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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Dec 25. 2021

자폐인이 인문고에서 살아남기 1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다


2021. 12. 18. 10:00

녀석의 수시 응시 결과가 나왔다. 녀석이 사학과에 합격했다. 오 마이 갓!!


녀석이 대학을 갔으면 하고 바라게 된 건 녀석이 중학교 3학년이었던 2017년 11월쯤이었다.


녀석은 초등학교까지 그럭저럭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학교 앞 공부방 선생님께서 녀석을 맡아 주셔서 였던 것 같다. 여러 명이 함께 수업을 듣는 환경에서는 집중이 안되었기 때문에 학원은 효과가 없었고 그렇다고 과외를 시켜줄 여력은 안되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는 내가 공부를 돕기로 했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시작하였다. 녀석은 집중을 하지 못하였고, 나는 자꾸 녀석에게 화를 내었다. 진도를 나갈 수가 없었다. 억지로 억지로 공부를 시켜서 본 중간고사 성적은 처참했다. 나와 함께하는 공부가 녀석에게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기말고사는 공부를 전혀 시키지 않고 치르게 했다. 어라~~ 중간고사 때 성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성적이었다.


공부를 시키면서 나와 녀석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싫었고, 일다니면서 공부를 시키는 것도 버거웠다.

게다가 녀석은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 녀석에게는 한창 짓궂은 남학생들이 가득한 교실의 소음이 너무 힘들었고, 그런 남학생들을 잡느라 화내시는 선생님도 너무 무서웠다. 밤마다 다음 날 학교 갈 걱정에 녀석은 잠에 들지 못하였다. '안 그래도 학교생활이 힘든데 공부는 해서 뭐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어려워 하는 과목 수업(특히 수학)은 특수학급에서 지내도록 하고, 바우처를 신청해서 도우미 선생님과 산책을 하게 했다. 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면 녀석은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생일 선물을 뭘 받고 싶은지 물어보면 항상 초콜릿과 역사책을 사달라고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사건을 다 외우고 있었고, 수호지, 일본사 등 역사책을 주로 읽었다. 한 번은 특수학급 선생님이 전화를 주셔서 역사 선생님이 녀석이 역사 신동인 것 같다고 하셨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역사시간에 수준 높은 질문을 한다는 말도 들렸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그날도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녀석은 역사책을 읽고 있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렇게 매일 읽는데 녀석의 머릿속에 역사 지식이 남아있는 걸까, 역사에는 집중이 되는 걸까? 그래서 제안했다. 한국사 능력시험을 응시해 보자고. 녀석은  공부할때 힘들었던 기억 때문인지 싫다고 했다. 시험을 대비한 공부를 하지 않고 평소 실력으로 시험을 보자고 했다. 엄마는 너의 역사 실력이 궁금한데 너는 안 그렇냐고.... 녀석이 좋다고 하여 한국사 능력시험 5ㆍ6급 시험을 접수하였다.

 * 당시 한국사 능력시험은  1ㆍ2급,  3ㆍ4급,  5ㆍ6급으로 3단계 시험이 있었고, 각 시험에서 점수가 60점 이상 2ㆍ4ㆍ6급, 70점 이상이면 1ㆍ3ㆍ5급에 합격이었다.


녀석은 한국사 능력시험 5ㆍ6급 시험에  92점으로 5급에, 3ㆍ4급 시험은 88점으로 3급에, 1ㆍ2급 시험은 68점으로 2급에 합격하였다. 시험문제를 살펴보니 수준이 상당해서 녀석의 역사 지식에 놀랐다. 그리고 녀석의 실력과 역사사랑을 썩히는 게 아까웠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엄마, 나 대학에 가고 싶어요!

어느 밤, 녀석과 자려고 나란히 누워서 말을 꺼냈다.

나 : 대학에 가면 가 좋아하는 역사공부를 더 깊게 해 볼 수 있는데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

     (사실 녀석이 응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 침묵이 꽤 흐른 후에 -

녀석 : 정말 대학에 가면 역사를 더 깊게 배울 수 있어?

나 : 응, 장애가 있는 친구들끼리만 경쟁해서 대학에 가는 방법도 있어.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고, 쉽진 않을 거야.  네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하면 엄마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도울 거야.

녀석 :.......


며칠 후에 자려고 누었을 때 녀석이 "엄마 나 대학에 고 싶어"라고 했다. 욕심도 없고 잘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인 적도 없는 아이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녀석이 역사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리라 결심했다.

 

당시 녀석이 학교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고등학교는 가장 조용할 것 같은 학교인 인문계고등학교를 선택한 상태였다. 인문고에서 내신을 잘 받기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더 일찍 녀석의 역사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알았다면 특성화고등학교를 진학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되었다.

* 장애학생은 주소지가 아닌 등학교에 갈 수도 있고, 시험을 보지 않고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


중학교 내내 공부를 시키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과정 공부가 될지, 10분도 집중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중학교 시절 모습이 생각나서 걱정이 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녀석이 결심을 했다는 거였다.


그렇게 녀석과 나는 치열한 고등학교 3년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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