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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Jan 07. 2021

육아 휴직하던 날

너무나 소망했는데 두려워서 눈물이 났다

첫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생계를 위해서 일을 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상황이 나아지길, 그래서 내가 오롯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육아휴직을 간절히 소망했다.  남편은 작은 가게를 했었는데 장사도 잘 안되고 일은 고돼서 장사를 접고 취업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시험에 붙길 바라고 기다렸다. 남편은 한 번의 실패 후에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때가 녀석이 7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내 아이를 녀석이라고 칭하길 좋아한다.)


대부분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부모들은 새로운 환경에 아이가 잘 적응할지 걱정을 하기 마련이다. 그즈음에 나도 많이 불안했고  걱정으로 불면에 시달렸다. 녀석은 나이에 비해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장애가 있음을 알고 계속 치료를 이어왔지만 녀석의 나이와 언어 연령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일을 쉬고 녀석의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남편의 합격소식을 듣고 바로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 돈은 나중에 다시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발달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를 놓치기 전에 엄마로서 더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녀석과 함께 그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2008년 3월 3일 그렇게 소망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맞게 되었다.  


사무실일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마치고 1년 간의 휴직을 시작하는 그날 저녁,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두려움과 정체 모를 막막함에 당황했다. 그렇게 바랬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겁이 났다. '아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무엇을 할 수 있지, 아이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나를 짓눌렀다. 눈물이 넘쳐났다. 나는 내가 이렇게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낮에 일을 마무리하면서도 기대에 차있었고 아니 기대에 차있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이렇게 큰 두려움과 걱정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아이들의 저녁을 먹이고 재우고 혼자 거실에 앉았을 때 갑자기 그 두려움과 막막함이 나를 덮쳤다. '이제 어쩌지?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 조차도 알 수 없었던 두려움이 그렇게 찾아왔다. 그래 오늘만 울자. 오늘만. 내일부터 이사할 집도 알아보고 새 치료기관에 접수도 하고 힘내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고 믿자고 스스로를 설득하였다.  긴 눈물 끝에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후회 없도록 열심히 아이랑 지내보자고 다짐했었다.


긴 밤을 보내고 오롯한 우리의 시간이 시작되는 아침이 밝았다. 살던 집을 팔고 치료기관이 더 많은 도시로 이사를 결정해서 집을 구하러 다녔다. 마티즈에 녀석들을 태우고(나에게는 아이가 둘이다.) 집을 보러 다녔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생기니 돈이 없었다. 휴직으로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생기니 수입이 줄어 치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복지관 프로그램을 찾았다. 그리고 이사한 도시에 치료시설은 많은데 모두 대기자가 많아서 당장 언어치료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치료시설마다 대기 접수를 하고 바우처 신청을 해서 미술치료를 시작하였다. 나는 치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아동 발달학, 뇌과학과 같은 책들을 빌려와서 읽었다. 내가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책 속에서 찾았다.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마법처럼 "매직트리"라는 뇌에 관련한 책을  만났고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실행했다. 그 희망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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