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Istanbul and Antalya
어느 회사든 해외 주재원(駐在員)에게는, 대체적으로 1년에 한 번 가족들과 함께 주재국(駐在國)을 떠나 본국(本國)을 방문하는 "본국 휴가"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주로 한 해가 마무리되는 연말에 본국 휴가를 사용했었는데요. 주재기간 4년 중 후반기였던 2년간은 코로나 시기라 (격리를 해야 해서) 아예 휴가를 쓸 수 없었지만, 그래도 첫 해와 두 번째 해에는 그 휴가가 정말 달콤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으로 휴가를 오면, 먼저 최우선적으로는 종합검진을 해야 했고, 그다음에는 치과와 심혈관내과 등 익숙한 한국의 병원들을 돌면서 1년간 무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미리 자잘하지만 아주 중요한 저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쪼개서 양가 부모님들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을 만나야 했고요. 또, 본사에도 들러서 "저 잘 살고 있습니다!" 라고 인사도 드리고 현지에서 가져온 선물(?)들도 좀 돌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운전면허증도 갱신(更新)하고, 은행 OTP나 신용카드 등을 재발급하는 등 금융 관련 업무도 필수였죠.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무슬림 국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돼지고기 삼겹살을 소분(小分)해서 냉동 후 포장해 가야 했고요. (제가 거주했던 동네 정육점 사장님께서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해주셨죠.) 또 라면이나 아이들 과자, 각종 양념류, 통조림(스팸류) 그리고 베이컨이나 오리고기 등의 냉동식품도 잘 포장해서 가져가야 했습니다. 아무튼 본국으로 일 년에 딱 한 번만 들어오니! 항공사에 페널티를 내더라도 어떻게든 한국 음식을 많이 가져가는 게 필요했죠. 그때 그 시절엔 정말 한국에 들어오는 게 큰 일이었고, 그래서 "본국 휴가'를 앞둔 시점이면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며 계획을 짰던 그런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느덧 귀임을 한지 정확하게 3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주재원 시절의 그런 "본국 휴가"의 기억은 이미 잊힌 지 오래이고, 이젠 한국생활이 너무나도 익숙해진 시점이죠. 아이들도 어찌어찌 잘 적응을 해서 그간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야구 등 스포츠 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이제 한국을 떠나 다시 해외생활을 하는 건 어쩌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된 듯합니다. 그래서 간혹 아이들에게 "다시 해외생활 하는 건 어때?" 라고 물어보면, 다들 안 간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어렸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따라 외국으로 쫓아갔지만, 이제는 본인들이 스스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저도 주재원을 다시 나가는 건 한동안 고려하지 않고 있었고, 해외 생활 또한 할 만큼 해서 저를 포함한 저희 가족은 하기휴가나 명절 또는 연휴 때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은 전혀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신 강릉, 경주, 공주, 부여, 속초, 안동, 제주 등 주로 국내의 역사 도시와 관광지를 자주 다녔죠.
그러다 첫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니, 내년부터는 이제 가족여행을 길게 가는 것도 힘들겠더라고요. 그래서 올해 주재원 귀임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번 가보려고,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모두 터키를 말하더군요. 저는 4년간 살았던, 그리고 아이들은 3년 6개월간 살았던 그 나라 그 도시를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이들은 아주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나 아내는,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를 우선적으로 제안했었고, 그다음에는 코로나 탓에 가보지 못했던 유럽의 대표적인 관광 국가들, 이를테면 스위스나 이탈리아를 얘기했는데, 아이들은 굳건했습니다. 해외는, 터키 말고는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엔 그런 아이들의 대답을 반신반의(半信半疑) 했습니다. "다시 터키에 가고 싶다고? 이스탄불에? 4년이나 살던 도시에?"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나, 이스탄불을 떠나오면서 저 또한, "언제든 다시 돌아오겠다, 나중에 다시 보자! " 이렇게 마음속으로 되뇌며 돌아왔기에 언젠가는 이 도시와 재회(再會)한다는 믿음은 줄곧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터키에 다시 가면 현지 음식만 먹어야지! 이스탄불 아시아 지구에 위치한 처녀의 탑(Kız Kulesi) 앞에서 차이(çay) 한잔 하며 여유롭게 멍 때리고 있어야지! 이런 생각을 간혹 했었죠.
하지만, 생각보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습니다. 매일 계속되는 야근과 꽉 찬 일정으로 인해 주말에도 제대로 쉬질 못해 여행 계획은 매번 한주를 마감하고 다음 한주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인, 일요일 밤이 되어서야 겨우 의논했기에, 여행 출발을 몇 주 정도 남기고 숙소와 렌터카 등을 예약했습니다. 물론 항공권은 오래전에 특가 할인을 받아 구입하긴 했지만, 숙박과 체류비 등을 고려해 보니 예전보다 상당히 많이 오른 물가가 체감이 되더라고요. "이 나라의 물가가 이렇게 비쌌던가!" 라고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3년 6개월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이 나라의 경제상황을 그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항공, 숙박, 렌터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약을 했기에! 기대와 희망을 잔뜩 안은 채, 곧 현지로 출발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 지난 7월 초에 일주일간, 마감에 임박해서! 겨우 근속휴가를 사용했었는데, 한 달 만에 다시 휴가를 가려니까 회사에서는 좀 민망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그 한 달 사이에도 과중한 업무 탓에 저는 상당히 많이 지쳐갔었고요. 그래서 8월 초순이 저에게는 또다시 휴가를 떠나기 좋은 시점이 된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했을 때 주재국에서 본국으로 오는 "본국 휴가"가 아닌, 본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주재국을 가보는 "주재국 방문"은 흔치 않은 기회인 듯했고요. (비록 "자비(自費)"로 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무실을 떠나, 그리고 한국을 떠나 오랜만에 익숙한 국가의 익숙한 도시에서 오롯이 리프레시를 할 수 있다는 큰 장점도 있었으니... 떠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이번 휴가 때 가는 곳이 예전에 제가 잠시 여행으로 머물렀던 곳이 아니라 실제 오랜 기간 거주했던 곳이다 보니 그 나라의, 그리고 그 도시의 향(香)과 색(色)과 맛(味)이 익숙하면서 그리운, 뭐 그런 감정이 벌써부터 느껴지네요. 그래서 꽉꽉 채운 10박(12일)의 휴가 기간 동안, 심플하게 이스탄불(숙소는 유럽 사이드 부촌(?)인, 조용한 베식타쉬 지구의 에어비앤비)과 안탈리아(남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도시, 숙소는 구시가지 바로 앞 고급(?) 아파트형 리조트) 딱 두 개 도시만 갑니다. 그중 안탈리아는 제가 주재 기간 막판에 연속으로 세 번이나 갔었던 곳인데, 심지어 제가 묵을 숙소에서도 창문을 열면 아래와 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안탈리아는 굉장히 이국적인... 에메랄드빛 바다와 해변, 그리고 장엄한 토로스 산맥이 한눈에 보이는 터키의 대표 휴양지인데요. 저에게 아직 남아 있는 이 도시에 대한 정(情)을 이번 휴가 때 아낌없이 다 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지에 가면, 매일매일 현지의 대표 음식을 먹겠다! 라고 생각하며 식단을 짜고 있었는데요. 식성(食性)이 노인네 같아서 어딜 가도 "한식"(韓食)만 찾는 둘째 아이는 또 옆에서 중간중간에 꼭 한식을 먹어야 한다며, 이것저것 싸갈 것을 요구했는데... 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깟 열흘을 못 참냐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한국 음식을 공수하지 못한 게 어언 2년간이었는데 그깟 열흘이 뭐 대수인가 했죠.
하지만 그런데 여행 짐 싸기 직전에는? 저는 급기야 라면과 햇반 그리고 밑반찬도 주섬주섬 캐리어에 집어넣었습니다. 아, 그리고 새우깡도요. 이게 참 웃긴 게… 불과 10박인데(10박 12일) 그동안 한국음식 없이 못 사나? 이렇게 생각하고 쉽게 보다가 아이들 핑계를 대며 이것저것 더 넣고 있는 제 자신이 한편으론 부끄럽고 한심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또 변명을 좀 하자면, 케밥과 양고기, 시미트, 피데, 라마준, 그리고 환상적인 카흐발트(아침식사) 같은 현지 음식도 정말 너무 기대됐지만, 중간에 아이들과 한 끼 정도 훌륭한 한식을 먹는 것도 아주 괜찮겠더라고요. 하핫.
어쨌든, 저는 그렇게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장장 11시간 반의 비행 끝에 이스탄불 국제공항에 도착했고요. 이후 그날 바로 안탈리아로 향하는 국내선을 탑승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대표 휴양도시에서는 최소 4박은 해야지! 라고 생각해서 미리 예약했던, 구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환상적인 숙소에서 4박을 했습니다. 아! 다시 와본 안탈리아는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왜냐면, 이스탄불은 나중에 유럽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스탑오버(stopover)로 다시 한번 잠시라도 거쳐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안탈리아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안탈리아는 이번이 저의 생애(生涯) 마지막 방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있는 힘껏! 모든 걸 이 도시에 집중해서 4박 5일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중간중간 구도심에서, 그리고 지중해기 보이는 해변 레스토랑에서 감자튀김에 맥주 한잔 하면서 힐링도 하고, 여유도 좀 느끼면서요!!!
그리고 이젠 다시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 과거 로마 시대에 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렸던 이곳, 이스탄불에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엄청나게 빠르게 느껴지는 법! 그래서 이렇게 지나가는 휴가가,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이곳에서의 일정이 굉장히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지는데요. 그래도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어서, 그리고 현지의 향신료가 가득한 케밥과 느끼함이 가득한 오리지널 카이막을 다시 맛볼 수 있어서! 지금 이 순간 저는 아주 행복합니다!
2025. 8. 10.
다시 여기, 이스탄불에서!
(참고사항)
'22년 6월 유엔(UN)은 기존 ‘터키(Turkey)’라는 국명을 ‘튀르키예(Türkiye)’로 변경하는 것을 승인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터키 대신 튀르키예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재원 부임 직전인 '17년부터 주재원 귀임 직후인 '22년 2월까지 거의 5년 이상을 ‘터키(Turkey)’라고 불러온 저는 국명을 바꿔서 부르거나 표기하는 게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이전 표기법인 ‘터키(Turkey)’로 표기한 내역을 굳이 수정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