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지한이가 없는 주말. 느지막이 일어나 미뤄왔던 화장실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며 맡았던 오묘하게 비릿한 세재 냄새에 머리가 아파 집안 곳곳 창문을 열어두고 잠시 소파에 누웠다.
어느새 여름을 앞두고 있는 오늘.
새벽바람처럼 지나간 시간과 감정들이 열린 창문틈을 비집고 흘러 들어온다.
조금은 아프고 조금은 담담하다. 그러나 감정에 휩싸일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부동산 임장을 여러 군데 다녀보기로 했고 이번 달 안에는 꼭 적당한 곳을 매수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일은 보다 나아지자는 셀프응원으로 서둘러 이 순간을 마무리한다.
마침 중개사님이 좋은 물건이 몇 군데 있다고 했다.
앞으로 지한이와 내가 살아갈 집에는 따듯함을 채워 넣고 사랑을 담아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다. 우리 집을 떠올렸을 때 지한이가 따듯함과 안전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날이 좋아요~ 오고 계시죠?'
부동산으로 출발하려는 차 안에서 중개사님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네 중개사님~
시간 맞춰서 도착할 것 같아요. 이따 봬요.'
가야 할 아파트는 정했다.
나의 현재 자산과 은행의 대출이 서로 적당하게 허락해 주는 곳이다. 오늘은 그중 마음에 드는 호수를 꼭 찾아야 한다.
첫 번째 집은 어떤 교수님의 집이었다.
근처 대학교에 계시는 나이가 지긋히 드신 교수님의 집인데 평일에만 사용하시고 주말은 원래 본가로 내려가신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집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적당히 수리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 집의 인상은 현관부터 아주 지저분하다는 것이었다. 안을 마저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군데군데 누수자국인지 물자국인지 모를 흔적이 있었다. 올라온 매물 중 매매가도 제일 높았다. 보자마자 탈락인 집이다.
세 번째 집은 어떤 남매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매매가는 제일 낮았다. 인테리어가 안 되어 있는 집이어서 인테리어 비용을 빼준 셈이다. 어차피 전체 인테리어를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나쁘지 않았다. 인테리어를 할 생각에 세심하게 집을 보기보다는 거실에서 이어지는 뷰를 보러 몸을 틀었는데 예전 신혼집이 정면으로 보여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탁 트인 거실 뷰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이다. 내가 또 이 근처에 와서 살 생각을 한다니
참 속도 좋다 이세연.
네 번째 집은 아파트 정문과 가장 가까운 집이었다. 현관문 밖으로 정면이 탁 트인 집. 집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집이 적당히 수리가 되어 있고 내부도 잘 꾸며져 있다. 마침 세입자가 식사준비를 하고 있어서 맛있는 음식 냄새가 집에 가득하게 감도는 따듯한 집이었다. 단지 거실뷰가 문제인 것 만 빼면 나무랄 것이 없었던 집.
임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차별하게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지금의 집을 이 년 전에 얻었다. 전 남편과 계속 함께 할지 그만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얻은 집. 이 년 안에 마침내 나는 이혼을 결심했고 이혼 소를 제기했으며 소송으로 갈 것 같던 이혼소가 전남편의 해외파견으로 인하여 극적으로 조정에 다다랐다.
그렇게 나는 올해 초에 바라던 이혼을 이뤘다.
지하주차장에 주차 후 중개사님께 문자를 보냈다. 오늘 본 집들 중에 10월 중순경 잔금이 가능한 집으로 조율을 부탁드렸다. 올해 시월이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다.
지한이가 없는 주말.
시원한 와인과 넷플릭스가 함께 할 나의 저녁 시간. 확신의 MBTI E성향이 나이가 들며 점차 I로 바뀌어 간다. 요즘은 그냥 집이 제일 좋았다. 그저 편한 게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