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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Oct 22. 2021

맨투맨 전담마크

한 명씩 맡아서 보면 충분한 거 아니었어?!


다들 알다시피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 해외 출국이 불가능해지면서 난 수입이 거의 끊겼다. 수입이 없어진 상황이 꽤나 스트레스긴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이 아내와 내가 둘째를 가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일을 안 함으로써  아이를 충분히 보살필 수 있다는 장점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안 좋은 상황들이야 뭐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니까 최대한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했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이 많다고 해도 아이들 분유 값이 땅 파서 나오는 건 아니라 고민은 했지만 결론은 조금 쪼들려도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아빠가 더 좋다고 생각했다. 돈은 나중에 벌면 되니까. 그리고 손을 많이 타는 첫째의 성격상 아내가 아기를 돌보는 동안에 힘들어할 듯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은 내가 둘째를 돌보는 동안 아내와 첫째가 오롯이 시간을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는, 소위 "맨투맨 전담 마크"를 통해 두 아이에게 모두 충분히 사랑을 전달하려는 계획이었다.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부부 사이에서는 내가 갓난아기를 더 잘 보기에....)


다행히도 쉽게 아이가 찾아오고 출산도 순조로웠다.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둘째를 만난 지금 우리가 선택한 시기가 아주 적절했다고 느끼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둘째를 향한 첫째의 질투를 엄마 혼자서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이유가 정말 크다.

멋주가 집에 처음 온 날. 지 동생이라고 한참을 옆에 지키고 있었다. 한 5분?


보통 둘째를 만나면 첫째의 질투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 우리 역시 준비를 많이 했다. 


첫째가 아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 되도록이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엄마와 단둘이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 조심스레 아기를 건넸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의 기간을 거쳐 집으로 온 이후에도 한동안 가능하면 첫째 눈길이 닿는 곳에서는 첫째의 도움이나 허락하에 둘째를 돌봤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배운 지식들을 총동원해 최대한 궁주를 자극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주가 집에 온 지 얼마 된 후 궁주의 퇴행이 시작됐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심해지고 조금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도 했다. 아이가 옆에서 울면 큰 목소리로 


"시끄러워!! 조용히 해!!"


라고 외치다가 몇 분 지나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멋 주야~ 울지 마~ 누나 여기 있잖아~"


이렇게 달래곤 했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궁주를 보면  아이가 스트레스를 참 많이 받는구나 싶어 마냥 안쓰러웠다. 그러면서도 동생을 예뻐하고 챙기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이 정도로 끝났으면 그래도 조금 마음이 편했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지에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소변을 거의 가렸는데 갑자기 하루에 몇 번씩 바지에 소변을 봤다. 아내와 내가 봤던 여러 증상 중에 하나라 그 상황 자체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토록 동생을 원했던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니 잠시나만 괜히 둘째를 가진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아이가 동생을 원했으니 그래도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아이가 동생을 잘 받아들이고 예뻐하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니었다. 동생이 이쁜 건 이쁜 거지만 엄마 아빠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그것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엄마 아빠 둘이 집에 있으니 한 명씩 맡아서 맨투맨으로 아이들을 돌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산이었다.


아내와 내가 각각 한 명씩 맡아서 아이를 보면 최소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계속해서 첫째와 함께 있으니 첫째가 느낄 상실감이나 불안함이 적지 않을까 했는데 이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름 차고 넘치게 사랑하고 그만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 중 일부는 빼서 둘째에게 나눠줘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에게 차고 넘치는 사랑 같은 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궁주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이 있다. 아내가 궁주를 앞 보기로 안은 상태에서 내가 앞에서 까꿍 놀이 같은 장난을 치는 걸 궁주는 정말 좋아한다. 엄마의 포근함과 아빠의 장난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인가보다. 백일도 안 됐을 때부터 시작한 그 놀이를 세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노는 걸 가장 좋아한다. 물론 아내와 나 역시도 셋이 신나게 웃고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 궁주는 그게 기준이었다. 애초에 엄마나 아빠 중 한 명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면 모를까 우린 거의 늘 셋이 함께인 게 당연했다. 




그.... 그렇게 쳐다봐도 못 구해줘.. 참아...


이런 몇 가지 오산 때문에 조금은 수월할 거라 생각했던 첫째와 둘째 사이의 조율은 꽤나 오랜 노력이 필요했다. 

아이의 잘못이 없으니 다그치거나 혼낼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 엄마 아빠가 온 세상인 아이다. 세상의 일부가 자기에게 등 돌리는 느낌을 받을 아이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봐도 큰 애에게 둘째가 불청객인 건 맞으니까 폭력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다그치지 않고 받아주며 조심스레 둘 사이를 좁혔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자 우리에게는 자연스레 생활이 잡혀갔다. 평소 생활은 편안한 엄마와 함께 하고 신나고 재밌는 놀이가 필요할 때는 나를 찾는 식으로 아이 스스로 선택을 했다. 물론 엄마 아빠와 셋이 오롯이 노는 시간도 필요했는데 그런 시간은 아쉬운 대로 둘째가 잘 때를 이용하거나 장모님 찬스를 이용했다. 둘째는 둘째 나름대로 괜찮았다. 첫째를 겪으며 나와 아내 모두 아기를 보는데 능숙해져 있기도 했고,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는 온전히 엄마 아빠의 손길을 느끼게 해줬다. 뭐 순둥이 기도했지만 어쨌든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니는 것보단 한 사람 품에 있는 게 편할 테니까 아빠가 하루 종일 안아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우리가 계획했던 맨투맨 전담 마크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보면서 손이 비는 상황이 거의 없었다. TV 속에 어느 연예인이 작은 아기 분유를 먹이는 동안 옆에서 큰 애가 놀아달라고 울며 보채는 것에 힘들어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첫째를 만나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의 40개월 중에 가장 힘들었던 세 달이었다. 큰 아이가 어떤 상황에 맞춰가길 강요해야 한다는 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충분한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아이가 스스로 커나가길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었다. 미리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후회도 많았고, 하나만 잘 기르는 게 나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지나 첫째는 조금 더 양보하는 법을 배웠고 아내와 나는 아이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우고 있다. 시간이 지나 둘째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올 거다.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고 깎여나가며 서로를 맞춰나가겠지. 지금까지의 시간처럼. 가족이라고 꼭 서로를 배려하며 둥글게만 살아갈 필요도 없고 생각한다.


난 아이들이 가끔 목소리를 높이고 의견이 부딪히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내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세상에 어디에도 완전히 동그란 조각으로만 이뤄진 퍼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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