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는 바퀴벌레가 보이면 일단 그 자리를 봉쇄했다. 그리고 1순위로 아빠를 2순위로 엄마를 불렀다. 주로 바퀴벌레의 출몰 지역은 화장실이었는데 아빠나 엄마가 바퀴벌레를 잡지 못했을 때면 잡힐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 쑥 들어갔다가 바로 나왔다.
얼마전 우리집 화장실에 바퀴벌레가 출현했다. 첫째는 비명을 지르며 내게 전화가 왔고, 나는 같이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 문을 꼭 닫아놓고 아빠한테 전화를 하라고 했다.
신랑은 첫째와 통화하면서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바퀴벌레니까 엄마한테 잡아달라고 말해봐]라고 했다. 어이가 없던 나는 제발 마주치지않길 바라면서 화장실에 바퀴벌레약만 살짝 붙여두고 나왔다(이정도도 스스로 엄청 놀람). 수영을 갔다가 오니 바퀴벌레가 죽어서 변기 안에 들어있었다.
'오~~~ 이거 약 대박인가봐~!'
"여보, 바퀴벌레 잡았다. 죽어서 변기에 빠져있어서 물 내렸어."
신랑은 그게 아니라 내가 수영간 사이 에프킬러 한 통을 화장실에 아주 자욱하게 뿌렸다고 한다. 으이궁...
소프트하게라고 잡긴 잡았으니... 인정해준다.
그리고 어제 밤, 신랑은 둘째아이의 침대로 갔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싶어 무관심한 척, 내 귀 한 짝을 남겨둔다.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퀴벌레인데 아빠 어렸을 때는 손바닥만한 바퀴벌레가 천장에 막 기어다녔거든. 잡으려고하면 날개를 펴고 파다다다닥~ 아빠는 바퀴벌레 제일 싫어해."
"나는 바퀴벌레 귀여운데? 더 얘기해줘."
"바퀴벌레가 보이면 아빠는 진짜 싫은데 할아버지는 바퀴벌레 손으로 잡는다."
"꺄아악 크크"
도란도란, 바퀴벌레 이야기가 저렇게 재밌는 거였나? 잠잘 시간임을 다시 알려줘야할만큼 둘은 오래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서야 둘째는 잠이 들었다.
말이 바퀴벌레를 불러왔나?
모두 잠든 밤, 홀로 TV를 보는데 뭔가 검은 것이 스르르 움직인다. 본능적으로 가까이가지 않아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어? 바퀴인가?"
어깨가 굳지만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녀석이 다른 곳에 숨어버릴새라 시선을 고정한채 빠르게 주변을 스캔한다. 실내화가 보인다. 내 손과 바퀴의 거리가 실내화 정도면 감당할 수 있다.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는다. 안절부절함 없이 실내화 한짝으로 곧바로 탕 내리친다. 잡았다. 휴지를 둘둘 말아 뒷처리를 했다.
심장이 조금 나대긴 하지만 곧 쇼파로 와서 앉는다.
'내가 바퀴벌레를 잡았다고?'
'정말, 내가 바퀴벌레를 잡았다고?'
뭔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으면서 무덤덤하면서 늙은 것 같기도.........뿌듯함과 동시에 나이 먹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