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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ow Dec 03. 2023

미운 우리 팀장과 해외출장 가기

직장인 왕따 극복기 #6

팀장과 해외출장을 가게 됐다.

해외출장을 가게 된 이 업무는 원래 팀장이 이 일이 이렇게 커져서 해외출장까지 가게 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나에게 자투리 업무 던지듯 던진 거였다.

"내가 업무가 많아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내가 물어보면 알아서 대답할 수 있도록 관련 내용에 대해 스터디를 해 놓도록 하세요."

그가 업무를 부여하며 한 말이다.

 

나는 팀장과 출장을 가기 싫은데 팀장은 굳이 출장을 간단다.

출장을 안 가겠다고 하면 나의 연말 계획인 '연말에 팀 옮기기'가 드러나는 상황이다.


팀장은 출장 전 내 옆자리에 앉더니 별도로 묻는다.

"근데 딴 팀 갈 거 아니지? 어?"

"딴 팀 갈 거면 빨리 말해. 다른 사람 보내게."  

나는 팀장의 눈을 피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말하고 지금 딴 팀을 가지 말라는 거냐?'


나는 팀장이 왜 출장을 가는지 모르겠는데, 팀장은 자신의 상사인 A가 왜 출장을 가는지 모르겠단다.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섀도우 님이 A와 둘이서 출장을 가게 될 테고, 그럼 섀도우 님이 퇴사를 할 것 같아요. 그러니 내가 함께 가는 게 좋겠습니다."

팀원들에게 본인의 출장 계획을 밝히면서 덧붙인 본인이 출장을 가야 하는 이유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책상만 보고 있었다.


A가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팀장은 영어가 되냐고 물어봤을 때 팀장은 조금 한다는 듯 "네, 저는 뭐..."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출장지에서 보니 그는 영어가 전혀 안 되었다. 출장지에서  본 그는 정말 출장을 오고 싶었거나 팀장 완장을 찬 것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한동안 팀장이 다른 해외출장을 가서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좋았는데, 팀장과 출장을 가야 할 주가 다가오니까 숨이 막혀온다.






다시 회사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팀장의 직장 괴롭힘이 시작되고 두 번째 상담이다.

이번에 상담사는 콘셉트를 공감으로 잡은 것 같다. 팀장을 같이 욕해줬다.

"헐... 왜 간대요?"

"그게 뭔 말이래?"


그러고 나서 상담사가 내게 계속 상기시켜 주는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다.  


나는 팀장에게 내 감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팀장과 단둘이 있는 시간에 팀장이 이것저것 묻고, 나는 그것들에 대응을 하다 보면 내 감정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내 감정이 무너지지 않은 채로, 팀장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채로, 팀원들은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게 한 상태로 겉으로는 조용히 잘 지내다가 연말에 팀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상담사는 다시 묻는다.

"팀장님은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 같으세요?"

나는 어쩌면 내가 팀장이 원하는 인정 욕구를 채워주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웬만해서는 팀장에게, 그리고 팀장뿐 아니라 그 어떤 상사에게도 "최고예요!", " 대단해요!" 등의 '아부성 허언'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 팀장이 본인이 업무가 많아 힘들다고 푸념하면 속으론 나도 많다고 생각하고 아무 말하지 않는다.


상담사는 여러 이야기들을 듣더니 내게 말한다.

"팀장님은 지금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불안한 감정을 섀도우 님께도 표출하는 거죠"

"팀장님의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그러면서 솔루션을 제시했다.

"출장을 가서는 웬만해서는 팀장님과 떨어져 지내고, 특히 단 둘이서 술을 마시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세요. 한약을 먹는다든지 등의 핑계로 분리되어 계세요."


하지만 이건 가능한 솔루션이 아니었다.

팀장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잘 안다.

내가 건강을 위해 한약을 먹거나 할 시람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결국 상담사와 함께 이렇게 결론지었다.

인정 욕구를 채워주는 방편으로, 팀장을 사장님 모시듯 하는 거다.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알았다고 하는 거다.


그리고 상담사는 덧붙였다.

"팀장님의 말이 가시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사실이 아니니까요."

"대신 그 말이 가시처럼 느껴진다면 그 상황에서는 '이 말을 적어놨다가 언젠가 신고해야겠어!' 이 생각에 집중해 보세요."라고.




이렇게 마음을 어느 정도 준비한 상태로 나는 A보다 며칠 더 먼저, 그러나 팀장과는 함께, 단둘이서 해외출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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