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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Feb 27. 2021

엄마의 그림일기-전시를 "보다"

"제발 천천히 자라란 말이야~~~"라고 타박을 했다.

돌아오는 답은 "나이를 먹는데 나보고 어쩌라고~"였다. 허이쿠! 해탈한 녀석인가?


혹시 너...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시간에 대해 말을 하는 거니?

(역시 내 자식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모자란 엄마이다.)


이제 곧 학교 입학이 다가오니 마지막으로 유치원 땡땡이^^ 시키고 진짜 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갔었지. 네가 6살쯤이던가? 그때는 미술관에 케이크를 먹으러 자주 갔었어. 네가 달콤한 무언가를 먹으려고 무지하게 머리를 굴렸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그 장소가 싫다고 말을 하더라. 무섭다고... 


난 어두운 조명이 아이들에게 공포일 수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조금 당황스럽더라. 사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유아에게 그렇게 좋은 장소는 아니지. 자칫하면 아이에게 두려움만 안길 수 있는 공간이거든. 그림이 벽에 걸린 위치는 성인의 키를 기준으로 잡았단다. 그래서 너희들의 입장에서 작품들이 내려다보며 무섭게 쳐다보는 것 같은 감정을 전달한다. 또한 조명이나 고요함이 상당히 갑갑하게 느껴질 거야. 물론 어린이들을 상대로 하는 전시는 아니지. 난 네가 무섭다고 했던 그 말에 지금까지 미술관 나들이를 자제했단다. 심지어 엄마가 기획한 전시는 상당히 밝게 유지했음에도 데려가지 않았단다. 스스로 나서기 전에는 삼가려 했던 거지.


그러던 우리가 입학 전 전시 나들이를 간 거야. 먼저 온라인으로 예약하면서 이미지를 살짝 보여줬지. 두 개의 전시 중에 토리는 한가람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ㄱ의 순간>을 택했단다. 속으로 '잘했어~'를 외쳤지.

사실 나도 그 전시를 보고 싶었거든. 진짜로...


토리의 시선을 강탈한 몇몇 작품이 있었어. 분필로 낙서 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하고, 발로 지우면서 앞으로 나아간 이건용의 <ㄱ을 향한 달팽이 걸음> 그리고 강철과 돌로 이루어진 이우환의 <관계항> 그리고 태싯그룹이 제작한 <Morse ㅋung ㅋung>이 토리의 관심을 끌었단다. 기특하게도 정말 진지하게 작품을 보더라. 무언가를 똑 같이 그리지 않고, 토리도 잘 알고 있는 기본 도형으로 그려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던 것 같아.

이우환의 <관계항> / 태식그룹의 <Morse ㅋung ㅋung> 영상 일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을 미술관에 들이고, 분필로 낙서를 하고 지워도 훌륭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신기했나 봐. 토리가 관심을 보이는 작품에 대해 나름 쉽게 설명하려 애를 썼고, 왜 의미가 있는지 토리 시선에 맞게 이야기하려 엄청 애를 썼지. 


가만 보니 토리는 네가 지니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을 선사하는 작품에 관심을 보이더구나. 아~ 앞으로 나의 시간이 얼마나 더 당황스러워질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지. 우리 토리는 전위적인 녀석이었던 것이다.

물론 타고난 러너인 토리는 미술관에서 이동시 무지하게 달렸었다. 그 역시 네 본성인가 보다.

성장을 하면서 차분하고 지나치게 감성적이던 네가 체육소녀로 거듭나더니, 이제는 어떤 틀을 깰 것 같은 아우라를 형성하는구나. 난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아니면 그 도전정신을 살짝 낮추도록 해야 할까?

하긴 어떤 선생님의 글을 보니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 것 같더구나.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좋겠지?

토리야, 너 자신이 지닌 그 도전정신이나 틀을 벗어나려는 욕구들이 부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원한다. 오늘은 조금은 불안을 안고 사랑을 전하련다. 

그리고.. 부디.. 조금만 천천히 성장하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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