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맑음 Dec 23. 2020

명품조연(下)

슬라임과 고블린, 단편소설


 서버가 종료된다고 했지만, 우리의 일상은 특별히 변한 게 없었다. 나는 오늘도 열심히 연기했고, 고블린 또한 평소처럼 출근하여 이리저리 지하 속을 돌아다니는 연기를 했다. 몇 시간 후, 후배들과 교대를 하고 화면 뒤 대기실로 갔다. 조금은 축 처진듯한 슬라임들이 서로 속삭이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출근하자마자 잘리는 거야?”     


 그러자 한 슬라임이 대답했다.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는데, 해외지사로 발령 날 것 같아. 우리가 뽑힐 때는 다른 나라 언어는 필수였잖아. 지금 생각해보니 이럴 때를 대비해서 n개 국어가 되는 슬라임들만 뽑았나 봐. 이미 이 나라 서버가 종료될 거란 건 뽑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거지.”     


 슬라임들은 안심하며 새로운 일자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럼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우리 기수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타국 언어가 되는 슬라임들은 우리 또래중에는 없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혼자 고민에 빠졌을 때,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초보자 대륙에 접속한 것이다. 접속률이 현저히 낮아진 이 게임은 이제 평소에 거의 찾는 이가 없어 우리는 대기 장소에서 나름 자유롭게 지낸다. 아주 가끔 초보자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때, 보초를 서는 비상벨을 누군가가 누르면 급하게 나가서 연기하는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가 초보자 캐릭터를 만들었나? 그때 슬라임 무리가 헐레벌떡 뛰어와 나에게 소리쳤다.      


 “선, 선배님!! 밖에 좀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출근인 녀석들이 초보자를 처음 봐서 호들갑을 떠는 걸까? 일자리가 없어져 착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선배고 이성을 차려야지.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해 연기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화면으로 나갔을 때, 나는 자리에 멈춰서 꼼짝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 내 눈앞에는 지금, 게임의 랭킹 1위, ‘뽀대간zl’가 서 있었다.      


 당황한 슬라임들 사이로 나가 후배들을 진정시켰다. 물론 나도 굉장히 떨리지만, 이 순간만은 이들이 믿을 슬라임은 나뿐이며, 나는 경험자니까. 랭킹 1위가 별거냐, 나는 예전에 촬영도 같이했었으니, 괜찮다. 속으로 되뇌었지만 놀란 마음은 숨길 수 없었나, 초원에서 두 번 정도 점프를 하고, 세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며 돌아다녀야 하는데 몇 번이나 미끄러진 것 같다. 다행히 후배들과 뽀대간zl는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뽀대간zl는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뽀대간zl가 볼륨 소리를 높게 올린다는 신호가 왔다. 게임의 볼륨을 올리면 우리에게 사인이 온다. 특히 효과음을 높였다는 것은 슬라임인 우리가 소리까지 신경 쓰며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점프 소리, 유저를 공격할 때 나는 소리 등이 잘 전달되도록 더 집중해야 한다. 연기에 몰두하려고 긴장하고 있는 찰나 뽀대간zl는 효과음을 음소거로 두고, 배경음악을 최대볼륨으로 올렸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배경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서 있는 뽀대간zl를 보며 생각했다. 보통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만 오는 이 마을에 초보자가 아닌 유저들이 와서 배경음악만을 듣는 이들은 향수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게임이 오래됐으니, 본인의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다. 과거 이곳 초원의 노란 꽃잎들이 지금은 분홍색으로 업데이트된 것을 보며 나도 가끔은 회상에 잠길 때도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느꼈다. 뽀대간zl를 볼 수 있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어쩌면 오늘이 나의 마지막 연기일 수도 있겠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점프하며 뽀대간zl의 가까이 붙었고, 그 순간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뽀대간zl가 스크린샷을 찍었나 보다.


 뽀대간zl가 꽤 오래 머물렀고, 초보자 대륙의 모든 몬스터들이 대기실로 왔다는 말이 들렸다. 뽀대간zl를 구경하러 온 모양이었다. 거기에는 1기 고블린도 있었다. 다들 대기실에서 뽀대간zl를 보고 있었다. 나는 대기실로 황급히 뛰어갔다.      


 “너네 다른 사람들 접속하면 어쩌려고 다들 여길 왔어!”     


 고블린이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제 아무도 접속 안 해. 감독도 어제부터 감감무소식이야.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혹시나 무슨 일 있으리라 해도 후배들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우린 어차피 곧 사라질 존재야. 우리 하나 없다고 아무도 놀라지 않아.”  

   

 “...왜 이렇게 태연해? 너 혹시 서버 종료할 거 알고 있었어?”  

   

 고블린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 그냥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항상 생각해서 그런가, 놀랍지도 않아. 너희는 이렇게 지내는 게 좋으니까 당황스럽고 복잡하겠지만, 우리 고블린들은 똑같은 지하에서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는 일상이 지겨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갑자기 슬라임 후배들이 생각난 나는, 고블린에게 물었다.     


 “너희 후배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후배들은 해외지사로 간다던데….”     

 “15기 고블린들도 해외로 발령은 나겠지만, 모두 다 갈 순 없겠지. 고블린은 슬라임보다 인지도가 없으니 수요도 적을 거야. 고블린은 아마, 10% 정도만 갈 수 있을 거라고 들었어.”     

 “....”     


 그럼 나머지는, 다 어떻게 되는 거지? 신입들은 출근도 얼마 하지 못하고 연기의 꿈을 접어야 하는 건가? 침울해진 나를 바라보며 고블린이 이야기했다.


 “그러게 내가 애들한테 헛된 희망 주지 말라고 했잖아.”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뽀대간zl를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그러자 고블린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쪽을 바라보며, 뽀대간zl 한 번, 나 한 번을 보고 의아한 듯 대답했다.      


 “당연한 걸 뭘 물어? 사라지는 거지.”     

 “... 뭐?”     


 고블린은 황당해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반응이 왜 그래? 서버가 종료되면 당연히 우리는 사라지는 거지. 이렇게 늙고 아무 쓸모도 없는 우리를 이제 어디 쓰겠어?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쟤가 여기 오기 전에, 우리가 있는 지하도 들어왔었어. 거기서도 스크린샷을 찍고 갔고, 너희 맵에서도 찍었겠지.”     


 정말이다. 뽀대간zl는 모든 맵의 사진을 찍으며 마지막 모습들을 남긴 거구나. 갑자기 뽀대간zl의 캐릭터가 움직이며 옷을 하나둘 벗기 시작했다. 구할 수도 없는 희귀한 갑옷과 무기들, 가진 돈들을 한참 동안 바닥에 드롭시키며 버리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게 많았기에 꽤 오래 걸렸다. 몬스터들은 대기실에서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마지막이구나, 다들 같은 마음인지 울고 있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초보자처럼 기본 옷만 남은 뽀대간zl는 접속을 종료했다.     




1년 뒤, 해외 서버, 초보자 대륙     


 나는 15기 고블린이었다. 내가 있던 곳의 서버는 사라졌지만, 나는 그곳에서 상위 10% 안에 들어 다행히 해외지사로 발령받았다. 기수는 사라졌고, 나는 살아남았다. 여기는 기수제도가 없지만, 원래 있던 서버에서 온 몬스터들끼리는 15기라고 부른다. 그래야 똑같이 생겼지만 다른 언어를 쓰는 이 몬스터들 중에 우리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것 같으니까.


 전에 있던 곳과 같은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패치를 하는 날은 회식 자리가 열린다는 것.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 서버에서 온 우리에게 묘하게 차별이 존재해 이전 서버의 몬스터들끼리만 같은 테이블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 이전에는 슬라임은 슬라임끼리, 고블린은 고블린끼리 먹었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그런 텃세가 싫었던 몬스터들이 다 빠지고, 곧 우리 테이블에는 15기 슬라임과 나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술을 마셨다. 15기 슬라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그 꼰대들 기억나냐?”    

 

 매일 술을 마셔야 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슬라임들은 조금만 마셔도 금세 취한다. 15기 슬라임은 술을 마시며 친해졌는데, 술을 잘하지는 못한다. 술만 마시면 예전 얘기를 꺼낸다.      


 “선배님들? 기억나지. 벌써 일 년이나 지났네.”     


 15기 슬라임은 술만 마시면 이야기하는 뻔한 레퍼토리를 이어나갔다. 뽀대간zl가 그때 슬라임이 있는 초보자 마을에 가장 오래 머물렀고, 그때 희귀한 장비들도 봤고, 뭘 봤고, 뭘 또 봤고.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내 앞에 두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뽀대간zl가 중앙에 있었다. 배경에는 게임에 나오던 모든 몬스터들이 출연해 있었다. 슬라임부터 최종 보스몬스터까지 한데 모여있었다.

      

 “이, 이게 뭐야? 어떻게 다른 맵에 있던 몬스터들이 같이 있어?”     


 슬라임이 풀린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고블린들은 상위권이라 해도 여전히 멍청하구만. 당연히 합성이지. 뽀대간zl가 그때 돌아다니면서 찍었던 마지막 사진들에서, 몬스터만 잘라낸 거지. 하나하나 합성해서 유저게시판에 올렸대. 구구절절, 장문으로 엄청나게 길게도 글을 썼더라고. 뭐라더라…? 청춘이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했나? 진짜 사라진 건 몬스터들인데, 왜 자기가 청승인지, 원.”     


 나는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가운데 서 있는 뽀대간zl, 엔딩에 나오는 보스 몬스터들, 그리고 작게나마 슬라임과 고블린이 있다. 슬라임이 힘차게 점프하고 있었고, 옆에 고블린이 붙어있었다.

     

 “이거 1기 슬라임 선배 아냐?”     


 나는 왠지 반가운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슬라임은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자세히 쳐다봤다.     


 “....어, 그러게?! 진짜, 맞는 것 같아. 너 어떻게 알았냐?”     


 슬라임들 중에서, 아니, 어쩌면 몬스터들 중 최고로 열정적인 그분을 어찌 잊겠는가. 다른 이들에겐 꼰대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존경하는 몬스터였다. 나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 선배, 꿈 이루셨네. 마지막 엔딩에 얼굴 나오는 게 소원이라고 하셨잖아. 잘 됐다.”     


 슬라임이 어리둥절해 하며 대답했다.      


 “그런 말을 했었나? 별걸 다 기억하네. 뭐, 사라지고 나서 꿈을 이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난.”     


 나처럼 한 마리라도 기억하는 몬스터가 있으면 의미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 많은 슬라임 중에 연기에 늘 진심이던 슬라임 선배가 선택돼서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그럼, 고블린은 어떤 고블린이 선택됐을까? 동기? 선배? 작아서 보이지도 않는 고블린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어? 뭔가 이상하다.  


 “어…?”

 “...엥? 이거 1기 고블린 아냐? 1기 꼰대 슬라임이랑 같이 이야기하고 술만 마시던 너네 최고참.”

     

 우리는 눈을 의심하며 사진을 다시 봤다. 술에 취해 한계가 다다른 슬라임이 졸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고블린이…. 보통 이렇게 웃기도 하나?”


 1기 고블린 선배는 사진 속에서 이빨을 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블린은 보통 잘 웃지 않는다. 예전에는 고블린이 웃으면서 지나다니면 유저에게 뭘 실실 웃냐, 왠지 재수없다고 뜬금없이 공격당해 급작스럽게 죽는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부터 고블린들은 허리를 굽힌 채, 유저들의 눈에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지나다녔다. 선배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관습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다니. 이 선배는 원래 웃는 것 조차 본적이 없는데, 너무 낯설었다. 혼자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슬라임이 취기가 올랐는지 앞으로 고꾸라져 잠들었다. 나는 남은 술을 빈 잔에 채우며 말했다.


 “오히려 마지막인 걸 알아서."        

       

 1기 선배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특히 고블린은 기억하기조차 싫어하는 혐오스러운 존재라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웃고 있다. 마지막 자신의 모습인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마지막 잔에 남은 술을 들이켜며 중얼거린다.


 "어쩌면, 남들에겐 이렇게 기억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 명품조연, 끝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