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나오는 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메뉴얼로 따지고 보면 그 언니는 똑부러지는 편에 속했다. 마치 <집 구할 때, 호구 안 당하는 방법 10가지> 같은 글을 읽고 또 읽어서 달달 외운 사람 같았다. 문제는 나 또한 집을 구해본 사람으로서 그런 글은 닳도록 읽었다는 것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이사 가시는 건지 여쭤 봐도 될까요?” 언니는 내게 아주 정중하게 물었다. 이런 개인적인 것을 물어보는 것이 이상할 거라는 듯이. 그러나 나는 이미 준비한 답이 있었다.
곧 학교를 졸업해서 이쪽 살 필요가 없어서요.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요.
아, 더 넓은 집으로요. 그렇구나.
그녀의 엉뚱한 대답에도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어쨌든 이 집의 하자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 단 하나의 거짓말. 준비된 거짓말. 그게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거짓말을 했다. 방 보러 다닐 때 꿀팁을 작성한 최초의 사람은 아주 순수한 사람일 게 분명하다. 인간은 거짓말을 잘한다. 필요에 의해서라면 더욱. 순수한 언니는 메뉴얼과 나를 믿었고, 집을 보러 온 그날 바로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했다. 나는 그날 저녁에도 집에서 커다란 바퀴벌레를 잡았다.
이사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가 이해를 못했다. 그 가격에 그 정도 넓이, 그 정도 위치, 그 정도 채광의 집은 서울에서 귀했다. 8평이 조금 넘고, 방 가운데에 중문이 있는 분리형 원룸이라 거실과 방을 나눌 수 있었다. 창문은 총 3개에 앞이 건물로 가려진 것 없이 뻥 뚫려 낮에는 햇빛이 환하게 들고, 밤에는 남산타워가 빛났다. 나는 누구보다 그 집을 사랑했다. 4평짜리 반지하에서 탈출해 처음 그 집에 들어왔던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문제는 여름이었다. 벌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절대 과장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장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대충 봐도 8센치는 넘는 듯한 돈벌레가 시작이었다. 생에 태어나서 가장 큰 비명을 질렀다. 나도 내가 그런 비명을 지를 수 있는지 몰랐다. 벌벌 떨면서 그 놈을 때려 잡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커다란 바퀴벌레의 사체 또한 찾을 수 있다. 아마 돈벌레가 잡아 먹던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나는 온갖 벌레 약을 사서 집에 뿌렸다. 모든 창문 틈을 다 막았다. 그래도 벌레는 계속 나왔다. 죄다 컸다. 검색을 해 보니 그렇게 큰 벌레들은 절대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최소 1-2년은 지나야 그 정도 크기가 되므로 무조건 밖에서 살다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얼마 후 나는 세탁기 뒤에서 주먹만한 구멍을 발견했다. 대충 그 위에 벽지를 발랐는데, 다 떼어져서 팔랑거리고 있었다. 여긴가보다. 꽉꽉 막았다. 하지만 벌레는 또 나왔다. 다른 구멍을 또 찾았다. 막았다. 그걸 몇 번을 반복했을까. 아무리 막아도 벌레와 마주치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이 집은 하자 투성이였다. 내가 볼 수 없는 어딘가에 아마 커다란 구멍이 여러 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해 나는 휴학을 하고 교환학생을 위한 토플 공부를 했다가 두 달만에 그만둔 상태였다. 점수도 잘 안 오를 뿐더러 교환학생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중고로 샀던 두꺼운 토플 문제집이 나의 주무기가 됐다. 벌레가 나올 때마다 이 깍 깨물고 벽에다 문제집을 던졌다. 커다란 벌레가 떨어지면 고무장갑을 끼고 주웠다. 문제집에 남은 자국을 휴지로 닦아내며 조금 울었던 적도 있다. 이런 용도로 쓰려고 산 게 아니었는데. 벌레나 잡으려고 휴학한 것은 아니었는데. 부동산 중개인은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6 년을 살다가 결혼해서 나갔다고 했다. 그 사람이 대체 6 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도 나처럼 놀랐을지, 그러다 가끔 울었을지, 대체 언제쯤 적응했을지. 나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됐다. 두 번째 여름이 찾아왔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집에 있는 게 편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벌레가 나올지 모르니 계속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남의 집에서 자는 날이 늘었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현관문을 여는 게 무서웠다. 결국 집을 버리기로 했다. 이 집에서는 어떻게든 잘 살고 싶었는데, 이제 좀 집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도 까보니 집 같지 않은 집이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집을 내놓고 며칠 뒤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5시에 꼭 집을 보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이 그 시간에 일정이 안 돼서 혹시 괜찮으면 내가 대신 집을 보여줄 수 있냐는 거였다. 나와 같은 젊은 여자니까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나는 중개사와 집주인 몰래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으므로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전화를 끊고, 곧이어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오늘 몇 시 방문 예정이며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예의 있고 똑부러지는 사람 같았다. 나는 만약 그 사람이 벌레가 나오냐고 물으면 나온다고 할지 말지, 이사를 왜 가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지 고민했다.
그분은 이것저것 확인했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어 봤다. 창문도 열어봤다. 가구 옵션을 확인했고, 이웃에 대해 물었다. 이사 가는 이유 빼고 모든 것에 솔직하게 답했다. 그녀는 치안에 대해서도 물었다. “아래 편의점은 밤에 가지 마시고요, 옆에 마트 이용하세요. 그래도 2년 동안 위협 받은 적은 없었어요.” 그러자 그분은 한숨을 쉬며 답했다. “다행이네요. 제가 시비 털리는 거에 진절머리가 나서요.” 남일 같지 않았다.
그녀는 방에 붙은 포스터들을 보더니 문득 물었다. 혹시 영화 공부하세요? 그렇다고 하자 자기도 영화과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놀랐다. 언니는 졸업 후에 영화를 계속 할 생각이냐는 질문까지 했다. 이렇게까지 접점이 있다니. 왠지 더 미안해졌다. 골목길에서 가해지던 위협과 싸우던 언니는 이제 벌레와 싸우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볼 사이는 아니니까. 나를 잠깐 원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다. 언니는 그날 바로 부동산에 가서 계약했다.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급하게 집을 빼는 거라 계약이 한 번에 된 것은 내게도 좋은 일이었다.
이제 볼 일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언니는 일주일 뒤 재방문 했다. 가구를 사기 위해 미리 집 치수를 재고 싶다고 했다. 언니는 약속 시간 30분 전, 커피를 마시냐고 물어보곤 커피를 한 잔 사 왔다. 자신의 것은 사오지 않은 게 부담스러웠다. 언니는 들떠 보였다. 줄자로 이곳저곳을 재고 노트에 도면을 그렸다. 내 최선은 줄자 반대쪽을 잡아주는 것 정도였다. 주변 카페나 맛집도 물어봤다.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아, 어떻게 꾸미지? 죄송해요. 좀만 고민할게요.' 기대하는 것을 보니 속이 불편해졌다. 언니가 얼른 나갔으면 했다. 내가 커피를 거의 다 마실 때쯤에서야 그녀는 집을 떠났다. 고양이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녕. 고양이랑 이런 집에 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진짜 사람 사는 집 같아요.' 언니가 가고 나는 한참 동안 집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그녀를 거의 잊어갈 때쯤이었다. 나는 좁지만 비교적 깔끔한 집으로 이사했다. 비슷한 가격 중 벽에 구멍이 없는 집은 그 집뿐이었다. 그리고 이사한 다음날, 나는 택배 하나를 이전 집으로 시켜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겨울이라 아직 벌레는 못 봤겠지만, 이사 청소를 하며 여기저기 남은 흔적을 봤을지도 몰랐다. 언니는 여전히 친절했다. 집 앞에 그대로 둬 달라고 했는데 그날 하필 비가 왔다. 언니는 택배 상자가 조금 젖은 것 같더라고, 찢어질 수 있으니 자기가 비닐백을 뒀으니 거기에 담아 가라고 했다. 그날 저녁 나는 좀도둑 마냥 조심스레 계단을 올라 택배를 챙겼다. 다행히 박스가 말라서 봉투를 빌리지 않아도 됐다. 다시 내려가려는 그때, 집 현관에 불이 켜졌다. 아주 따뜻한 노란 빛이었다. 그 집 현관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이사 왔을 때부터 현관등은 켜지지 않았는데 나는 그 상태로 2년간 살았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니는 이사 하루만에 그 전구를 갈아 끼웠나 보다. 부지런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열린 창문 틈으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잘 살 것 같았다.
나도 2년 전 이맘때에는 저 집에서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씁쓸했다. 쭈글쭈글해진 택배 상자를 안고 작은 원룸으로 돌아왔다. 기본적인 짐 정리만 되어 있는 상태였다. 원래라면 새로운 인테리어를 할 생각에 잔뜩 신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대가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그 어느 집에서도 잘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어느 집이든 그만의 하자가 있을 것이고, 그 하자 때문에 또 울게 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집을 꾸미고 싶지도 않았다.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이 여기 파티션을 놓아라, 커튼을 달아라, 의견을 제시할 때도 나는 멍하게 있었다. 내 집이 아니었다. 내 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언니에게도 찾아가 말하고 싶었다. 기대하지 말라고. 집 너무 잘 꾸미지 말라고. 이 집 벌레 소굴이라고. 언니가 아무리 열심히 쓸고 닦고 꾸밀수록 실망하게 될 거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정말 다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렇게 여름이 왔다. 이사 온 집에서는 아직 한 번도 바퀴벌레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현관문을 열 때마다 벌레와 마주치는 상상을 한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 집에서는 벌레가 여러 번 나왔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언니가 자꾸 생각이 난다. 걱정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니가 쉽게 포기하지 않았길 바란다. 집주인에게 전화해 벽에 있는 구멍들을 고쳤거나 업체를 불렀을 수도 있다. 나보다 순수했지만 나보다 똑부러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쉽게 집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나처럼 너무 많이 울진 않길 바란다.
나는 여름을 맞아 집을 조금 꾸몄다. 더이상 학교를 가지 않게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불을 바꾸고 벽에 포스터들을 붙였다. 문구 정리함과 책꽂이를 사서 책상을 꾸몄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침대에 누워서 벽을 보면 종종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집이 작아지니 청소하는 게 편해졌다. 구석구석 쓸고 닦은 후, 아침을 차려 먹는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했으면서, 이 집도 결국 사랑하게 된다. 아끼게 된다. 물론 알고 있다. 이 집 또한 나를 절망하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집을 안 꾸미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시끄러운 옆집도, 귀찮게 구는 집주인도, 창문을 열면 보이는 앞집도, 나쁘지 않다. 절망해도 다시 사랑할 수 있구나. 내 안의 사랑이 꽤나 무한하구나. 사랑이란 무한히 생성될 수 있는 마음이구나.
최근 친한 동생인 영은이가 일주일 간 우리 집에서 머물다 갔다. 첫날 아침, 영은이는 일어나자마자 말했다.
언니, 이 집 터가 좋은 것 같아.
왜?
잠이 잘 와.
그래?
응. 잘 구했어. 이전 집보다 좋은 것 같아.
더 좁은데도?
응. 그냥 느낌이 그래. 좋아.
영은이가 떠난 날, 혼자 잠에 들며 저 말을 계속 생각했다. 기분이 좋았다. 진짜 좋은 집인가? 잠이 잘 온다잖아. 좋은 집인가 보다. 고맙다. 괜히 벽에 손바닥을 댔다. 시원했다. 고맙네. 냉장고가 작게 웅웅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