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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하루하루 친구 같던 날들

잃어버린 계절

by freejazz


문득 달력을 보니 6월 중순을 지나,

올해도 거의 절반이 지나버린 걸 알았네요.

비 오는 금요일 저녁,

대학 후배와 같이 동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손님 중 누군가가

이제 완연한 장마철이 온 것 같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그 말에 뒤이어 찰그랑, 그릇 나르는 소리가 들리며,

식당 아주머니께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래, 이젠 완전히 눅눅하고 축축한 여름이야."



이제 막 여름이 찾아온 듯했는데,

싱그러운 초여름은 그냥 스쳐 지나갔고...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었는데,

곧바로 좀 우울한 장마철이 시작되었네요...



짧았던 초여름이었지만,

그래도 대학가(大學街)에는,

올해도 싱그러운 여름이 분명 있었을 겁니다.

강남대로변과 테헤란로의 번잡한 아침도,

그리고 종로 일대의 한낮도 담아내지 못한

그 싱그럽던 초여름을,

올해도 서울 곳곳 대학가의 청춘(靑春)들은

충분히 만끽(滿喫)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룰루랄라" 註) 신촌(新村) 거리는

그 여름을 자연스럽게 담아냈을 것 같네요.


* 註)

"룰루랄라 신촌을 누비는 내 마음은 마냥 이야에로"

라는 가사의, 일기예보의 "좋아 좋아"에서 인용(引用)


그 노래를 들으면 저는 항상 설레는,

싱싱한 초여름의 신촌 거리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올해 들어 잠시 맛보았던 그 초여름이,

제겐 싱그럽지 못한 장마와 습(濕)한 무더위만 남기고

어느덧, 떠나갔습니다.


대학 시절엔, 한 달에 삼십만 원짜리 과외를 해도

계절이 하루하루 친구 같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장마 속에서도, 그리고 쨍한 더위 속에서도

한 줄기 싱그러움이 떨어지려야 떨어지지 않던,

그런 날들도 있었습니다.

삼천 원짜리 밥을 먹어도 일 년이 정말 길다고 믿었던

그때 그 대학시절,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인생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는, 어머니 잔소리 같던

그 말을 믿지 않던, 그때가 좋았습니다.



어느덧, 다시는 되살 수 없는 인생 일 막이

이미 커튼 뒤로 자취를 감추었음을 느꼈습니다.

제 나이도 차고 있으니, 이제 인생 이 막인가요.

그런데 왠지 좀 낯설고 지루하네요.




#.

그날은 하루 종일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물론 저는 우산을 갖고 있긴 했는데,

일부러 얼마동안은 살짝 비를 맞았습니다.

간절한 이유 속에서 술잔을 기울여도

그다음 날 찾아대는 "물" 로는

그 간절한 이유가 해결이 잘 안 되듯

어쩌면 그때 맞고 있던 비로도

제가 느끼던 갈증은,

완전하게 해갈(解渴)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은 밤, 그런 생각에

비를 맞으며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네요.



얼마나 더 계절을 잃어버려야

제가 느끼는 갈증이 어느 정도 해갈(解渴)될까요.

얼마나 더 계절을 붙잡아야

다시 싱그러운 초여름을 만끽(滿喫)할 수 있을까요.



"계절이 하루하루 친구 같던 날들" 을 뒤로하고

이제 정작 제 삶은,

의무와 책임 아래 덮여가는 것 같습니다.

"싱그러운 초여름" 이라는,

그 소중한 계절까지 다 잃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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