이모님께서 지한이를 온 마음으로 봐주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사가 광화문이기 때문에 회사와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아이를 적당히 교육시키기 좋은 곳 위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치솟은 부동산 금액을 보며 많은 좌절감을 느꼈다.
정신 차리고 나니 나는 이혼을 한 30대 중후반의 싱글맘이었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둘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또다시 맞닥뜨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래도 이게 낫지 않나 싶다. 감정의 독에 감정을 소비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곳은 차마 들어갈 수도 없는 입이 떡 벌어지는 금액대다. 따지고 보면 과거에 못 살 이유도 없었던 그 아파트들이 전세로 몇 년 사는 동안 순식간에 가격이 뛰어버렸다. 이제는 대출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도 나 혼자서는 도저히 그 원리금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한이 아빠가 보내는 양육비는 그저 법정양육비 수준이고 서울 한복판에서 적당한 집에서 적당한 수준으로 아이를 키워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숨이 턱턱 막혀올 뿐이다.
내 아이에게는 최대한 좋은 것만 주고 싶기에 더 그랬다.
누구에게도 편히 이혼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속 아픈 얘기를 끄집어 얘기하기도 어렵다. 결국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다. 속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회원님과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이성이 있습니다.'
누군가 데이트 신청을 보냈다. 내 프로필을 본 모양이다.
언니가 추천해 준 소개팅 어플에는 언니 말대로 괜찮은 사람이 꽤나 가끔 보였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정말 가끔은 있다는 점이 그래도 괄목할 점 아닌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을 수 있겠다는 직감에 다시 연애 감정을 싹 틔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렇게 나는 몇몇의 이성과 연결이 되었고 몇 번의 문자와 연락을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나간 소개팅 자리에는 사진과 굉장히 다른 사람도 있었고, 목소리가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닌 분도 계셨고, 매너 없게 너무 옷을 대충 입고 오신 분도 있었다. 아니 소개팅 자리에 운동복은 정말 아니지 않나. 대체 어떻게 하면 운동복을 입고 소개팅을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 대체 내가 이상한 건가.
몇 번의 만남 끝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는 사람이 둘 남았다.
2살 연하의 회사원과 2살 연상의 스타트업 대표.
그리고 30대 중후반의 서울 자가를 마련하고자 하는 싱글맘 이세연.
타이밍상 본격적으로 썸을 시작해야 하는데 갑자기 피곤해진다.
지한이를 키우는 것만으로 시간이 없는데 말이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라니 가당키나 한 얘기일까.
서로 마음에 들면서 에너지 레벨도 비슷하고 대화까지 잘 통하며 이성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과 다시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또다시 설레는 연애를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이런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