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 유입 확대와 퍼널 개선
얼마 전 퇴근 시간즈음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다가 달라진 병원 풍경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30명이 넘는 대기 인원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동네에 소아과가 없어지면서 이비인후과로 진료를 보러 온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그간 뉴스를 통해서 소아과 전문의 감소, 소아과 오픈런 등의 뉴스를 접했지만, 병원에서 대기 중인 많은 아이들을 보고 나서야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응급실 뺑뺑이, 응급실 병상 부족, 의료 사고 등의 뉴스를 접하면서 막연히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부족한 것 같다는 심상이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 정부의 주장은 AARRR에서의 유입 확대에 가깝다.)
그러나, 의사협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의사협회에서는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의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필수 의료의 수가가 낮은 탓에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영리 목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던가, 2차 병원의 응급실은 텅텅 비어있는 반면 상급 병원의 응급실 병상을 경증 환자가 차지하면서 중증 응급 환자의 병상이 확보되지 않는다던가 등의 이야기이다.
즉, 의사협회의 주장은 절대적인 의사 수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의사 배분이 문제이므로 시스템부터 개선하자는 것이다.
(* 의사협회의 주장은 AARRR 퍼널 그 자체의 개선에 가깝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으니 의사협회의 주장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다만, 그 주장을 펼치는 방식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변화가 있으려면 그 변화에 대한 공감과 합의가 필요한데 그러한 과정이 없다.
상급병원에서 수술을 해 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진료 예약 후 짧으면 1~2주에서 길면 몇 개월을 기다려서 의사를 만나면 검사를 위해 다시 짧으면 1~2주에서 길면 몇 개월을 기다린다.
그렇게 해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수술 일정을 잡는 데에도 또다시 짧으면 1~2주에서 길면 몇 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어렵게 예약한 수술과 진료를 일방적으로 취소한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차라리 예약된 수술과 진료까지는 진행하고 파업을 한다면, 이후 수술과 예약이 필요하다면 여전히 수술과 진료를 진행하는 의사를 찾거나, 해외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등 선택지가 있을 텐데 말이다.
이렇다 보니 의사협회의 주장이 납득 가능함에도 국민들은 불신과 의사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부는 잘 소통하고 있느냐를 보면 그 또한 아니다.
양측 다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고 합의를 통해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하는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유입을 붓기 전에 퍼널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의료 시스템의 개선과 유입이 적절한 속도로 함께 한다면 우리의 건강과 생명(그리고 건강보험료)이 덜 위협받는 미래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빨리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