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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름다운 시간들이 흘러간다

역(逆) 향수병(鄕愁病)을 앓는 시간

by freejazz


세 번이나 잠이 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했던 힘겨운 새벽을 보낸 뒤, 아직도 휴가 중이라는 착각 속에서 일어났던 늦은 아침 시간. 아무도 없는 집안에선 그저 고요한 적막감(寂寞感)만이 느껴졌고, 베란다의 블라인드 틈으로 눈부시게 들어온 아침 햇살에선 여전히 뜨거운 한여름의 열기(熱氣)가 감지(感知)되었습니다. 그렇게 겨우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 아홉 시. "음, 지금 거긴 몇 시지? 아, 새벽 세 시겠구나."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물 한잔을 마신 뒤 저는 잔뜩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갔네요. 그런데 세수를 하다 말고 문득 바라본 거울에선 뜨거웠던 지중해 태양의 흔적 탓인지, 까맣게 그을린 제 자신이 어쩐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고, 여행 중에 자주 듣던 Pop 음악들도 그날따라 유난히 새롭게 들렸습니다.


그제야 저는, 긴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너무나도 행복했던, 그래서 되돌리고 싶은 시간들을 혼자서 조용히 돌아봤습니다. 예전에 즐겨 쓰던 VCR에서처럼, "Rewind" 버튼을 눌러 제가 원하는 그곳으로, 또 그 시점으로 다시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제겐 정말 꿈만 같았던 그 시간들을 영원히 기억하기로 스스로 다짐한 뒤 거울에 비친 낯선 제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보니, 여행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감정들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제2의 고향(故鄕)과도 같았던 그곳에서의 여름휴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절대 그곳에 다시 가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어, 저는 그동안 과중한 업무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다 날려버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리고 전투적(戰鬪的)으로! 그곳에서 원(怨) 없이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고 또 즐겼습니다. 사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놀면 휴가 후에 제 몸이 이걸 감당(堪當)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됐지만, 그런데 그건 굳이 미리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였습니다. 뒷일은... 일단 떠났으니! 나중에 걱정해도 되는 거였으니까요. 게다가 그동안 제가 너무 지쳐 있었기에, 뭔가 탈출구(脫出口) 같은 게 저에게는 꼭 필요했습니다. 특히, 그게 제가 예전에 거주했던 "나의 도시"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지요.


한편, 이스탄불에서는, 어렵게 다시 찾은 곳이어서 그랬는지, 아무래도 예전에 그곳에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좋았던 추억이 주로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너무나도 행복했던 기억들로 인해, 저는 그곳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마치 3년 6개월 이전의 주재(駐在) 생활로 다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몇 번씩이나 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살았던 그 집에 다시 가보니 밀려들던 예전의 기억에!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또 몇 번씩이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렴, "가족"이 있음에 힘든 일상을 버틸 수 있는 것이고 또 "가족"이 있음에 "가족" 여행이 즐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가족"여행을 가면 (같잖은 이유로) 구성원들 간에 거의 매번 싸우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싸움이 여행의 중반 이후가 아닌 여행의 초반에 생겨서, 그리고 그 원인도 감정을 마구 담아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인 스트레스 탓이어서 그 갈등을 비교적 빨리 봉합(縫合)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 기간 동안, 큰 문제 없이! 그리고 서로 간에 큰 불만 없이 여행을 마쳤다는 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 같았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비록 타국(他國)이지만 "나의 동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그 동네엔 한여름임에도 뭔가 포근한 기류(氣流)가 흘렀고, 길가에 핀 한여름의 예쁜 꽃들도 우리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는, 우리가 살던 집과 그 동네를, 또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시 방문했다는 거였는데요. 특히, 오랜만에 다시 만난, 정(情)이 많던 경비 아저씨께서 우리들의 출입을 흔쾌히 허가해 주셔서, 우리가 살았던 그 집 문 앞까지 가볼 수 있었던 것, 또 꽤 오랜 시간 동안 단지(Site) 주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정말 좋았습니다. 게다가 학교 또한, 학기 직전이었지만 서머스쿨(Summer School)이 한창인 때여서,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에 다시 들어가 볼 수 있었다는 것도 아이들에겐 정말 소중했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여행(旅行)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휴가를 아주 전투적으로 임했지만! 막상 제가 살았던 그곳에 다시 가니... 여행보다는 재회(再會)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지중해 휴양지 도시에서의 리프레시도, 또 이스탄불 유명 맛집에서의 훌륭한 음식도 아닌, 그런 소소했던 일상과의 재회가 가장 마음이 동요하면서 또 가슴이 뭉클했던,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집 앞의 중대형 마트에서 다시 만난, 익숙했던 먹거리들은 뭔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오랜만에 해가 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니, 그 느낌은 뭐랄까... 어떤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또 어떤 사진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때 제 눈앞엔, 그리고 제 머리 위엔 하늘과 노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그 아름다움에 취하면서 옛 추억에 잠긴 아이들은 다음 일정을 거부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 계속 있겠다고 해서, 잠시 저를 난처하게 하기도 했네요.


음... 주재생활 2년 차 초봄이었나... 연말에 한국으로 본국휴가를 다녀온 지 3개월 정도 흘렀을 때였는데, 그때 만(滿)으로 6세였던 둘째 아이가 책을 읽다 엄마에게, "엄마, 향수병(鄕愁病)이 뭐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물음에 아이 엄마는 "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같은 거야."라고 답을 했는데요. 그러자 아이가 다시 물었죠. "그리워하는 게 뭐야?" 아마 그때 아이 엄마는 "응, 그건 누군가를 몹시 사랑하여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라고 답을 했을 겁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스스로 결론을 내리더군요. "엄마, 나 향수병에 걸린 것 같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면서요. 그때 저는 그 대화를 거실에서 살짝 엿들었는데요. 사실, 그때 저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현지인 없이 혼자 일하는, 독박 주재원(駐在員)이었던 터라 몸도 마음도 모두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결정적으로 몹시 외로웠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당시 나름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던, 해외법인의 대표(代表) 주재원으로서, 그리고 한창 해외살이 중이었던 한 집안의 가장(家長)으로서 저는 그 마음을 차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모두가 역(逆) 향수병(鄕愁病)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지중해성 온화한 기후의 여름 날씨(여행 당시 이스탄불의 최고기온은 섭씨 27도였고 최저기온은 섭씨 22도였습니다. 돌아다니기 가장 좋은 날씨였지요.), 그리고 지금 다시 떠올리면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질 것 같은 그리운 음식들! 매일 섭렵했던 카이막(Kaymak)과 소나무꿀, 그리고 산처럼 서빙되는 빵. 거기에 각종 케밥(Kebap)과 양고기, 결정적으로 지중해의 올리브 오일이 곁들여진 신선한 샐러드와 값싼 과일류, 그리고 에페스(Efes) 맥주와 홍합밥(Midiye Dolma)과 감자튀김까지. 아, 또 견과류와 로쿰(Lokum) 그리고 달달한 퀴네페(Künefe)와 쫀득한 돈두르마(Dondurma) 같은 디저트류도 빼놓을 수 없지요. 아울러, 어디에서나 맡을 수 있는 그 나라 특유의 향(香)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나라 특유의 색(色). 더불어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 그리고 기분 좋게 상큼한 풍경까지. 언제 어디를 향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다 작품(作品)이 되던 그 사진들! 이런 것들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역(逆) 향수병을 얻어! 일상을 이어갈 서울에 돌아와서도 적응이 쉽게 되지 않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에 지쳐 정신없이 잠에 빠지는데, 이번 여행과 재회는 만족감이 높아서였는지, 아니면 뭔가 계속 아쉬운 느낌이 있어서였는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시간에도 가족 모두가 거의 깬 상태로 인천국제공항까지 온 것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얻은, 너무 좋았던 여행이라서 그랬을까요. 비행 내내 여행의 아쉬움에 "다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새겨지던, 그런 귀국길이었습니다. 특히, 막상 예전에 거주했을 때에는 특유의 잡내 때문에 아이들이 잘 먹지 못했던 양고기를 이번 방문 때에는 아이들이 무척이나 즐기면서 먹었고요. 게다가, 외국인에게는 난도(難度)가 제법 높은 현지 케밥(Kebap)들까지도 아이들이 거뜬히 비워내는 모습을 보니, 이젠 아이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이번에 굉장히 놀라웠던 건... 옛 거주지에서 가까운 곳에 아이들과 아내만 알고 방문했던 장소가 있었다는 겁니다. 저와 가족이 현지에서 함께했던 시간이 무려 3년 6개월이나 됐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당시에 거주했던 집 근처의 큰 놀이터는 아이들에겐 소중한 추억의 장소여서 이번에도 아이들이 두 번이나 방문을 했었는데, 다소 충격적이게도 저는 그곳을 이번에 처음 가봤습니다. 아마 주로 평일 오후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직후에 그 놀이터를 갔었기에 제가 못 가봤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저희 가족들이 주말에도 저에게 굳이 말하지 않고 그냥 다른 가족들과 같이 그곳에 갔었던 적이 많았다고 하네요. 저는 그때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았었는지... 주말에도 집에서 노트북을 자주 켜고 일을 했었기에, 그래서 이번에 저는 그런 지난 일에 대해 반성도 했습니다. 저 때문에 가족들은 아무 연고(緣故)도 없는 외국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저 없이도 가족들이 현지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잘 지냈었다는 건... 한편으론 정말 잘된 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척이나 미안한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이번에 제가 이스탄불과 재회(再會)한 추억을 이 글에서 더 언급했다가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 됐건 이스탄불은 저 같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魔力)이 있는 도시임에는 분명한데요. 그런데 제가 이제 다시 일상(日常)으로 돌아가는 길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을 정도로 아직까지도 저는 이 도시의 마력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네요. 그렇게 제가 이스탄불과 서울 사이에서 역(逆) 향수병(鄕愁病)을 앓는 사이! 참 아름(美)다운 시간들, 그리고 참 여름(夏)다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진 1)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오르타쿄이(Ortaköy)에 위치한 옛 거주지

매년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맘껏 즐겼던,

야외 수영장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놀이터 옆 공터에 핀 여름꽃!




(사진 3) 옛 동네, 오르타쿄이(Ortaköy) 길가에 핀,

한여름의 예쁜 꽃들!




(사진 4) 터키(Türkiye)의 대표 차! 차이(Çay)




(사진 5) 터키(Türkiye)의 대표 케밥!

이스켄데르 케밥(Iskender Kebap)




(사진 6) 터키(Türkiye)의 대표 음식!

쿄프테(Köfte)와 샐러드(Salata),

그리고 터키식(式) 빵(Ekmek)




(사진 7) 터키(Türkiye)의 대표 디저트!

퀴네페(Künefe)와 아이스크림(Dondurma)




(사진 8) 터키(Türkiye)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약식(略式) 카흐발트(Kahvalt)와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 : 아이란(Ayran)과 Fuse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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