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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상절리 Apr 25. 2024

회사 그만두고 젤라또 만들겠습니다

이 일을 택한 이유  

'저 퇴사합니다'

'어디로 가요?'

.

.


잘 다니던 회사를 그저께 그만뒀다. 어디로 가냐면, 내가 만들어 갈 젤라또 가게다. IT업계 마케터에서 젤라또 만드는 사람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운 전개에 그 이유를 묻는 분들이 참 많았다. 젤라또라는 답을 찾기까지 그간의 여정을 적어본다.


1. 나는 어떤 일을 해야할까?

: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요리조리 시도해보다.

좋은 회사를 다녔지만 일을 할수록 왠지 모를 (나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이 일을 오래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이 맞을까?'


마케팅이라는 업무는 꽤 맞았지만, 온전히 몰입하며 좋아하는 걸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사실 이직도 시도해보고 대학원도 준비했다. 최대한 다양한 상황에 나를 던져보며 내가 어떤걸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전형 결과는 실패, 하지만 그럼에도 느낀 건 역시 해봐야지 안다는 것.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 것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 가고 싶은 회사도, 업계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일도 더는 없었다. 다시 시작된 고민. '그럼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지?'



2. 왜 젤라또인가?

: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기 때문.


대학원에 떨어지고 나서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멜버른에서 젤라또를 한 스푼 퍼먹는데 이게 웬걸. 너무 맛있잖아.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토록 행복할수가. '나 젤라또 진짜 좋아하는구나.'


문득 홀로 세계여행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늘 젤라또 가게에 들렀다. 힘들 때나 기쁠 때마다 어김없이 한 웅큼 베어 물었다. 잠시나마긴 했지만 그 순간은 그렇게 위로받을 수가 없다. 힘들 때는 10개 넘게 먹기도 했다. (다녀오고 나서 한 8kg 정도 찐듯)


그전까지 스트레스가 극심했어도, 젤라또를 먹는 순간엔 눈 녹듯이 사라졌다. 덕분에 얻은 충만한 행복을 동력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젤라또로 잠시나마 위안과 행복을 누렸기에, 업으로도 삼고 싶었다.



2-1. 좋아하는 거랑 일로 하는건 다르지 않나?

애정하는 중니어 커뮤니티 LBCC(Lazy Bird Coffee Club)에서 퇴사 계획 모임이 열려 간 적이 있다. 그 때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는 좋아하는 걸 막상 일로 하는 건 다르다는 점이었다. 여행하는 행위와 여행작가를 업으로 삼는게 다른 것처럼.


망치로 퉁 맞은 느낌이었다. ‘그래. 만드는 걸 해보고, 이게 진짜 맞는 일인지 확인해보자.’ 그 이후로 젤라또 수업을 여러 군데 찾아 들었다.


어랏 해보니 재밌잖아. 당 종류에 따라 텍스쳐가 달라지고, 재료와 제조과정에 따라서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원재료의 맛을 극대화시킬 수 있고, 전혀 다른 재료를 조합해 색다른 맛을 낼 수 있기도 하고. (ex. 고추 + 초코) 해볼게 무궁무진해 기대가 됐다.


가게를 차린다면 고려할게 참 많다. 맛, 식품학에 대한 공부는 기본. 상권 분석과 마진 계산까지. 신경쓸 거 투성이다. 하지만 이또한 즐겁다. 두려움 30 설렘 70이지만, 스스로가 싱그러이 살아있는게 느껴져 행복하다.



3. 그동안 했던 일 중에 뭘 좋아했을까?

: MD했을때 제품을 기획해서 출시까지 하는 과정이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 내가 해본 일 중에서(할 수 있는 능력치에서) 흥미를 느끼는 걸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일을 할 때 유독 재밌던(가슴 뛰고 더 잘하고 싶은)일은 잊지 않기 위해 매번 기록해뒀는데 그게 큰 단서가 됐다.


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오롯이 제품과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가장 재밌더라. 돌이켜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하나 일궈내는 제로투원의 경험을 좋아했다.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젤라또를 찾았고.



4. 왜 지금 시도하나?

 사실 예전부터 젤라또 만드는 일을 40대쯤 할거라고 다짐했다. 다만 그걸 입밖으로 꺼내기엔 괜히 부끄러웠달까. 지금은 돈과 경험이 모두 없으니 스스로 어려울거라 핑계댔다.


그런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거고 아직 젊은 나이니까 뭐든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의 돈이더라도 작게나마 시작하며, 개선해가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IT업계에 몸담그는 동안 체화한 태도이기도 하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큰 계획이 있진 않았다. 다만 삶의 큰 방향성은 있었다. 아래와 같은 지향점을 갖고, 뭐든 끌리는 걸 시도했던듯


작은 행복이 쌓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주는 사람

자유자재로 뭐든 만들어가는 창작자


하고 싶은대로 일을 벌리며 살다 보면, 결국엔 원하는 방향으로 된다는 걸 알기에. 그리고 믿기에. 이번에도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


5. 언제 열건데?

내년 봄이다. 젤라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서 맛의 차원을 키우고, 업계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갈 예정. 앞으로 엄청 부딪치며, 미숙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마주하겠지.


그럼에도 가장 나답게 어떻게든 극복해 나아갈거란걸 믿는다. 아자아자 화이텡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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