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의 비밀

두 개의 생일

by 송주

평생 두 개의 생일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 이유는 내 울음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난 달은 1월이다.

그날의 날씨가 추웠는지 온화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갓 태어나 첫울음을 뱉은 내가 그 첫울음을 그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를 온 친척들에게서 마르고 닿도록 들어왔다.


글만 읽던 내 할아버지는 둘째 아들이 낳은 첫 딸인 내가 태어나서부터 줄곧 울기만 하는 것을 퍽이나 이상하게 여기셨던 모양이었다.

신생아가 태어나 잠도 안 자고 울어 대니 이상하고 힘들 법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울음에 곧 죽을 것이라는 기이한 해석을 단 것 역시 꽤나 이상한 일이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은 것이 내가 생일을 두 개씩이나 갖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호적에 올리지 못하도록 아들 내외에게 명하셨다.


할아버지의 자식들은 무려 10남매였고 그중 두 분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많은 자식들 즉 아버지를 포함한 나의 삼촌과 고모들은 하필 본인들이 태어난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알아챘던 모양이다.

그들은 출생 후부터 울지도 않고 모두 알아서 먹고 자고를 반복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할아버지가 신생아였던 나의 지속적인 울음에 죽음을 언급하셨던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울기만 하는 첫 딸을 보고 엄마는 애가 탔다.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은 상갓집을 가면 안 된다는 금기를 어겼던 아빠를 탓하며 내가 울기만 했던 이유를 초자연 현상에서 찾으려 했다.

많이 울면 목청이 트여 커서 노래를 잘하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위로 따위가 전혀 힘이 되지 않았던 그 시절 엄마는 사흘 밤낮으로 나를 업고 문 밖을 서성였다고 했다. 출근을 해야 하는 아빠의 통잠을 위한 엄마의 희생은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 표현하기 힘들다.


효자였던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내가 태어난 후 석 달이 지나 울지 않았음에도 호적에 내 이름 석자를 올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곱 번의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는 태어난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는 말에 급히 나를 동사무소에 신고하였고 그렇게 난 태어난 후 일곱 달 만에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존재를 인정받게 되었다.


안 그래도 족보가 꼬이는 1월 생이 출생의 비밀 같은 늦은 출생 신고로 인해 살면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어 왔다.


중고등 학교 시절 친구들이 생일을 물어보면 호적 생일을 말하곤 했다. 생일이 1월이라 하면 질문이 이어지고 다시 반복해서 그들이 믿거나 말거나 할 이유를 대야 하는 상황에 염증을 느끼듯 자연스럽게 호적 생일이 내 생일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당시 1, 2월 생 들은 한 학년 빨라야 정상이니 내가 내 친구들과 다르게 언니 처럼 느껴져 또래집단과의 유대가 약해질까 하는 걱정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또 내가 살던 지역에는 그 당시 고입 시험이 있었던 때라 재수를 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어린 마음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었다.


대학교 입학 후 일이었다.

나보다 학번이 높으면 다 오빠 아님 선배라고 부르며 친분을 쌓아갔다.

하지만 친분을 쌓던 그 오빠들 중 몇몇은 나보다 생일이 늦은 2월 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괜히 부끄러웠다.

나보다 학번은 선배였지만 출생은 나보다 늦은

오빠 아닌 오빠인 듯 오빠 같은 그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왜 학교를 일찍 가지 않았냐는 말을 십 대 시절부터

45살이 된 지금까지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때마다 난 본의 아니게 그 이유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다행히도 이제 생일에 따른 조기 입학이 없어진 지도 오래고 나이도 만으로 통일되어 왜 조기입학을 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생일이 기다려지는 마음은 나이가 드는 것과는 별개로 한결같다.

하지만 오래 전 시끌벅적한 생일 파티는 전생의 일인양 까마득 하다. 때론 술로 힘들었고 대체로 행복했던 생일을 이제는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 정도와 함께 기념한다.


나름 화려 했던 생일의 기억은 세월 속에 묻혀 젊은 날 중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하지만 소박하게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보내는 현재의 생일이 그때의 생일 만큼 값지다.


특히나 이제 누구를 만나도 내 생일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다. 나이들어 만난 인연들과 서열을 매길 필요도 또래 집단을 만들 필요도 없으니

내 생년월일을 그들이 궁금해 할 이유가 없다.


결론적으로 나이가 드니 내 생일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없어서 출생의 비밀을 해명도 설명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