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혼했습니다.

#38

by Liz


나의 첫 번째 썸남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이름: 권민수

나이: 90년생

직업: 여의도 소재 금융대기업 차장

혼인관계: 이혼상태

자녀: 두 돌 남아 1명

양육여부: 비양육

면접여부: 격주 토요일 부산에서 면접교섭 진행


나의 두 번째 썸남.


이름: 윤준희

나이: 86년생

직업: 청담동 소재 스타트업 공동대표

혼인관계: 이혼상태

자녀: 9살 남아 1명

양육여부: 양육

면접여부: 한 달에 한 번. 불규칙함.


부동산 임장을 다니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썸관리를 하려니 정말 몸속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는 느낌이다. 다들 현생을 살면서 어떻게 연애를 하는 걸까 싶다. 다들 나만큼 복잡한 삶 속에서 살지 않는 건가.


썸남들이 모두 이혼을 한 상태기 때문에 고맙게도 나의 상황을 이해해 줬다. 자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그 만남의 시간이 짧더라도 불만을 크게.. 표시하지 않는 편이랄까.


'언니, 이런 게 돌싱의 연애인가..?


'왜? 갑자기?'


'아니 나 최근에 연락하고 있는 두 명 있잖아.'


'응응 왜 사귀재?'


'아니 ㅎㅎㅎㅎ 좀 ㅎㅎㅎ 뭔데 질문이 왜 이리 성급해ㅎㅎㅎ

그게 아니라.. 그냥 상황을 다들 이해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달까?

나는 자주 연락도 못 하고 자주 통화도 안 되고 만나는 건 더 힘들잖아.

근데 막 불평불만이 크게 없는 거 같더라.'


'걔네들도 다 여러 명 썸 타고 있어서 그래.

착각하지 마 이세연~~'


'아.. 그런 거야?'


결혼 전 나의 연애는 항상 어장관리 없는 직진형 연애였다. 성향상 어장관리를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심지어 나는 한눈에 남자로 보이는 사람과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나뉜다. 그리고 친구로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남자로 보인적은 거의 40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민수는 연하라서 확실히 뭔가 어린 모습이 보였으나 신체적으로 돋보이는 뭔가 남자다운 모습에 알 수 없는 케미가 돌았다. 보통 각자 퇴근 후 저녁식사를 하며 데이트를 했는데, 민수의 밝은 셔츠 속 은근하게 비치는 팔뚝의 근육 때문에 그랬나.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운동을 좋아해야 해. 그래 역시 사람은 자기 관리를 해야지.


그리고 준희오빠는.. 뭐랄까 그냥 잘생겼다. 그래서 좋다.


민수와 영화를 보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블록버스터를 보면서도 꾸벅꾸벅 졸길래 피곤한가 보다 했는데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간단히 술 한 잔 하러 가자고 하는 민수. 용리단길에 알아본 곳이 있다며 나를 끌고 가는 민수의 꾸밈없는 직진에 연상녀의 마음 한 구석은 또 두근두근 간질간질하다.


'여기 어때? 가볍게 사케 한 잔 하자.'


'그래 좋아.'


'차가운 거? 따듯하게 마실래?'


'아니 난 차가운 걸로 할래.'


사케를 주거니 받거니 나눠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가 보고 싶다는 민수의 말에 좀 더 자주 보지 못하는 그의 상황이 처연하게 느껴진다. 왜 우리들은 이혼을 했을까. 어른들의 이혼에 있어 최대의 피해자는 아이가 된다.

아이.. 나의 아이.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한 나의 지한. 그리고 민수의 아이에게도 그저 안타까운 마음이다.


늦은 시간, 그리고 또 술이 들어가니 민수는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자주 보고 싶어.

그런데 이렇게 가끔 있는 면접교섭이 아니면 세연이를 오래 보지도 못하고.

평일에 저녁만 먹고 헤어지게 되면 마치 그거 같아. 타임어택.'


내가 고민하는 지점이 건드려졌다.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게 되거나 좀 더 알아가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이 새로운 관계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부모님 도움 없이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고 아이는 내 손길을 필요로 하고, 동시에 일도 해야 하며 집안일에도 그에 못지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그 시간을 천천히 기다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그 과정이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건가 하는 고민 말이다. 어렵고 또 어려워서 어떠한 각도로도 풀어낼 수 없는 문제처럼 내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답이 없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