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스터리 한 일들
연초에 조직 내에서 사내강사 5명을 선발한 뒤
알아서(?) 나눠서 강의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준비 관련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회차가 진행될수록 참석자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사유를 들어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직원들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하아... 그런데 이 조직에선 그게 용납이 되더라고요.
뭐죠? 이 상황은?
그래서 결국 저는 홀로 남겨져서
외롭게 강의 교안(敎案)을 만들고,
급기야 혼자 11 차수의 강의를 완수(完遂)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중간중간 이런 상황을 컴플레인했지만
조직장에겐 씨알도 안 먹혀서
막판엔 개별 면담까지 신청해서 고충을 토로했는데,
”혹시 저마저도 못한다고 빠지면 쌍욕을 먹습니까?”
라는 저의 갈 데까지 간 질문에도
조직장은 아무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대체 뭘까요?
어떤 보이지 않는 신분차별일까요?
제가 입사할 때부터 이 조직에 배치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는 나름 "근본" 있는 공채(公採) 출신인데,
그렇지만 뭔가 차별은 분명,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이 조직에선,
마치 조선시대의 서얼(庶孼) 신분 같았네요.
그래서 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강의 교안에 제가 하고 싶은 말들을 죄다 넣어
약 한 달간 주중엔 야근하고 주말에도 근무하면서
교안 작업을 겨우 마무리했는데,
심지어 첫 강의를 시작하는 그날 새벽 2시 반까지
주야장천(晝夜長川) 교안 작업만 히다가
결국 강의 연습과 시간 배분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채, 당일 14시에 바로
첫 강의의 스타트를 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뭐였을까요.
전혀 예상치 못했는데, 직원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이걸 제가 직접 대놓고 쓰기엔 무척이나 부끄럽지만
강의 결과 피드백을 그대로 몇 자 적자면...
사이다 같은 강의였다,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거라 너무 좋았다,
결론적으로 교안 내용이 깔끔하고 강의 스킬도 좋았다,
이런 건 반복해서 계속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
같은 류(類)의
믿을 수 없던 찬사(讚辭)와 앵콜 요청이 있었네요.
그래서 중간에 강의가 몇 차수 더 생겼습니다.
한편, 그런 상황이 발생하자,
어떤 조직에선 강의가 좋았다고 저에게 저녁을 샀고
또 다른 조직에선 자신들의 행사에 저를 초대했네요.
그런데 사실 제가 속한 조직에선 아무 말이 없다 보니
저는 좀 불편한 감이 있어,
그들의 제의를 몇 번이고 고사(固辭)했는데,
그들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그들과 영화도 같이 보고
뒤풀이로 치맥까지 같이 했습니다.
게다가 지방에 위치한 별동(別棟) 조직에선,
저에게 점심식사와 저녁식사를 모두 제공해 주었고,
심지어 밤엔 술도 한잔하고 가라고 제안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자차(自車)로 지방 출장을 갔기에,
그들에게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고 밤늦게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속한 조직에선 더 이상의 강의는
이 직원이 할 수 없다며, 추가로 요청받은 강의를
완강(頑剛)하게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저는, 문제가 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과감하게 말하고
향후에 제대로 개선(改善)해보자고 제안(提案)하며
참석한 직원들에게도 동의를 받았는데요.
이렇게 뭔가를 개선하는 (또한, 다수의 동의를 얻은)
등의 이런저런 성과가 있었지만,
제가 속한 조직에선 이런 것쯤은
또다시 그냥 다 무시해 버렸죠.
하지만 이 조직을 제외한 모든 조직에선
(제가 속한 조직의 상위 조직과 유관 조직 포함)
나름대로의 성과를 인정해서
저에게 그에 맞는 리워드(reward)를 주려 했지만
제가 속한 조직에서는 이에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여
오히려 차가운 분위기만이 감지될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수많은 절대다수의 직원에게 교육했던
이른바 정공법(正攻法)의 업무 프로세스는
더 이상 제가 속한 조직에선 전혀 먹히지 않았고,
이건 문제가 있다고 예를 들었던,
그런 잘못된 사례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조차도
이젠 그냥 방관(傍觀)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어떤 때에는
그런 잘못된 사례와 같은 방식을
오히려 권장하는 것 같아,
제가 속한 이 조직에서 과연 저는
그동안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떠들었나 하는,
자괴감(自愧感)이 들 뿐이었습니다.
제가 제시한 것과 제가 실제로 행하는 것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인지요.
한편, 얼마 전 조직 회식 자리에선
그래서 그랬는지 술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고
모두가 맛있다고 했던,
정육식당의 상급(투플은 아니었을 듯) 소고기가
저는 전혀 맛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너는 왜 술을 안 마시냐." (From 선배님들)
혹은 "책임님은 왜 술을 안 드세요." (From 후배님들)
같은 류의 질문을 그 자리에서 계속 받아
저는 그냥 술을 마시는 척만 하고는
(사실 평소보다 덜 마셨을 뿐, 살짝 마시긴 했습니다.)
2차가 파한 뒤 밀린 업무를 보러 사무실로 복귀해서
얼음물을 속에 들이부으며, 지친 제 몸을 위로했지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어,
밤이었지만 그날따라 날은 무척이나 무더웠고,
그래서 그랬는지 저 또한 왠지
속이 많이 답답하다 못해 역(逆)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그냥 얼음물만 계속 들이켰네요.
불과 그보다 사흘 전이었나,
같이 일하고 있는 업무 파트너인 해외 주재원이
본사로 출장을 와서,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인
몇몇 직원들과 같이 소규모로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우린 모두들 기분 좋게 술을 마셨는데...
그날과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조직 회식 자리에선
저는 소속을 잃고 또 갈 곳을 잃은 듯했습니다.
조직 회식날 밤 도망쳐 온지(?) 한참이 흘렀을까.
미국 법인의 주재원들과 통화하며 일하다 보니
어느덧 사무실에 온 지 두 시간 여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노래방으로 3차를 갔다던 일부 직원들이
걱정된다며 같이 귀갓길을 챙겨주자는 연락이 왔고,
그리하여 저는 황급히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얼음물 몇 잔 덕분인지 술은 완전히 깼는데,
문제는, 테헤란로의 그 짧은 블록에 동일한 상호의
노래방이 무려 세 군데나 있었다는 것.
그래서 한참을 헤매다 두 번째로 겨우 찾은 그곳에서
이미 직원들이 바로 직전에 우르르 나갔다는
사장님의 말씀을 듣고선, 그제야 저도
근방 지하철역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네요.
이윽고 2호선의 그날 막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조직 회식에서 전혀 즐겁지 않고 취하지 않은 내가
비정상인 건지.
그리고, 굳이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아도
조직장의 의중을 파악해서 그대로 행하지 않는 내가
비정상인 건지.
또한, 아무리 맞다 해도 굳이 그걸 맞다고 따지는 내가
비정상인 건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지하철은 벌써 저를
무사히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줬고요.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약간 찌그러진 보름달을 보며 저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대로,
너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그냥 내가 살아온 방식 대로,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신념 대로,
그렇게 일을 하자.
설사 그런 걸,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나를,
내가 속한 조직에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게 내가 살아온 길이고 내가 살아갈 길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그게 이 작은 조직과는 다소 맞지 않을지라도
큰 조직이나 회사 전체를 보면
그게 그나마 더 맞지 않을까."
그렇게 저는 판단했습니다.
물론, 그날도 역시 잠을 푹 자지 못하고
새벽에 몇 번이나 깨어났지만,
뭔가 많이 갑갑했던 건
그래도 조금이나마 풀어진 듯했습니다.
곧 다가오는 입사(入社) 21주년.
제가 여기에서 이룬 것은 무엇이고,
또 제가 여기에서 잃은 것은 무엇일까요.
날은 점점 무더워지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더 찌그려져 보이는 하얀 보름달은
왠지 모르게 점점 더 차가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받아본 강의 평가서를 읽어보니,
저를 응원(應援)해주고 지지(支持)해주는 직원들이
그래도 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너무 눈치 보지 말고,
"이게 맞는 거다!" 라고 제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아... 글을 마무리하려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던 중,
눈물 두 방울 정도가 키보드에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눈물이었을까요 아니면 땀이었을까요.
하하... 요새 날씨가 아주 무덥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있고,
또, 조직은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는 서서히,
긍정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테니까요.
그리고 대놓고 표현하진 못할지라도
저를 옹호(擁護)해 주는 직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알고 보면 마음이 맞는 직원들도 또 있을 거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주말을 맞아
(물론, 저는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희망에 찬 가슴으로 오늘을 살아갈 당신들에게,
직장 동료로서 힘내시라는 말을
이 글에서 대신 전합니다.
끝으로 이 글의 배경음악은,
Santana(Feat. Steven Tyler of Aerosmith)의
2007년 발매 싱글곡인,
"Just Feel Better"로 하겠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
"제발 누구든 나에게 힘을 줘!" 라고 말하기에 앞서
스스로도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