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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인 Oct 30. 2022

자폐인이 인문고에서 살아남기 3

국어공부는 너무 어려워요

녀석은 소위 말하는 기초지식이 없었다.

시를 공부하게 되면 중학교 때 배운 시에 대한 기초적 지식들, 운율이라든지 정형시, 자유시라든지 은유법, 직유법 이라든지... 쌓여있는 기초지식이 없었다.


교과서에 실려있는 시를 공부하기 전에 기초개념부터 학습한 다음 학교 진도 공부를 해야 했다. 기초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 어려운 점은 자폐적 특징으로 추상적 개념과 감정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는 점이다.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공감하는 것,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이 너무 어렵다.




시어들이 상징하는 것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녀석이 시와 관련해서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 유형은  시를 읽고 시의 전체적 느낌을 알아내는 것이다. 교훈적, 애상적...... 적, 적, 적은 너무 많은데 녀석에게 시의 분위기를 구분하는 것도, 느낌을 나타내는 단어를 구분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영역이다.

그런 문제는 잘 찍어 맞추면 좋고 틀리면 할 수 없고.....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함께 공부를 하면서 터득한 방법이 있다.  이미지에 강하기 때문에 시를 상황으로 풀어서 소설처럼 말해주면 작가의 마음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시 속의 화자가 된 것 처럼 장면들을 떠올리도록 시를 소설로 풀어보는 것이다.


소설은 이야기가 시보다는 구체적이라 그런지 공부하기가 수월했다.


녀석이 또 어려워하는 과목은 윤리, 정치 , 법 같은 과목들이다. 이런 과목들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 개념들이 대부분이다. 설명하기도 어렵다. 개념을 이해하더라도 문제를 푸는 건 또 다른 차원이다. 정말 고등학교 수준의 문제들은 어렵다.




자폐성 장애가 있으면 가상으로 상상을 해보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익히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역할놀이, 소꿉놀이가 잘 되지 않는다. 녀석도 어릴때 혼자만 자동차 바퀴를 돌리면서 돌아가는 바퀴를 뚫어져라 보는 그런 식의 놀이를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었다.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불안함을 이기려고 매일 매일 책을 읽어주었던 것이 녀석이 가진 자폐성향으로 가능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조금씩 발달해서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면 영화의 장면들로 본 형태로 고착이 되지만, 책으로 같은 장면을 읽어주면 들은 책의 내용들을 조합해서 머리 속에서 나만의 장면으로 상상하게 된다고 한다. 반복적,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주고 녹음을 들려주니 어느날 동생과 역할놀이를 하고 있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새 동생과 함께 전래동화나 명작동화의 역할을 맡아 대사를 돌아가며 말하기를 즐기게 되었다.

 

책 읽어주기를 통해 한글을 익힌 후에는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아니여도 녀석은 책을 읽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주로 역사서를 많이 좋아해서 삼국지, 수호지 등을 읽었는데 녀석은 어휘량과 이해력이 많이 성장해 있었다.

 

사회과목에서 나오는 새로운 단어를 어려워 하지만,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데는 문제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꾸준한 책 읽기 시간이 없었다면 역사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지도, 대학을 가겠다는 마음을 가지지도, 인문고에서 나름의 공부를 해서 수시로 대학 진학 준비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한 달 전부터 매일 두 과목, 적어도 과목당 한 시간 공부를 목표로 삼았다. 집중시간이 짧기 때문에 벼락치기는 있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쉽게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는데 이해하는 모습이 보이면 너무 기뻤다. 녀석과 함께 공부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녀석과 나는 함께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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