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

발라드를 사랑하는 40대

by 송주

첫아이를 가지고 5개월 쯤

배가 임산부 처럼 볼록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던 수업을 임신으로 인해 줄여가고 있던 시기였다. 막상 수업이 줄어들고 시간이 많아지니 무료 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내가 사는 지역에서 주부가요열창 예선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덜렁 예선 접수를 해 버리고 말았다.

발라드를 무척 애정하는 나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노래 대회에 나갈 정도의 고급 성대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다들 노래 실력을 확인 할 길이 없으실 테니 그냥 질러 본다. 보통 이상의 노래 실력이라고 ..


성격상 접수라는 걸 해 놓고 노빠구는 없다.

그렇게 떨리는 노래 경연 날이 다가왔고 예선이 시작 되었다.

엄청한 울림통을 가진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트로트 부르며 노래 실력을 뽐냈다. 가수 저리가라 급 실력으로 내 기를 죽이던 실력자들의 무대 중간 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잔잔한 발라드를 떨리는 음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의 선곡은 이수영의 사랑이 지나가면 이었다.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심사위원들은 내 노래를 멈췄고 목소리가 너무 작다며 연습을 더 하고 오라고 했다. 나의 무모한 도전은 그렇게 매몰차게 광속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무슨 베짱으로 거길 나갔냐는 남편의 놀림은 덤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 후로도 나의 발라드 사랑은 계속 되었다.


모임 후 흥에 겨워 노래방을 가기라도 하면 꼭 발라드를 슬픈 감정을 가득 담아 불러 재껴 분위기를 깨곤 했다.


직장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모두 기분 좋을 정도로 술에 취했고 2차로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동료들이 트로트, 댄스 등의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던 와중에 내 차례가 돌아 왔다.

내 선곡은 그날도 발라드 였다.

브라운 아이즈 의 가지마 가지마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애절한 전주에 한껏 감정을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서서 흥겹게 놀던 사람들에게 브레이크 타임이라고 알리고 그렇게 산통을 깨기 시작했다.

내 노래가 끝나니 노래방 안은 고요하다 못해 숙연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저지른 일...


원장님께서 노래 입력 버튼을 누른 후 다행히도 분위기는 살아났다. 그리고 난 다시 어색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노래를 다 부르신 원장님께서 갑자기 큰소리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노래 하지마!' 라고 소리 치셨다.

함께 한 동료들은 분위기 깰때부터 알아봤다 며 끼득끼득 웃었고 난 노상 있는 일이었기에 그려려니 했다.

일단 발라드를 그만 부르라는 뜻이었기에 난 팔자에 없는 댄스곡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나는 애절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혼자 눈물을 훔치기도 하는 감성적인 아줌마이다.

사실 신나는 노래방 분위기 까지것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흥이 나 춤을 추고 탬버린을 흔드는 일이 평생 어색했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건 좋아하지만 그 노래는 감성 자극 발라드였고

노래방에서 노는 일은 노력이 필요한 많고 많은 일 중 하나였다.


보통 사람들은 술을 먹고 즐겁게 노래방에 가서 즐긴다.

하지만 술을 먹고 노래방에 가면 십중팔구 댄스 트로트 파티가 열릴 것이며 엉덩이를 쇼파에 붙이기 힘들 수도 있다.

나는 노래방을 가더라도 조용히 발라드를 부르며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이다.


그래서 혼자 코인 노래방을 다닌지 좀 됐다.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혼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

코.인.노.래.방


천원에 세곡 필 받음 이천원 여섯 곡

분위기를 맞추며 탬버린을 안 쳐도 되는 그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발라드 실컷 부르며 자아도취에 빠져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거의 매일 노력 하고 사는 인생사

잠시나마 그 노력에서 해방 되고 싶어

노래방에 가고 싶을 때 혼자 가서 놀고 온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도 아주 잘 노는 40대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