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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Feb 02. 2021

엄마의 그림일기-NO!!!

아침 7시면 이미 일어나서 혼자만의 놀이를 하던 토리가 이제는 8시에 기상한다.

몇 년 전과 비교하면 약 3시간 정도 늦어진 기상이다. 8시에 잠자리에 들던 토리는 이제 9시가 돼서야 잠이 드니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겠지. 기특하게도 혼자 책을 보고 나서야 TV를 켜는 아이...

그럼에도 난 아침밥을 너무 천천히 먹는다고 타박을 한다. 또 대화 중에 토리의 말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토리의 부족한 생각에 대해 늘 완벽함을 채워주려 이런저런 잔소리를 은근히 그리고 길게 뱉어 버린다.


토리야... 난 사실 너와의 대화를 너무 즐기는데 최근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너의 의견에 무조건 긍정하는 힘이 너무나 부족한 것 같더구나. 사실은 아빠가 토리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게 된 사실이야.

아빠는 많이는 아니지만 최대한 너와 시간을 보내려 노력한단다. 그리고 너와 함께할 때에는 마치 8살 아이처럼 대화하고 놀이를 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더구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농담으로 "우리 아들~~"이라고 놀리지만 사실은 나는 왜 친구처럼 대화하지 못하는지 반성하고 있었단다.


어젯밤에는 토리가 혼자서 방에서 자면서 새벽에 엄마 아빠 방으로 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단다.

토리도 만약에 본인이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 침대로 오면 아침에 책을 10권 읽겠다는 공약을 걸었지.

새벽에 인기척을 느꼈는데 네가 오지 않길래 처음에는 안심하고 다시 잠들려 했단다. 그런데 잠시 후 또 무슨 소리가 들리길래 꽂았던 귀마개를 뽑고 일어나 나가 보았단다. 이런...

토리가 거실에 서서 잠도 깨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서서... 울고 있었다.

엄마한테 오려니 약속이 마음에 걸렸고, 다시 네 침대로 가려니 혼자 잠들기 싫었던 모양이다. 길고 무거워진 널 안고 엄마 침대로 와서 눕혔다. 금세 다시 잠든 모습을 보고 아빠와 넓게 편하게 잠들라고 난 토리 침대로 갔다.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 마!'로 끝내는 너무 많은 나의 말들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무언가를 느끼고 나도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기분 좋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난 또 "그럴 거면 밥 먹지 마"를 시작으로 이런저런 '하지 마' 시리즈를 뿜었다. 그리고 조금은 위축된 어깨로, 그럼에도 밝은 얼굴로 토리는 등원했다.


돌아오는 길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엄마가 이런 식이람?


오랜 시간 일기를 쓰지 않았던... 아니 못 썼던 이유 중 하나는 너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던 그림들이 어느 순간 일기를 위한 그림 고르기와 같은 억지스러움 때문이었다. 그런 가식에 저항하듯 일기를 멀리하던 내가 억척스러운 잔소리 때문에 다시 일기를 쓰는구나. 참, 인간은 모순 덩어리인 것 같다.


사람에게 '긍정의 힘'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난 왜 너에게 이리도 'NO'를 각인시키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엄마가 이런 식으로 육아를 한단 말인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조금만 시선을 달리하면 될 텐데, 난 왜 그것 하나 못하고 이리도 애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그렇게 혼자만의 셀프 비난의 시간을 갖던 중 머릿속에 떠오른 'X' 이미지...

고기를 갸우뚱하다 아무 생각해도 대체 그 이미지의 작가가 누구였는지 작품명은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가 않더구나. 그러던 중 '+'를 삐딱하게 보니 엑스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스쳤고,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이 왔다. 바로 그거였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이었다. 십자가가 없는 교회를 짓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건축법을 대중화한 건축가 안토 타다오, 난 그의 작품에 스며들던 빛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었다.

오사카에 위치한 <빛의 교회> 내부와 외부 전경 (출처: 한화건설 공식블로그)

역시 삐딱하게 보면 엑스로 보이지? 맞아~ 토리야 어쩌면 종교를 가진 많은 분들은 분노하실지도 모르겠다. 유일한 신의 상징을 부정적인 기호로 읽어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오늘 아침 내가 쏟아낸 수많은 "No"의 연속은 내 마음에 분명히 안도 타다오의 이 교회 내부 이미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단다. 매우 삐딱하게...


특정 종교가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믿음이 있는 엄마는 아니야. 그렇지만 그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힘을 안겨주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단다. 수많은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신을 믿는단다. 모두 다른 듯 여겨지는 그 신들이 결국은 인간에게 '긍정'의 힘을 주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단다. (물론 다른 길로 해석해서 잘못된 결과를 초래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다 잘될 거라는 믿음.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그 긍정의 힘을 나는 삐딱하게 X로 읽어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더구나. (유아세례를 받고,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했던 어린 시절 덕분인지 다른 종교의 상징은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아.)


안도 타다오는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한 작가란다. 예산이 부족한 교회에 오로지 빛과 콘크리트만을 이용해 그 어떤 교회보다 신성한 공간으로 지어낸 사람이 바로 안도 타다오 야.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를 활용해서 자연과 자연스럽게 융합을 이루는 공간을 탄생시킨 거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기본에 충실하면 이처럼 영롱한 빛의 공간이 탄생할 수 있는 거였어. 그런데 난 다른 사람의 눈에 맞는 착하고 똑똑하고 영특한 녀석으로 빚어내겠다는 욕심에 너를 억지로 만들고 있더구나. 그 덕에 영롱하던 너의 반짝임은 어느새 풀이 푹 죽어 시들어버린 새싹이 되어버렸더구나. 미안하다...

예비 초등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내가 너를 너무 어른스럽게 대해야한다는 부담으로 온 것 같아. (이래서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상담을 받아야 한다니까!)


이제는 날 선 눈빛으로 삐딱하게 보지 않고, 바르게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아야겠다. 그 자체로도 넌 너무나 빛이 나는 아이니까... 말은 줄이고, 너와의 공감은 늘릴게.

나도 8살이 되어보련다.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의 명상관 내부 (출처: 한화건설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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