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기로만 남아버린 짧은 가을
가을이, 초반엔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잦은 비를 몰고 왔다가 이젠 너무나도 스산한 바람만 불어오게 한 뒤 조용히 자취를 감추려 한다. 이 계절이 시작되고 나서 나는 무얼 했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벌써 11월 둘째 주를 떠나보내야 한다. 어느덧 11월 중순을 지나 올해도 약 7주 정도만 남겨둔 채, 바람처럼 이렇게 2025년이 지나가고 있다. 올해는 연초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느 해보다 바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 오히려 연초보다 더 많은 일들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내 앞에 보란 듯 벽을 쌓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이들이 영원히 해결되지 못할 듯 무겁게 내 마음에 닿는다. 무겁고, 무겁게. 가을이 내게 늘 그랬던 것과 많이 다르게.
2025년의 가을은, 조만간 매서운 겨울로 변신한 뒤 거친 눈보라를 휘몰아치게 할 것처럼, 마치 당장이라도 강추위를 몰고 올 것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가을이 시작됨과 동시에 너무나도 낯선 풍경이 하루하루 계속됐다. 그러다 결국 이젠 간절기(間節氣: 한 계절이 끝나고 다른 계절이 시작될 무렵의 그 사이 기간)로만 남아버린 가을은, 여름과 겨울 사이에 잠깐동안만 외롭게 버티다가 금세 사라질 뿐이었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반소매 티셔츠에서 바로 긴소매 맨투맨으로 넘어가는 것도 이젠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
우리 동네에선 가을이면 늘 파아란 하늘 아래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던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 가을 공기는 언제나 내게 친구 같은 그런 존재였는데. 그래서 가을날 저녁이면, 서쪽 하늘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던 내 눈엔 항상 맑고 맑은, 가을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언젠가부터는 가을에도 시야(視野)가 조금씩 흐릿하게 느껴진다. 늘 내게 친구 같던 가을공기도 이제는 그저 차갑게만 느껴질 뿐이었고, 추억의 저녁노을도 이제 구름 속에 가린 지 오래. 예전엔 기온이 조금씩 내려갈수록, 오히려 사람 사이의 믿음과 따뜻함은 더더욱 두텁게 느껴지던 그런 가을날이 분명 있었는데. 이 계절이 아무리 이렇게 낯선 모습으로 잠시 왔다 금세 지나가더라도, 어느 때보다 가을이라는 시기가 내겐 절실하게 필요했었는데.
그동안 가을이 보여줬던 모습들을 이젠 다시 볼 수 없겠지만. 그리고 지금은 흩어진, 우리가 가을에 情을 같이 나눴던 사람들을 이 계절에 다시 만나긴 무척이나 어렵겠지만. 나는 그때 그 시절 가을의 모습이 지금 너무나도 그립고, 또 가을이면 함께 모여 술 한잔 기울이던 그 정인(情人)들의 안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그리움만 반복될 뿐 소식도 잘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날도 쌀쌀해지는데 우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말자고 이 가을에 투정하듯 얘기하고 싶다. 설사, 내가 먼저 가까이 다가가진 못하더라도, 당신들은 절대 내게서 멀어지지 말라고. 그렇게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부탁을 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이 계절엔 당신들의 따뜻한 위로가 내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가을이 내게,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리 이렇게 낯선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이렇게 금방 우리를 떠나간다 하더라도.
(사진 1) 가을 아침, 출근길의 테헤란로
(사진 2) 가을 저녁, 퇴근길의 우리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